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이 Dec 13. 2023

오랜만에 런던 다녀왔어요.

런던 리치먼드 파크, 뉴몰든(한인타운)

 지난 월요일 밤, 급하게 런던을 가야 할 일이 생겼다. 런던은 늘 고속버스나 기차를 이용했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었던 건지 런던 근처 레딩(Reading)에서 패딩턴역(Paddington) 구간 철로공사로 열차 운행을 하지 않았다. 거기다 고속버스까지 끊겨 어쩔 수 없이 헌 털뱅이 차로 갈 수밖에 없었다. 웨일스 깡촌에서 런던까지 차를 끌고 가는 건 처음이었던지라 살짝 걱정도 됐지만, 걱정보다는 좀 들떠있었다. 차를 가져가니 돌아오는 길에 한국 마트에 들러 트렁크 가득 한국식품을 담아 올 절호의 기회인데, 어찌 들뜨지 않을 수 있겠는가?  

웨일스에선 꿈도 못 꾼, 아니 애초에 생각조차 하지 않고 꾹 누르고만 살았던 것들을 영접한다는 생각에 사뭇 흥분되었다. 하지만 그날은 정말 머피의 법칙처럼 일정이 꼬이기만 했다. 런던방향 고속도로 구간 공사로 도로를 막아놔 국도로 빠져나가야 했고, 우리나라의 골목길 같은 영국의 국도를 돌고 돌아 가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 와중에 조수석에 앉아 내 운전에 사사건건 잔소리를 해대는 모모((모모=남편)는 야간 시력이 매우 나빠 밤 운전을 못한다.)랑 한바탕 말싸움을 하다 새벽 1시 30분에 런던 숙소에 도착했다.


 다음날, 일을 보고 곧바로 뉴몰든(한인타운)으로 갔다. KOREA FOOD에 들러 1차 장을 보고, 다시 근처 H-mart로 이동해 트롤리 가득 이것저것 주워 담았다. 라면, 짜장, 만두, 떡국, 떡볶이, 잡채, 어묵, 메실청, 고춧가루, 각종 장류 등등, 한국인 캐셔 아줌마가 2024년 달력까지 챙겨 주셨다. 그곳에서 10개월 만에 가족 아닌 다른 사람으로부터 '안녕하세요?' '네! 그건 저쪽에 있어요.'등의 우리말을 처음 들어봤다. 반갑고 생경한 느낌이 교차했다. 그분과 한두 시간 아무 말 대잔치라도 하고 싶었다.  괜히 든든해져 좀 더 머물고 싶은 마음에 트롤리를 끌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는데, 성질 급한 모모 씨는 다음 행선지로 가야 한다며 날 채근한다. 아~10분만 더 있고 싶은데...,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또 다른 여정이 있었기에 마트 출입문을 나섰다. 그 순간 문 앞 가판대에 한국어로 가득 채워진 주간지들을 발견한 나는 '아!' 하는 탄성을 질렀다. '한국어 신문이라니!'  기본적인 한국 소식은 인터넷을 통해 늘 접하긴 하지만, 낯선 곳에서 한국어만으로 구성된 텍스트를 만났다는 반가움 때문이었을까? 나는 모모의 재촉이고 뭐고 가판대 위 모든 신문들을 하나씩 다 챙겼다. 신문뿐만 아니라 한국어로 만들어진 것들도 하나씩 다 쓸어 왔다. 얼마 만에 본 한국어 신문인가? 내용이야 익히 알고 있거나, 지난 이야기겠지만, 한글로만 가득 채워진 것을 보고는 반가움에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것 같다. 신문을 한 아름 안고 있는 날 모모는 못마땅해했지만 난 행복하기만 했다.



마트 순례를 마친 우리는 뉴몰든 근처, 런던에서 가장 큰 왕립공원이자 국립 자연보호 구역인 리치먼드공원(Richmond park)에 들러 잠깐의 휴식과 산책을 하기로 했다. 리치먼드 공원은 총 956헥타르(1헥타르는 3,025평)로 산책로만 12km인 런던에서 가장 큰 공원이다. 복잡하고 어수선한 런던에 숨겨진 보석 같은 곳이다. 관광객보다는 런던시민들에게 인기가 많은 곳이지만, 요즘은 관광객도 이곳을 많이 찾는단다. 사람들로 넘치는 중심가를 살짝 벗어나면 야생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드넓은 초원에 세월을 가늠할 수 없는 수많은 고목을 품고, 거대한 무리를 이뤄 초원을 뛰어다니는 야생 사슴무리를 볼 수 있다. 오래전부터 왕들과 귀족들의 사냥터로 사용됐던 곳이란다.

혹여, 런던을 방문할 계획이 있으신 분, 꼭  봄에 이곳을 방문해 볼 것을 추천한다. 봄에는 온갖 야생화는 물론 공원에서 가꾸는 아름다운 꽃들로 화려함의 극치라고들 하니, 나도 꼭 내년봄에 다시 와야겠다.

잎이 다 떨어진 나목도 있지만,  겨울인데도 영국의 잔디는 늘 푸르다.
세월의 무게에 쓰러진 나무들도 자연의  일부분으로  저렇게 놔둔다.



공원뿐 아니라 리치먼드는 런던에서 가장 부유한 동네다. 과거 에드워드 3세가 머물기 시작하면서 그 후 많은 국왕이 이곳에서 성을 짓고 살았다. 드라마 '천일의 앤'으로 유명한 헨리 8세가 거주한 햄프턴코드 궁전과 엘리자베스 1세의 리치먼드 궁전등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넘쳐나는 이곳은 시끌벅적한 센트럴을 피해 조용한 여행을 하고 싶은 분들은 꼭 한번 와볼 만한 곳이다.  리치먼드도 번화가는 있지만 런던 중심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주변엔 윔블던등 다른 볼거리들이 널려 있는 곳이다.



광활한 리치먼드 공원, 차로 한 바퀴 도는데도 꾀 시간이 걸린다.
공원 전망 좋은 곳에 자리한 티룸
리치먼드는 봄이 가장 아름답단다. 겨울 풍경도 이만하면 아름답지 않나요?
숲 너머로 런던시내 풍경이 내려다 보인다.
공원 내 찻집에서 홀로 차를 마시고 있는 노신사도 공원의 일부분인 듯 멋지다.


작가의 이전글 영국에서 담근 갓김치(God!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