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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이 Mar 09. 2024

영국, 국립공원 우중 산책

Brecon Beacons 브레컨 비컨스 국립공원


봄은 진즉 이 섬나라에 진격해 들어와 꽃봉오리 폭죽을 터트리고 있건만,

비바람이 거세 며칠을 집에만 박혀 있자니 갑갑하고 서서히 숨이 막혀 온다.

비 때문에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이 봄을 허망하게 보내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 근처 드라이브나 다녀올까?"

  아침 식탁에서 내가 모모에게 별 기대 없이 던진 말이다.

"브레컨 비컨스 어때? 브레컨도 좋지만, 가는 길이 정말 멋지거든!"

  기다렸다는 듯 모모가 말했다.

"그래, 그럼 거기 가자!"


'Brecon Beacons National Park'

그동안 미루고 미루던 곳을 하필 비 내리는 오늘?

그런들 어떠리, 마음먹었으니 일단 가자!  

모모말처럼 가는 길이 예쁘다니 일단 드라이브라 생각하고 가보기로 했다.


'브레컨 비컨스'는 2013년 2월 국제 어두운 밤하늘 협회[IDA]에서 밤하늘 보호구역으로 선정한, (밤에 별이 가장 아름답게 빛나게 하는 환경을 조성하고자 광공해(빛공해)를 엄격히 규제, 관리하고 어두운 밤하늘을 만들기 위해 외부의 빛을 최대한 차단) 영국에서 밤하늘의 별이 가장 아름다운 공원으로 유명하다.

또 이곳은 산행뿐 아니라 영국 최고의 산악자전거 트레일, 승마, 카누, 낚시, 암벽등반, 행글라이딩, 캐러밴, 캠핑, 동굴탐험 등 온갖 레저활동이 가능한 곳이다.

특히 동굴이 많기로 유명하다. 영국에서 가장 깊은 동굴이 있어 탐험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동굴탐험 관련 큰 사건이 2021년 11월 발생했었다. 40대 남성이 동료와 함께 이곳에서 제일 깊은(깊이 275m, 길이 17km) Dan-yr-Ogof오거프) 동굴 탐험애 나섰다 발을 헛디뎌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지경으로 동굴에 갇혔었다. 다행히 동료의 구조 요청으로 영국 전역에서 구조 전문 봉사자들(300명)이 투입해 54시간 만에 구출했다는 이야기다.



❣ Brecon Beacons National Park 가는 길

우리 동네에서 공원까지 자동차로 50분가량 소요된다. 

가는 동안 비가 오락가락 해 중간에 멈췄음 하는 바람이었지만 더 거세지기만 했다. 

거친 빗줄기에 바깥 풍경은 상상도 못 하고, 그저 조심스럽게 나갈 수밖에, 작고 예쁜 마을들을 지나 20분 정도 달려 나오면 이런 거대한 구릉지대가 펼쳐진다. 실로 거대한 대자연 그 자체다. 한국처럼 산들의 막힘이 없어 그런지 끝없어 보이는 누런 평원과 그 가운데로 난 길고 구불구불한 도로..., 주말인데 우리처럼 무모하게 길을 나선 이들이 거의 없다.  

브레콘 비컨 국립공원 가는 길 - 굳이 부연설명이 필요치 않다.

'가는 길이 장관'이라더니, 변화무쌍한 안개비를 헤치고 아슬아슬 굽이진 구릉지대를 달리는 내내 오금이 저리고 심장이 쫄깃한 경험만 했다. 짙은 안개 때문에, 비바람 때문에 장관이라던 풍경은 아주 잠깐 멈춰 비바람과 맞서 사진 몇 장 찍는 걸로 만족해야 했다. 다행히 대평원을 달리다 보니 답답했던 가슴은 어느새  뻥 뚫려있었고, 입가엔 샐쭉거리는 미소가 한가득 번진다.


모모는 비가 와 조금 아쉽다지만,  

난 우중이라 더 좋기만 하다.

저 안개너머 아득한 곳,

보일 듯 말듯한 풍경이 애틋하다.

 갑자기 안개만큼 진한 그리움이 몰려온다.

내 사랑하는 이들이 그립다.

고향 가득 내려앉아 있을 봄 산하가 그립고,

고향서 무심한 딸을 그리워 그리워하실 엄마도 몹시 그립다.

생각만 해도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눈물을 감추려 차창밖 풍경에만 몰두한다.

   갱년기 떨군 지 언젠데 아직도 감정의 기복이 이렇게 심하다.

   좋았다, 우울했다, 영국의 날씨처럼 변덕스럽다.

   아름다운 걸 보면  내 그리움은 배가 된다,



웨일스의 모든 텍스트는 언제나 영어와 웰시어가 동반한다.

브레컨 비컨스 주차장(Pont ar Daf Car Park)에 도착해 가장 짧은 길을 택해 산책 삼아 가볍게 오르기 시작했다. 한국의 산들에 비하면 우리 동네 뒷산보다 낮은 곳이지만, 영국 남부에서 가장 높은(886m) 곳이다. 우리 기준에 낮지만 나름 험해 영국 군사 훈련장으로 쓰인단다. SAS, SBS 등 영국 특수 부대는 이곳에서 까다로운 선발과 훈련을 받는단다. 우리도 오르던 길에 훈련을 마치고 하산하는 비에 흠뻑 젖어 진흙탕에 범벅이 된 군인들과 마주쳤다. 그들을 보자니 모국에서 비슷하게 훈련할 군인들 생각이 스쳐 안쓰러운 마음이 앞선다. 그들에게 좁을 길을 살짝 비켜주며 우리도 그들을 따라 바로 하산했다.  비바람이 너무 거세 좀 더 올랐다간 아마  저 밑 계곡 속으로 바람과 함께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아서, 영국의 날씨는 계절에 상관없이 예측불가, 변화무쌍하다. 우기엔 변화무쌍 강도가 매우 심하다.


☗ 이끼를 고 있는 세월 먹은 고목, 그 자체가 한 편의 서사다.

산 초입에 만난, 고목이 이끼를  듬성듬성 덮고 있다.
낮은 평온 갇아 보이지만 사뭇 험준하다.


아름다운 계곡옆 인공 숲이 있지만 목자재를 위한 숲이다. 

애초에 이곳엔 나무들이 살 수 없었나 보다. 

살아남은 것들은 늪지대나 물먹은 잔디(풀) 밭을 벗어난 저런 언덕에 아슬아슬 

자리 잡고 있다.

인공 숲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것들은 다 자연 그대로다.

대부분 영국의 자연공원엔 간단한 식사를 할 수 있는 작은 식당 하나 없다.

누구든 자신의 먹거리를 챙겨 오거나, 근처 도시에서 먹고와야 한다.

비단 이곳뿐만 아니다. 

대자연속엔 자연만 태초의 모습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나는 이런 모습의 영국이 참 좋다. 

어딜 가도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지키려 하는, 지키고 있는 모습,

애써 정형화시킨 불완전한 모습의 자연은 비슷비슷하게 얼굴을 바꾼 이들의 

모습처럼 어색하다. 

부러 산허리를 깎아내고, 다듬지 않아도 길은 불편하지 않고 편안하기만 하다.



완만하고 평지 같긴 하지만 중간중간 늪지대가 있어 다듬어진 길을 따라 걸어야 한다.
산 허리쯤에서 내려다본 풍경

이걸 산행이라고 하기엔 좀 그렇다.

그냥 산책 겸 드라이브한 걸로 해야겠다.

더 좋은 날, 더 아름다운 날 잡아 밤하늘 별마중 하러 다시 찾겠다는 마음으로

가벼이 브레콘 비콘을 떠난다.

돌아오는 길에 심장이 더  쪼그라들었다.

어둠이 내리고, 비에 안개에 바람에 뒤범범인 영국의 아름 다운 날씨 덕분에,

산 중턱까지 밖엔 못 올랐지만 마음은 더없이 평온하고 따뜻해져 돌아간다.


비바림과 맞서다 돌아왔지만, 그 바람 속에 봄내음 듬뿍 맡을 수 있어  좋았다.

바람결에 내 진한 그리움을 조금 날려 보낼 수 있어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 런던에서 Brecon Beacons 가는 길

  1. 자동차여행 : 런던에서 3시간 50분 정도 소요.

  2. 기차여행 : 런던 패딩턴 역에서 기차로  '뉴포트(2시간 30분)' 또는 '스완지(3시간)' 역 하차 후 '시외

                        버스 터미널 이동, 버스터미널에서 브레컨행 버스 탑승. --> 브레컨(시내) 하차 후  브레컨 

                        비컨스국립공원 행 버스 다시 타야함.


# 영국 국립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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