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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에서 온 나, 화성에서 온 그

영국 시골 에디션 1

by 봄이


나의 친구들....

나는 금성에서 왔다.
꽃을 보면 말을 걸고, 회초 하나를 사도 색감과 놓일 자리를 오래 고민한다.
창밖 풍경이 하루가 다르게 바뀌어도, 그 모든 변화가 내 마음에 스며든다.


내 남편 모모는 화성에서 왔다.
혼자만의 동굴에서 자급자족하며 평화롭게 살아가는 그 종족,
외로움도, 심심함도 느끼지 않는 듯하다.
그는 스스로의 세계에서 충분히 만족스럽게 살아간다.


우리가 함께 살고 있는 이 영국 시골 마을은 조용하고 평화롭다.
하지만 때때로 그 평화는 오히려 ‘우리 둘뿐’이라는 현실을 더 선명하게 드러낸다.
공통의 관심사가 거의 없기에, 함께 있어도 혼자인 듯 느껴지는 순간이 많다.
내가 느끼는 외로움은, 아마 그에게는 번역되지 않는 언어일지도 모른다.

오늘도 나는 정원 한가운데 감나무 앞에 선다.
몇 번이고 ‘감나무’라 알려줬건만, 그는 여전히 기억하지 못하고
“저게 무슨 나무냐?”고 되묻는다.
나는 그 이름을 다시 한 번 조용히 속삭여준다.
“감, You가 맛있어 죽겠다는 감나무라고!”

그는 아마 오늘도 동굴 속에서, 며칠 전 새로 산 전동 대패의 조립 설명서를 읽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동굴 옆에 꽂아둔 꽃 한 송이는 언제부턴가 누군가가 물을 준 것처럼 싱싱하다.
말은 없지만, 그게 모모라는 걸 나는 안다.
아직은 미세하지만, 아마 그도 조금씩 내 언어를 배우는 중일지 모른다.

그렇게, 오늘도 우리는 다른 별에서 왔지만
지구라는 중간 지대에서 협상과 타협, 그리고 포기를 반복하며 살아간다.
지독하게 안 맞는 두 사람이, 오늘도 같은 식탁에 마주 앉아
같은 냉장고에서 서로 다른 취향의 반찬을 꺼내 먹는다.
가끔 그 무심함에 내 안의 금성이 도망치고 싶다고 소리치지만,
결국 이 화성인이 없으면 또 허전하다.

이 정도면, 거의 우주의 인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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