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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이 Oct 21. 2023

텃밭의 파수꾼들...

 - 여우와 길냥이들 -

두더지가 텃밭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고부터는 거의 매일 눈만 뜨면 뒤뜰로 나갔다. 아니, 어디서 뭘 하든 온통 두더지 생각뿐이었다.  '이 못된 두더지가 또 어디를 들쑤셔 놨을까? 내 장미들은 과연 무사할까?   꽃을 특히 장미를 좋아해 이곳에 나만의 장미정원을 만들어 영국의 모든 장미들을 다 심어볼 요량으로 여기저기 꽃시장들을 돌며 사들인 장미묘목들이 아직 뿌리도 내리지 못하고 있건만,  그 여린 묘목들이 뿌리째 뽑혀 흔들거리니 허탈감은 제처 두고, 어떻게든 장미라도 지킬 마음이 컸기에 두더지가 지나간 땅굴 위에 위태롭게 서있는 장미에 밑거름을 주고 다시 심기를 반복하던 어느 날, 그분이 가든으로 올라가는 계단 중간쯤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다.


길 고양이였다. 그놈과 눈이 마주친 순간.'아, 고양이까지 이곳을 드나든다고?  두더지에 길냥이라고?' 그땐 그 녀석이 이렇게 가든(텃밭 )의 파수꾼이 될 거라고 상상도 못 했으니 말이다. 보통의 길냥이들은 사람과 마주치면 잽싸게 도망가 몸을 숨기던데 이 녀석은 나와 눈이 마주친 순간부터 한 계단 한 계단 앵앵 거리며 내려오더니 내 앞에 바짝 서서 날 올려다보며 세상 불쌍한 척하며 울었다. 그때  녀석은 정말 뼈만 앙상했었다. 금방이라도 내 앞에 머리 박고 쓰러질 것만 같아 급히 냉장고에서 햄  한 조각을 꺼내 찢어 줬더니 게눈 감추듯 먹고는 다시 내 앞에 앉아 앵앵거렸다. 다시 참치 캔 하나를 꺼내 주니 그것도 눈 깜짝할 사이 먹어 치워 버렸다. 그 후 이 녀석은 우리 집 구석구석에 자신의 체취를 뿌려놓고는 끼니 상관없이 언제든 와서 밥 달라 졸라댔다.  옛다 하고 이름도 하나 지어줬다. "양판봉"  판봉이 녀석이 드나들면서 녀석이 뿌려놓은 강한 그놈의 향기 때문이었을까?  어느 순간부터  텃밭 두더지 출몰이 조금씩 잦아들었다.

첫째 길냥이 양판봉 씨,  조용하고 순한 편이다

한 계절이 지나고 우리 가족이 판봉이와 서서히 정이 들어갈 무렵,  뒤뜰이 소란해 나가 보니 또 다른 녀석이 들어와 판봉이 밥그릇을 사이에 두고 대치중이었다. 그렇게  들어온 길냥이 한미리와 며칠 후 그 녀석의 뒤를 따라 들어온 붉은 영국 여우 한 마리, 이들이 들어온 후 판봉이는 우리 집 드나드는 횟수를  줄인듯했고, 새로운 길냥이(양아치라고 부르고 았음)는 옆집과의  경계로 심어놓은 울타리 아래 둥지를 틀어 '이곳이 이제 내 영역이노라.' 선포해 놓고 그곳을 든든히 지키고 있다.  하루에 한 번은 꼭 찾아오는 판봉이와 반 집냥이가 된 양아치, 그리고 잊을만하면 찾아오는 영국 여우, 이들은 만날 때마다 조금씩 으르렁 거리며 기싸움을 하지만, 그러다가도 은근히 서로의 길을 터주거나, 자신의 먹이 차례를 기다리는 등, 비록 동물들이지만 서로 공존하려 애쓰는 모습을 보여줘 보는 우리의 마음을 푸근하게 만들어주고, 더불어 텃밭의 파수꾼 역할까지 톡톡히 해 주고 있다.

주객이 전도된 판봉이와 아치
이름처럼 양아치 기질이 있는 아치씨는 조금 사납다.

어떤 연유의 인연이든 이 녀석들에게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고양이 두 마리는 사료와 고양이가 좋아하는 참치팩을, 여우에게는 그 녀석이 내려오는 길목에 닭다리나 생고기를  조금씩 내주고 있는데,  아마 양아치가  다 먹어 치우는 것 같다. 이런 와중에 나는 또 괜한 걱정을 한다. 주변 네이버들의 눈치가 보이는 거다. 집 여기저기 길냥이들이 오가고, 오픈된 곳에서 사료를 먹는 모습을 그들은 저 창문너머 커튼뒤에서 지켜보곤 할 텐데...,

그런들 어떠리, 이들이 발디디고 있는 이곳에 나 또한 그들과 공존하며 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감사하고 행복하면 그만이지...,

                                                         아치와 붉은여우님은 대치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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