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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이 Nov 04. 2023

저랑 해바라기 하러 가실래요?

날이 너무 좋아 횡설수설...,

주말 내내 선물처럼 해가나 급하게 인근지역 가볼 만한 곳을 검색하다 옆동네 스완지 시내에 있는 싱글톤공원(Singleton Park)의 사진들을 보고 이곳이다 싶어 스완지(Swansen)행 버스를 탔다. 공원에 도착해 종일 따스한 햇살을 듬뿍 받아먹고, 공원 이곳저곳 둘러보다 공원 깊숙한 곳에 숨어있는 보타닉가든(Botanical Gardens)까지 덤으로 구경하고 왔다.

영국은 10월 중순부터 이듬해 2월까지 우기다. 이 기간 동안 해는 짧고 밤이 길어지기에(4-5시에 어둠이 내려옴)해만 나면  다들 밖으로 나간다. 읍내 쇼핑몰이나 가까운 공원, 바닷가 등 어디서든 해바라기를 하며 하루를 보낸다. 바깥나들이가 불편한 어르신들은 자기 집 뒷 가든 시크릿 공간에서 햇살을 만끽한다.



공원엔 나처럼 해바라기 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운동 중이거나 잔디 위에 누워 햇살 받이 중인 이도 있고, 듬직한 나무를 등받이 삼아 책을 읽거나, 어떤 이는 나무 아래서 점심을 먹고 있다. 저쪽 건너편 벤치에 앉아있는 이는 깊은 사색에 잠겨 있는 듯하다. 찬찬히 살펴보니 이 모든 풍경들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아무런 거리낌 없이 남의 시선에 아랑곳 않는 자유롭고 여유로운 저들이 부럽다. 난 왜 그렇게 남들에게 보이는 나만 생각하고 살았을까? 왜  또 그렇게 바쁘게 나를 내몰았을까? 잠깐동안 내가 살아온 순간들을 헤집어 봤지만 여유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숨 막힌 삶 그 자체였다. 이곳에 이사 오면서 나는 변하고 싶었다. 간절히 변하고 끊어버리려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은 노력 중 일 뿐이다.

그래, 그럼 지금 이 순간만이라도 저들처럼 여유로움과 자유로움을 만끽해 보자. 공원엔 작은 오솔길이 많았다, 공원 깊이 들어가는 길목 어디쯤에 놓인 빈 벤치에 앉았다. 푸르디푸른 가을하늘을 보고 눈을 감았다 다시 사방을 한번 둘러본다. 한국의 단풍과는 비교할 없이 초라한 단풍이 물들고 있는 나무들을 바라보며 가을 햇살을 듬뿍 받고 있는데, 내 앞 키 작은 나무에 반짝거리는 이름표가 자꾸 시선을 끌어 가까이 다가가 보니 이렇게 사랑스러운 글귀가 적혀있다.

                                                      "Let love grow. 사랑아 무럭무럭 자라렴!"

어느 신혼부부가 결혼을 기념하기 위해 공원에 기증한 나무다.  이런 게  이곳에만 있는 건 아니지만 유난히 이름표를 가진 나무들이 많아 하나씩 사연을 읽어봤다. 사랑 넘치는 한 부부의 탄생,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며 기리는 슬픈 글귀, 새로운 삶의 시작과 죽음이 넘마 드는 이곳 나무들은 각각의 사연을 품고 서 있다.

                          "Rembembering you is easy we do it every day

                            But missing you is heartache that never goes away

                            See you someday...,

                            Somewhere over the rainbow!

                            "당신을 기억하는 것은 쉽습니다.

                             우리는 매일 당신을 기억합니다.

                             하지만, 당신을 그리워하는 것은 지울 수 없는 고통입니다.

                             언젠가 우리 만나요...,

                             무지개너머 어딘가에서!"


영국의 기부문화는 정말 대단하다. 성 또는 대 저택 등 막대한 유산을 기부하는 것들은 차치하더라도, 이런 작은 기부는 영국인들에겐 그저 일상이다. 한국으로 치면 '군' 정도인 우리 읍내엔 체리티샵(Charity Shop=한국의 아름다운 가게 수준)이 일곱 개가 넘는다. 체리티샵아직 쓸모 있지만 내게 더 이상 필요 없는 물품을 기부하는 곳이다. 대부분 영국인들은 체리티샵에 집(집은 상점에서 팔 수 없으니) 빼고 자신에게 필요치 않는 물건들은 다 기부한다. 기부받은 중고품들은 수리와 세탁을 거쳐 판매하며, 샵마다 후원하는 분야(교육, 연구, 암연구재단, 심장병 연구재단, 동물, 기아, 난민 등등)가 다르기에 자신이 원하는 곳에 기부하면 된다. 이렇게 체리티샵을 통해 기부해 판매된 수익금이 한해 조 단위가 넘는 다 하니 영국인들에게 기부는 삶의 일부분인 듯싶다. 오늘 내 이야기가 자꾸 딴 대로 새는 느낌이다.

어쨌든, 오늘은 거대한 기부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기에 샵이야기는 이쯤에서 마무리해야겠다.


공원에 심어진 수많은 나무들이 만든 숲과, 저 고독한 이가 앉아있는 벤치와 내가 앉아 있는 이 벤치 모두 다 아름다웠던 어느 순간 또는 사랑하는 이를 기억하고자 하는 이들의 마음이 기반이 되어 나온 것들이라 생각하니 이름표 속 주인공들이 부럽고 고마운 마음이다. 처음 영국에 와서 여기저기 일 보러 다니거나, 여행 중 잠깐씩 앉아  쉬었던 곳, 장 보고 집으로 가는 길목에 있던 그 벤치도 생각해 보니 누군가의 이름이 적혀 있는 벤치였다. 이름표 속 주인공 덕분에 나는 행복하고 아주 멋진 하루를 보냈다. 다음 해가 날 때까지 버틸 수 있게  햇살가득 꼭꼭 채워 왔으니 그때까진 행복하게 잘 살 거 같다.

언젠가 나도 누군가가 해바라기 하며 한낯을 즐길 수 있는 그런 자리 하나 마련해 놓고 떠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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