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게직장에 다니거나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고, 공부를 위해 글쓰기를 그만둔 꽤 긴 기간도 있었지만 어찌 되었든 올해로 첫 소설이 출간된지 19년이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종수를 세어보지 않아서 항상 어림짐작만 했었는데, 이번 기회에 차례로 기억을 더듬어 보니 총 21종의 책을 썼다.
19년간 회사를 다닌 이 정도 연륜의 직장인이라면 못해도 부장급은 되지 않았을까.
그런데 나는 여전히 작가지망생처럼 필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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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 내 책들은 ‘폭탄’소리를 자주 들었다. 최선을 다해 열심히 썼지만 결과가 내 기대대로 나오지 않는 일이 다반사였다.
소설, 특히 장르 소설의 경우 개인의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폭탄’ 소리를 듣는 소설이지만 다른 누군가는 그 소설을 밤새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읽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는 부족한 재능에 화가 났고, 열심히 쓴 글이 누군가에게 쓰레기 취급 받는 것이 마음 아팠다.
뭐라도 해야 했다. 참신한 아이디어나 소재, 촘촘한 구성과 반전, 탁월한 문장이 환상적으로 조화를 이룬 소설로 대박을 터트리는 일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폭탄이나 쓰레기 소리를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그때부터 필사를 시작했다.
초반에는 좋아하는 작가의 글을 선택했다. (주로 박완서 님, 박범신 님, 은희경 님의 소설을 많이 썼다)
손가락으로 펜을 쥐고 종이에 한 글자 한 글자 써 나가는 게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키보드나 핸드폰에 익숙해진 손가락의 피로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눈으로 읽는 것만큼 속도가 나지 않으니 지루해지기도 했다. 하루에 한 바닥 정도 쓰는 것도 힘들었다. 재미 없다 느끼니 한 번 손에서 놓으면 며칠이고 필사 노트를 거들떠보지 않기 일쑤였다.
그래도 그만두지 않았다. 다음 번에 다시 노트를 펼치는 게 부담스럽지 않도록, 하루 한 줄만 쓰고 덮더라도 만족하는 연습을 하며 습관을 유지했다.
장편 소설은 더 필사를 지루하게 만드는 것 같아서 문학상을 받은 작가들의 단편 소설들을 필사하기 시작했다. 한 편의 소설 필사를 끝냈을 때의 성취감을 더 자주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자 조금씩 필사가 재밌어 졌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생각이 많아질 때, 음악을 틀어놓고 한 줄씩 필사를 하다보면 머릿속이 맑아지기도 했다.
집에서 주로 필사를 했지만 가끔은 남편과 카페에 데이트를 나가서도 조금, 혼자 커피를 마시러 가서도 조금씩 썼다.
적당히 소란하고 혼자 앉아있기 부담스럽지않은 스타벅스도 필사하기 좋은 장소
필사 덕분인지 재미없다는 소리는 들어도 폭탄이나 쓰레기 소리를 거의 듣지 않게 되었다.
그 이후로도 이미 하나의 취미가 되어버린 필사를 그만두지 않았다. 한국에 있을 때도, 쿠알라룸푸르에서도, 파리에서도 필사노트와 함께 했다.
쿠알라룸푸르 Klcc의 illy카페에서
쿠알라룸푸르에서 우리가 살던 풀먼 호텔. 남편은 일하고 나는 필사.
파리의 내가 살던 호텔 앞 카페 ju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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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양곤에 오면서 처음으로 필사 노트를 챙기지 않았다.
잠시 고민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양곤에서 내가 필사를 할 만한 몸과 마음의 여유가 쉽게 생기지 않을 것이란 예상이 들었다. 가뜩이나 아기에게 필요한, 꼭 가져가야 할 물건들이 수도 없이 많은데 작은 노트 하나라도 불필요한 건 양곤행 짐에서 빼야 했다.
예상대로 양곤에서의 생활은 정신 없었다. 노산이라 그런지 아니면 몸조리가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해외로 이동하느라 그랬는지 체력은 바닥이었고, 내니 겸 헬퍼인 N이 있었지만 그녀가 집안일을 할 때는 내가 아이를 돌봐야 했고 그녀의 퇴근 후에는 남편과 함께 육아를 하느라 늘 피곤했다.
겨우 생후 한 달을 갓 넘겨 양곤에 온 럭키는 밤에도 몇 번이나 깨서 밥을 달라며 울어댔고, 잠투정도 심했다. 그리고 우리는 육아에 아직 너무 서툰 초보 엄마 아빠였다.
(밤에 잠을 못 자서 너무 힘들었다.)
소설을 쓴다거나 필사를 하거나, 책을 읽는 따위의 여유는 사치였다.
하지만 거꾸로 매달아놔도 시간은 간다 했던가. (한국에 있는 언니가 조금만 버티면 한결 편해질 거라며 위로해주던 말이다.)
럭키가 통잠을 자기 시작하고,
밤수유를 끊게 되고,
몸도 조금씩 회복이 되고,
남편과 나의 육아 숙련도가 조금씩 높아지니 숨통이 좀 트였다.
소설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
아직 새 소설을 시작하는 건 무리일 것 같아 작년에 출간한 ‘고백의 순간(북큐브, 2023)’의 외전을 썼다. 가끔은 하루에 열 줄이나 스무 줄을 쓰고 뿌듯해 했지만 대부분은 한두 줄씩 썼다. 태블릿을 한 번 꺼내보지도 못하고 지나가는 하루도 허다하게 많았지만 그래도 조금씩 분량을 쌓아갔다.
럭키가 이유식을 먹기 시작하며 일거리가 늘어났다. 요리는 잘 하지도 못하고 즐기지도 않은데다 손까지 느린 내가 자식을 위해서 채소와 고기를 다듬고 찌고 데치고 갈았다. 너무 잘 먹어줘서 고맙지만 한국의 시판 이유식이 눈물나게 부러운 적이 많았다.
그러다 N이 하던 집안일을 맡아줄 파트 타임 헬퍼 딴딴을 채용했고 이유식을 만들고 난 뒤 초토화된 주방 정리와 설거지를 딴딴이 대신 해주기 시작하니 그마나 수월해졌다. 지금은 요령도 조금 생겨서 이유식 반찬을 하루 한 가지씩 후다닥 만들고 뒷정리는 딴딴에게 맡긴 뒤 식탁에(책상이 없어서 식탁에서 글을 쓴다) 앉을 여유가 생겼다.
외전 수정까지 끝냈으니 이젠 새 소설을 써야 할 타이밍이었지만 어떤 이야기를 써야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없다고 해서 허투루 보내기에는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럭키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면서(물론 내가 한 공간에 함께 있지만), 이 좁은 집에 고용인을 둘이나 두면서 만든 황금 같은 시간이었다. 그냥 하릴 없이 보내기보다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일, 내 식견이 확장되는 일, 경제적인 가치를 창출하는 일 처럼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었다.
그때 생각난 것이 필사였다.
누군가는 펜으로 노트에 남의 글을 따라 쓰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내게 필사는 독서와 함께 가장 건설적인 일 중의 하나였다.
마트에 갔을 때 노트를 한 권 샀다. 펜은 집에 굴러다니는 것 중 하나를 쓰기로 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한동안 시작하지 못했다. 남편이 감기에 걸려 고생했고, 그 감기가 럭키에게 옮겨와 열이 나는 아기를 돌보느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한국에 있을 때도, 아기가 없을 때도 매일 몇 줄씩 겨우 쓰곤 했었는데, 이런 환경에서 필사는 더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남편과 럭키가 회복한 후에도 자투리 시간밖에 남지 않으니 쉽게 마음이 먹어지지 않았다. 그러다 딱 5분만 써도 괜찮으니 시작이라도 해보자 싶어 억지로 노트를 펼쳤다.
필사할 소설은 2016년 이효석문학상 대상 수상작인 조해진 작가님의 ‘산책자의 행복’으로 골랐다.
막상 펜을 움직이니 마음이 편안해지는 걸 느꼈다. 귀에 버즈를 꽂고 집중하니 마치 예전에 혼자 파리의 카페에 앉아 필사를 하던 기억도 새록새록 떠올랐다. 비록 곧 점심을 먹어야 하는 N과 교대해서 럭키를 돌봐야 했지만, 시작했다는 뿌듯함이 밀려왔다.
시작이 반이라 했으니..
..
주말 아침을 먹으러 집 근처 호텔에 갔다가 애프터눈 티 패키지가 저렴한 걸 눈여겨 보았다.
어느 평일 오후, 딴딴에게 청소를 빨리 끝내달라고 해서 세 여자와 아기가 함께 호텔로 갔다. 세련되고 아늑한 카페 분위기에 나도, 딴딴과 N도 살짝 들떴다.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아 카푸치노 한 모금 마신 뒤 가방에서 사부작사부작 필사 노트를 꺼냈다.
딴딴과 N이 이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얜 지금 뭐하는 거지, 하는 눈길로 나를 잠시 쳐다보지만 이내 그러려니 하고 럭키와 놀아주기 시작했다.
눈부신 햇살이 비치는 창가에 앉아, 한 글자 한 글자 천천히 써내려 가니 절로 마음이 편안해졌다.
양곤 멜리아 호텔 olea 카페
내게 타고난 재능이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고 글을 더 잘쓰고 싶은 간절함으로 시작했던 필사지만 지금은 그 감정의 결이 조금 다르다.
나도 이렇게 좋은 소설을 쓰고 싶다는 자극, 무엇인가를 쓰고 있다는 위안, 어떤 방식으로든 나의 글쓰기에 도움이 될 거라는 막연한 믿음, 흰 여백을 채워갈수록 느껴지는 작은 성취감, 그리고 복잡한 머릿속을 단숨에 비우고 잠깐이나마 현실에서 벗어나게 만들어주는 해방감까지.
그저 노트와 펜 하나를 가지고,
누군가의 (좋은) 글을 따라 쓰는 이 단순한 행위가 빚어내는 긍정의 힘이 여전히 놀랍다.
내년이면 소설을 출간한지 20주년이 되지만, 아마 그때도 나는 여전히 필사를 하고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