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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이 Nov 12. 2023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께

아버지와 막걸리


아버지는 막걸리를 너무나 좋아하셨다. 아침 식사를 마치신 아버진 '어험~ '헛기침을 하시며 곧장 대문을 나서신다. 그렇게 시작한 막걸리 순례길은 어떤 날은 하루종일, 어떤 날은 오전 한나절 만에 들어오셔서  점심식사를 하시고는  또다시 이 동네 저 동네 막걸리 집들을 돌다 해거름에서야 오셔서 저녁 식사를 마치시고, 당신 방(별채 문간방)에 누워 TV를 보시다 늦은 밤, 냉장고에 채워둔 과일이나 김치를 안주삼아 밤참 대신 또 막걸리를 드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막걸리에 곡기가 있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식사량도 많지 않으셨고 육식도 즐기시지 않으셨기에 '대체 아버진 밖에서 무얼 안주삼아 막걸리를 드실까?' 궁금하기도 했지만, 평생 특별하게 아픈 곳 없이 건강하셔서 자식으로선 독한 술 드시는 것보다 다행이라 여겨 부모님 댁에 들를 때면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막걸리 한두병 사다 냉장고에 넣어 두곤 했었다.


철부지 시절 난 늘 술에 취해 계신 아버지가 싫었다. 그러다 보니 아버지가 술에 취해 집에 들어오시면 아버지와 부딪치기 싫어 방으로 숨어들었고, 그런 지식들의 행동을 눈치채셨는지  아버지는 어느 날 스스로 안채를 떠나 대문옆 문간방으로  잠자리를 옮기시고,  그곳을 당신만의 공간으로 만드셨다. 그 후 식사 시간 외엔 마당너머 안채로는 거의 들어오시지 않으셨다. 그러다 철이 들어 아버지가 막걸리를 벗하며 살 수밖에 없었던 연유를 깨닫고는 나는 며칠을 넋 나간 사람처럼 멍하게 보냈다.  

중 3 시절 어느 봄날, 넓은 뜰 한가운데 자리한 크고 아름다운 한옥집이었던 우리 집에 빨간딱지가 붙기 시작했고, 한순간 논과 밭이 경매로 넘어갔던 그 시점부터였으니 당신이 피땀으로 일군 모든 걸 잃어야 했던,  한 집안의 가장으로 짊어져야 했던 삶의 무게와 고통, 상실감을 감히 내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었겠는가? 한 여인의 남편으로, 자식들의 아버지로서 당신이 지켜내지 못한 것들에 얼마나 괴로우셨을까?

각설하고,


세상의 모든 자식들은 자기 부모가 자신을 두고 먼저 세상을 떠날 거란 사실을 인지하면서도 그 생각 자체를  하지 않으려 애쓰며 살 것이다. 나 또한 그런 마음으로 살고 있었기에, 친구나 직장동료의 부모, 가까운 친척의 부고 소식을 들을 때마다 깜짝깜짝 놀랐고, 내게도 그런 일이 생길 거라는 생각이 들면 애써 아니라고 고개를 저으면서도,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기에 직장에서 일을 하다가 또는 여행 중에 부모님 댁이나 형제자매에게서 전화가 오면 순간순간몸서리를 치며 전화를 받곤 했었다.

하지만, 그 일은 정말 예고 없이 찾아왔다. 그날 아버지는 당신이 좋아하시는 막걸리를 넘치게 드셨다고 했다. 같은 동네에 살고 계신 작은 아버지와 해 질 녘까지 막걸리를 드셨고, 아버지가 집으로 내려가시는 걸 봤다고 말씀하셨지만 아버진 그 후 집으로 돌아오시지 못하셨다. 글로는 표현할 수 없는 큰 교통사고를 당하셨고, 연분홍 벚꽃 잎이 눈처럼 쌓인 도로 위, 그 꽃잎 위에서 운명하셨다.  

......,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아버지 방 청소를 하다  아버지방 벽에 걸린 벽걸이 거울 테두리에  빼곡히 꽂혀있는 우리들의 어린 시절 사진을 발견하고 나는 한참을 울었다. 사진들은 당신 품에 안겨들던 시절의 어린 자식들, 당신의 손길을 온전히 받아야만 했던 시절의 우리들이었다. 그때서야 나는 아버지의 깊은 마음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고,  더 이상 그 어떤 생각도 이해할 것도 없었다. 그 사진들은 자식을 향한 아버지의 큰 그리움이었다. 어느 순간 당신에게서 멀어져 간 자식들, 모든 게 다 당신 탓으로 여겼을 것이다. 아버진 얼마나 고독하고 외로우셨을까? 그 깊고 큰 외로움을 생각하면 지금도 죄책감에 눈물이 난다.

그동안 내가 부모님께 행한 모든 것들, 자식으로서 했던 형식적인 챙김, 사랑은 눈곱만큼도 없는 가식이었다. 나 자신을 위해 그렇게 했을 뿐이었다.  단 한 번만이라도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려 노력했더라면, 아버지가 지켜내지 못한 건 아무것도 아니라며, '아버지 괜찮아요. 사랑해요'라는 이 한마디만 했었더라면 지금 이 괴로움은 좀 덜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이 또한 나의 무심했던 지난날들을 조금이라도 덜어내려 발버둥 치는 모습으로 보여 지금의 내가 이기적이고, 많이 얄밉게 느껴지는 밤이다.


오늘 밤,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께, 한국의 막걸리는 못 드려도 이곳 영국에서 막 걸러 만든 사이다 한 씩 돌려드리고 싶다. 당신의 노고와 그 깊은 마음을 헤아지리 못함을 깊이 사죄하며 이제야 내 마음을 전하고 싶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영원히...,

"며칠 전 발견한 영국 사과 사이다다. 유럽에서 사이다는 한국의 'OO사이다'가 아닌 알코올성분이 있다. 지난 주중 이곳 슈퍼에서 발견한  알코올농도 6.8%인 이 사과 사이다를 마셔보니 딱 한국의 막걸리가 생각났다. 사과나 각종 과일을 정제하지 않고 막 걸러 이렇게 나오는 것도 있고,  몇 번의 정제를 거처 나온 좀 더 청량한 사이다도 았지만, 이건 정말 막 걸러 나온 한국의 막걸리나 다름없어, 지난 목요일밤 한잔 하던 중 아버지 생각에 감춰둔 이야기를 꺼냈지만, 막상 발행하려니 아버지께  또 한 번 죄를 짓는 게 아닌가 싶어 미루다 오늘(11월 12일, 오후 13시 31분)에서야 용기 내 발행을 결심하고 올리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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