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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이 Dec 07. 2023

영국에서 담근 갓김치(God!이다.)

영국 사골살이

영국에서 갓김치라니?

한국에서 들여온 씨앗으로 영국에서 알차게 수확 한 채소다.  여름에는 열무, 깻잎, 상추씨를 뿌렸지만 열무는 슬러그가 절반을 뜯어먹거나 알 수 없는 병해충에 노출됐는지 열무잎 여기저기에 구멍이 숭숭 뚫려 수확을 포기했다. 다행히 상추와 깻잎 덕분에 초보농부는 체면을 차렸고,  초가을에는 김장무와 배추, 갓을 심었는데  배춧잎에 또 구멍이 뚫려 배추도 포기째 버려야만 했다. 이 작은 경험으로 얼마나 많은 깨달음을 얻었겠냐만 그래도 농부들의 수고로움과 흉작일 때  느끼는 그분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었다.


올해 최고 수확물은 단연 갓이다. 수확한 갓은 간을 해 김치를 담가 일주일 정도 익힌 후 먹어보니 엄마손맛이 깊게 묻어나는 듯하다. 코끝을 알싸하게 자극한 풍미가 입안 가득 채워지니 갑자기 따뜻한 흰쌀밥이 생각나 급하게 밥을 해 갓김치 하나 놓고 밥 한 공기를 뚝딱 해치웠다. 영국 막걸리(사과 사이다)를  반주삼아...,


내 생각엔 무도 크게 실패하지 않은 것 같은데 무가 너무 잘다. 아이들 주먹만 한 것부터 작은 알 감자 만한 게 대부분이다. 다행히 무잎은 풍성하고 벌레들이 뜯어먹지 않아 무청시래기를 삶아 냉동고에 잘 보관해 뒀다. 이 작은 무로 뭘 하나 싶었지만 생각해 보니 그거라도 고맙기만 하다. 그 잔 무들은 잘 다듬어 신문지에 꼭꼭 싸서 냉장고에 고이고이 보관 중이다. 좀 더 추워지면 나박나박 썰어 따뜻한 어묵탕 만들어 먹어야겠다. 처음에 무 씨앗을 뿌려놓고 싹을 올리는 모습을 보며, 무가 잘되면 깍두기도 담가먹고, 시원한 소고기뭇국도 끓여 먹을 거라, 김치굿부터 마신 탓에 실망이 커 애써 무 농사 결과는 숨기고 싶었는데 그걸 또 주절 거리고 있다.

                                       분명 무인데  사진을 찍어 놓고 보니 꼭 감자 같다.


무슨 소리? 농사를 지어 본 것도, 수확한 것도 내 생에 처음인데,

첫해 농사가 엉망이면 어때? 우리에겐 내년이 있는데, 이 겨울을 보내면, 새 봄이 올테구 봄 햇살이 텃밭 가득 내려앉으면 한국에서 가져온 온갖 씨앗들을 뿌려 다시 시도하고 또 시도하면 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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