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권사님의 서슬 퍼런 사랑

by 봄이

지난 주말, 아버지를 뵈러 임실 호국원에 다녀왔습니다.

출발 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안방의 정령처럼 앉아 계신 엄마께 여쭈었습니다.

“엄마, 아버지 보러 같이 갈래?”

나의 다정한 물음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엄마의 입에선 난데없는 ‘육두문자’가 쏟아졌습니다. 평소 신실하신 ‘신 권사님’의 입에서 나온 것이라고는 믿기 힘든 거친 언사였지요. 당황한 내가 “아니, 권사님 왜 이러세요!”라며 말려보았지만, 엄마의 분노는 식을 줄 몰랐습니다.


사실 엄마에게 아버지는 그리 다정다감한 남편이 아니셨습니다.

술을 좋아하셨고, 가족보다는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셨던 분. 무엇보다 마지막 순간을 길 위에서 비참하게 맞이하셨기에, 엄마에게 아버지는 평생의 비통함이자 지우지 못한 슬픔의 이름이었습니다. “그날 그렇게 술만 드시지 않았어도...” 하는 원망은 엄마의 가슴 속에 날 선 분노로 굳어버린 모양입니다.


결국 엄마를 뒤로하고 언니, 오빠와 함께 길을 나섰습니다. 그날따라 임실 호국원은 눈부시게 찬란한 햇살로 가득했습니다. 비석마다 내려앉은 빛줄기를 보니 문득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아버지가 외지 근무를 마치고 가끔 집에 들를 때면, 손에는 늘 카스테라나 과일 꾸러미가 들려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그 달콤한 선물에 마냥 신이 나 입가를 적셨지만, 그 찰나의 기쁨 뒤에는 늘 혼자서 가정을 꾸려야 했던 엄마의 깊은 한숨이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가져온 달콤한 간식보다 엄마가 짊어진 삶의 무게가 훨씬 더 쓰고 무거웠음을, 그때의 우리는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호국원의 눈부신 햇살 아래 서니, 이제는 그 모든 원망조차 한 조각 그리움으로 다가옵니다. 술 좋아하고 무뚝뚝했던 아버지는 한때 이 나라의 기틀을 세우기 위해 청춘을 바친 당당한 군인이었습니다.


“아버지, 고생 많으셨어요. 덕분에 우리가 있습니다.”

이곳 호국원에 잠드신 수많은 아버지와 그분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오늘날 대한민국이 건재하고, 우리 가족도 이 찬란한 햇살을 만끽할 수 있는 것이겠지요. 엄마의 구수한 육두문자는 내일이면 다시 그리움의 다른 이름으로 변해 있을 것입니다.


돌아오는 길, 차 안으로 쏟아지는 햇살이 유난히 경쾌하게 느껴졌습니다.

우리 곁에는 여전히 든든한 ‘영웅’ 아버지가 계시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