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문을 열었을 때, 그곳에는 집을 지키는 고요한 정령처럼 어머니가 앉아 계셨습니다. 구순을 넘긴 노모는 억겁 같은 밤을 꼬박 새우며 먼 길 돌아올 딸을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3년 만에 마주한 어머니의 시간은 유독 가파르게 흘러간 듯, 예전보다 훨씬 작고 쇠약해진 모습이었습니다.
설 명절때 고향으로 모여든 가족들,,,,나를 발견한 어머니의 눈동자 속에 파문이 일었습니다.
그리고 이내 떨리는 입술을 열어 건네신 첫마디는 나의 눈시울을 뜨겁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도 안 늙고 곱네... 내 딸......”
그것은 예사로운 인사가 아니었습니다.
57년을 곁에 두다 어느 날 갑자기 영국이라는 먼 땅으로 떠나버린 딸. 그곳에서 혹여 끼니는 거르지 않은지, 낯선 바람에 마음이 상하지는 않는지 밤잠을 설쳐가며 했던 걱정들이 눈 녹듯 사라지는 안도의 선언이었습니다.
당신의 몸은 정령처럼 야위어 가면서도, 다시 마주한 딸의 얼굴에 세월의 풍파가 깊게 패지 않았음을 확인하고서야 어머니는 비로소 평안해지셨습니다. 그 표정은 마치 폭풍우 속을 헤매다 돌아온 자식을 품에 안은 바다처럼 깊고 고요했습니다.
나는 그런 어머니의 여리고 가냘픈 가슴에 얼굴을 묻었습니다.
나를 꽉 껴안아 주시는 그 마른 팔의 온기는 3년 전 이별하던 그날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습니다. 60을 바라보는 나이에 타국으로 떠난 나를 '불효녀'라 자책하며 보낸 시간들이, 어머니의 그 평안한 미소 한 번에 씻겨 내려가는 듯했습니다.
어머니는 멀리 있는 딸의 안녕을 위해 당신의 그리움을 꾹꾹 눌러 담으며 살아가셨을 것입니다. "나는 괜찮다, 네 얼굴이 고우니 되었다"라는 그 마음이 구순의 생을 지탱하는 힘이었음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어머니는 여전히 나의 뿌리였고, 나는 여전히 그 품에서만 온전해지는 어린 딸이었습니다. 쇠약해진 어머니의 손등을 어루만지며, 그 안도의 표정을 가슴 깊이 새겨봅니다. 이제는 내가 어머니의 밤을 지키는 정령이 되어, 당신의 남은 시간이 오직 평안으로만 흐르게 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