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이 Nov 06. 2023

Bon fire night (모닥불의 밤)

가이폭스 데이(Guy Fawkes Day)

오늘은 종일 비가 내린다. 비 때문인지 어둠도 4시부터 내려와 이른 저녁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펑! 펑! 거리는 소리에 놀라 일찍 내려둔  커튼 너머 창밖을 내다보니, 이 빗속에 웬 난리냐 싶게 아랫동네 여기저기서 폭죽이 터지고 있다. 아랫동네뿐만 아니다. 옆동네도, 우리 집 건너 건너 집에서도 막 터지고 있다. 지금 영국 온 나라가 폭죽 잔치를 벌이고  있다. 올해엔 비가 많이 내려 이 동네는 그냥 넘어가려나 싶었는데, 이 나라 사람들에게는 지금 내리는 이 장대비는 비도 아닌 모양이다.


1600년대 초 영국은 가톨릭, 국교회(성공회), 청교도의 난립을 정리한다 하고는 결국 친 국교회(성공회)로 치우치며 가톨릭 탄압이 심해졌고, 그로 인한 가톨릭 신자들의 불만으로 '국회 의사당 폭파음모'계획이 세워진다. 음모 가담자들은  국왕을 비롯한 모든 대신들이 모이는 국회 개회식날(11월 5일) 의사당을 폭파하려 의사당 지하에 다량의 화약을 준비해 두고 거사를 꿈꿨지만 동지중 밀고자가 생기는 바람에 계획은 무산됐고, 거사 예정일인 1605년 11월 5일 발각되고, 그날 화약고를 지키고 있던 가이폭스(Guy Fawkes)가 체포된다. 이날을 영국 국교회에서 공식적인 기념일로 정했다. 그들은 가이폭스의 인형을 만들어 조롱하며 질질 끌고 다니다 마지막에 장작불에 태우는데, 국왕의 안녕을 축하하며 다시는 이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기원하며 불꽃놀이를 한다. 세월이 흐르며 자연스레 가이폭스 인형놀이는 멈췄고,  폭죽을 터트리거나 적당한 장소에서 모닥불을 피워놓고 이날을 기념한다.

다른 편에선 가이폭스를 혁명의 상징으로 여겨 기념하는 이들도 있다.  BBC가 조사한 영국 최고 영웅들 설문조사에 가이폭스가 30위를 차지했다 하니, 어느 시대엔 사형수였던 한 사나이가 세월이 흘러 후대에 영웅으로 변모할 수 있는 건 억겁의 시간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저기 저 붉게 터지는 폭죽이 떨어져 내리는 저 찰나의 순간에도 누군가는 변모하고 있지 않을까?

지금은 11월 5일 10시다. 창밖엔 한국의 한여름 장맛비처럼 비가 내린다. 오후 4시부터 시작된 폭죽 파티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래도 다행인 건 이곳이 시골이라 이 정도 수준이다.

 대도시는 지금 난리부르스 일거다.


작가의 이전글 저랑 해바라기 하러 가실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