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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이 Oct 16. 2023

한국에서 들여온 씨앗들(2)

농사에 농자도 모르는 내가 봄이 되자 한국에서 들여온 온갖 씨앗들을 잔디만 벗겨놓은 맨 땅 위에 뿌리대기 시작했다.  정말 그러면 되는 즐 알았다. 어디 한국 씨앗만 뿌려 댔을까? 이곳에서 사들인 씨앗까지 뿌리며 그렇게 한 해 농사를 시작해 볼 생각이었다. '여기서 저기까지는 텃밭, 그리고 여긴 나의 정원을 만드는 거야.'  이런 생각에 들떠 바깥 외출만 하면 온갖 꽃씨(채소포함)와, 장미 묘목, 구근들을 사들여 심고 또 심기를 반복했다.  씨앗의 파종 시기 정도는 확인했어야 했지만, 씨를 뿌려 논다면 어떻게든 싹을 틔울 거고 계절에 상관없이 이것들이 자라 준다면야 그때그때 뜯어먹으면 되고. 가끔 김치가 그리우면 한 줌 뜯어다 겉절이로 무쳐먹고, 무가 알차게 뿌리를 내리면 그걸로 시원한 대구 맑은탕도 끓여 먹어야지..., 정말이지 꿈이 너무나 거창했다는, 김칫국을 김치통째로 마신 게로구나 싶었던 건  딱 한 계절이 지나고서였다. 무가 뿌리를 내리지 않고 꽃대를 올리고 있다는 걸 느꼈을 때,  그때서야 나는 내가 사 온 씨앗 포장지 뒷면에 적인  파종시기를 읽었다. 적절한 파종시기를 간과한 실수를 저질렀지만,  더 큰 문제는 야생동물들이었다.  


처음엔 그런대로 새싹들이 이곳저곳에서 잘 올라왔고 어느 정도 잘 자랐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풍성한 잎사귀들에 구멍이 숭숭 뚫리고, 채소들이 뿌리째 뽑혀 있던지, 텃밭이 솜방망이처럼 부풀어 올라 채소들(채소뿐 아니라 장미묘목, 각종 화초도 포함)이 뿌리를 반쯤이나  내놓고 시들 시들 거리는 것이었다. '대체 어떤 놈들이 이런 거야?'

매일같이 자고 일어나면 곧장 텃밭으로 나갔다.  뒤집힌 땅을 다시 밟고, 뽑혀 시들 거리는 채소를 다시 심어 꾹꾹 눌러주기를 반복했다. 채소 농사야 망쳐도 사다 먹으면 그만이지만,  한국서 가져온 꽃씨들이 이제 막 맹아를 올리고 있건만, 어디 그것들 뿐인가?  이곳에서 하나둘 사다 심어놓은 어린 장미 묘목들까지 땅 위에 뿌리를 내놓고 시들어 가는 게 속상해 눈물까지 났다.  그럼에도 매일매일 다시 들뜬 땅을 밟아주고는 물 주기를 반복하다 어느 순간 범인들을 발견하고는 '아~이곳에선 농사를 지을 수는 없는 건가?'싶었다.


범인중 한 무리는 두더지였고, 다른 한 무리는 민달팽이들이었다.  

두더지, 민달팽이에 쉽게 물러설 수는 없었다. 두더지는 약이며 덫을 설치해 봤자만 허사였고, 슬러그는 매일 아침 핀셋을 들고 채소들을 들춰  잡아내기 시작했다. 하루에도 수십 마리씩 잡는데 이게 매일 개체수가 더 늘어나는 듯 끝이 없어 결국 인터넷을 통해 민달팽이 접근금지 약이 있다는 걸 알고는 곧장 달팽이 약을 한 보따리 사서 채소밭을 온통 파란색(파란 알갱이로 된 민달팽이 약)으로 만들어 버렸다. 더 이상 민달팽이가 채소를 뜯어먹는 일은 없었다.  문제는 두더지였지만 두더지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인터넷에서 두더지 잡는 법을 찾아 몇 가지 실행에 옮겼지만 모두 다 허사였다.  하면 할수록 스트레스만 쌓여 '그래 두더지야 너 하고 싶데 대로 하렴,  네가 땅을 뒤집어 논다면 나는 다음 날 더 단단히 밟아 줄게.'이게 최선의 방법이었다.        두더지가 뒤집고 간 자리를 다시 밟아주고, 시들어 가는 채소며 묘목들에 물을 주기를 반복하다 보니, 어설퍼 보이긴 했지만 하나 둘 뿌리를 내리고 자리 잡아가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다 내게 은인 같은 분(?)이 나타났다. 그가 우리 가든에 자리하고부터 그 몹쓸 놈의 두더지가 거짓말처럼 사라졌으니 말이다.(그분의 이야기는 다음 편에...)


그런 와중에도 그린하우스에서 발아 중이던 씨앗들이 하나 둘 싹을 틔워 지친 내게 작은 희망과 기쁨을 선물해 줬다. 한국서 먹었던 단감과 대봉감 씨앗, 그리고 포도(샤인머스켓=너무 맛있어서 몇 알의 씨앗을 챙겨 왔다.) 씨앗,  대추, 매화, 복숭아, 천도복숭아, 채리 등 많은 씨앗의 발아를 시도했지만, 이중 감나무, 채리나무, 복숭아, 포도나무(샤인머스캣 ), 이 아이들만이 싹을 틔워 우리 집 텃밭에 자리 잡고 있는 중이다.

그 묘목들이 자라서 꽃을 피우거나 열매를 맺는다면 가장 잘 어울릴 장소에

그곳에 꼿꼿이 서서 내 고향 향기를 폴폴 내뿜어줄 그런 상상도 하며,

그곳에 서있어 더할 나위 없이 그곳이 아름다워질 만한 그런 곳에 심어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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