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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이 Jan 05. 2024

웨일스 산골짝에서 만난 봄

봄이가 봄소식 들고 왔어요.


연일 비가 내린다.

그동안 달력 한쪽에 '비'라고 표기하던 짓을 멈춘 지 오래다.

그렇다고 하루 종일 비만 내리는 건 아니다. 하늘도 지치는지 장맛비처럼 줄기차게 내리다가 보슬비가 되기도 하고, 잠깐 휴식 시간도 갖는다. 그 순간 짙은 구름뒤에 가려진 해가 살짝 얼굴을 내민다. 그러다 또다시 거친 비바람으로 돌변해 세차게 내리치기를 반복한다.  이 변덕스럽고 괴상망측한 날씨가 작년 11월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으니, 이건 없던 우울증이 금방이라도 마음 깊은 곳에 뿌리내려 터 잡고 눌러앉을 거 같다. 비 때문에 이렇게 무기력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건 정말 할 짓이 아닌 거 같아, 오전에 무작정 우의를 챙겨 차를 끌고 우리 동네 뒷산 아판 산림공원(Afan Forest Park)을 향했다. (이 공원은 산악자전거 라이딩 장소를 유명한 공원이다. 산악자전거 잡지에 죽기 전에 꼭 타봐야 할 트레일로 선정된 곳이 이곳에 있다.= 다음 기회에 자세히 설명할 예정 )

강줄기 안쪽의 넓은 잔디밭은 럭비구장이다. 이곳엔 저런 구장이 아주 작은 마을, 마을 다 있다.  럭비에 진심인 사람들이다.

공원입구 주차장엔  차들이 제법 많다. '그럼 그렇지. 어떻게 이 긴 겨울(우기) 동안 집에만 있을 수 있어?', '이 사람들 이 비에도 이렇게 나온 거 봐.' 비 내리는데 어딜 나가냐며 툴툴거리던 모모씨 들어라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차에서 내려 숲 길을 걷기 시작했다. 다행히 굵은 비는 잦아들고 가랑비가 살살 내리다 말다를 반복하고 있어, 이 비라면 한 시간은 여유롭게 산책할 수 있겠지 싶었다. 숲에는 이미 비를 흠뻑 맞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  강아지와 산책하는 사람, 뛰는 사람, 비닐커버로 덮은 유모차를 끌고 나온 젊은 부부, 같은 색의 방울 모자를 쓰고 손을 꼭 잡은 노부부 등 제법 많은 사람들이 숲 이곳저곳을 드나들고 있다. 다들 나보다 먼저 나온 이들이지만, 비에 전혀 동요되지 않는 듯 각자의 시간을 즐기고 있다.


진즉 나올걸..., 그동안 '비가 오면 어때? 그냥 나가자? ', '이 비에 어딜 나가? ', ' 감기라도 걸리면?' 혼자 자문자답하며 꼼짝 않고 집안에만 지낸 시간들이 못내 아쉽다.  공원은 정말 넓다(120km). 비가 멈춘 건 아니지만 잔뜩 흐려있고, 간간히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지만 숲은 푸르름을 잃지 않으려 애쓰고 있는 듯 보인다. 공원엔 오래된 침엽수 무리와 떡갈나무, 참나무, 너도밤나무 군락지 사이사이 작거나 적당한 실개천 휘돌고, 비가 워낙 많아 이끼를 이불 삼아 겨울을 나는 헐벗은 나목들 사이에서 연지곤지 찍은 색시처럼 고운 꽃님이를 발견했다. 겨울에 비가 많을 뿐,  온화한 날씨(7도-9도 사이) 탓인지 벌써 봄꽃이 하나 둘 피어나고 있다.  성질 급한 놈인가? 그건 아닌 것 같다. 우리 집 앞 정원에도 노란 크로커스 무리가 삐죽거리고 맹아를 올리고 있으니 말이다.


어떤 연유로 나왔든 오늘 나오길 참 잘했구나 싶다.  

앞으로 자주 나와야겠다.

아니 매일매일 나와 이 숲의 변화를 몸소 느끼고 싶다.

오늘은 어쩌다 나오긴 했지만 내일부터는 작심(心)하고 나와야겠다.

사실 집에서 나오면서 별의별 걱정을 다했다. 만약 산책하다 장대비라도 쏟아진다면 주차장까지 뛰어야 할 텐데..., 모모 씨가 또 투덜거릴 텐데, 이런저런 걱정들은 기우에 불과했다. 모모도 봄꽃을 보고 너무 좋아한다. 정말 나오길 잘했단다.


내가 나에게 하는 넋두리---

봄이씨! 제발 이제 여유 좀 가지고 삽시다.

모모씨 행동이 좀 늦으면 어때요? 아주 조금만 기다려 주면 되는걸...,

그 사람은 늘 여유롭고, 봄이씨처럼 급하지 않아서 그럴 뿐인데,

이게 뭡니까? 이러려고 조기퇴직하고 이 머나먼 이국땅으로 나오신 건가요?

왜 아직도 혼자 바빠하고, 빨리빨리를 치며, 사랑하는 이들을 힘들게 하는 건가요?

여유롭고 싶어서, 자유롭고 싶어서 이곳에 오지 않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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