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곤에서 생긴 버릇 중의 하나가 필요한 물건이 마트에 있을 때 넘치게 사두는 것이다. 특히 수입품의 경우 언제 다시 입고될지 모르기 때문에 타협하기 힘든 아기 물건은 사재기하곤 한다.
쑥쑥 크는 아기는 어느새 라지 사이즈의 기저귀가 맞지 않았고, 미리 사둔 기저귀는 5팩이나 남아 있었다.
가장 먼저 생각 난 사람은 N의 친구였다. 얼마 전 친구가 아기를 낳았는데 형편이 어렵다고 했다. 기저귀도 옷도 없어 그녀에게 도움을 청했다는 말에아기를 키우는 사람으로서 마음에 걸려 신생아용 기저귀를 사서 우리 럭키에게 작아진 옷들과 함께 전해줬었다.
하지만 라지 사이즈의 기저귀라 가뜩이나 한국 아기들보다 몸집이 작은 미얀마 아기가 사용하려면 꽤 오랜 시간이 흘러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주기적으로 고아원에 방문하시는 듯한 한국 교민분께 연락드렸다. 예전에 한국에서 가져온 아기 과자가 많이 남아서 초콜릿을 따로 더 구입해서 고아원에 후원할 때 함께 전달을 부탁드린 적이 있었다.
그분께서 10월에도 고아원에 후원 예정이라며, 흔쾌히 전해주신다 했다. 기저귀만 덜렁 보내기가 마음에 걸려 마트에서 과자와 라면, 여성용품을 추가로 주문했다.
전달할 초코파이와 누들. 그리고 문제의 기저귀들..
“오늘 고아원에 기저귀랑 같이 전달할 과자 배달 올 거야. 그냥 옮기긴 힘들 것 같은데, 로비에 있는 카트 쓰라고 딴딴한테 말해줘.”
럭키 목욕을 시키고 있는 N에게 통역을 부탁했다. 그러자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맴, 저 기저귀 한 팩 주세요.”
“왜?”
“친구 주려고요.”
순간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해졌다.
“그… 그래.”
차마 거절할 수 없어 그러마 대답하긴 했지만 표정관리가 힘들어 얼른 주방으로 도망치듯 피했다.
N이 말하는 친구란, 얼마 전 아기를 낳은 그 형편이 어렵다는 친구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불과 전날 N이 일요일에 럭키와 같은 달에 태어난 아기가 있는 친구집에 놀러 갈거라는 말을 내게 했었기 때문이다. 그때 그녀는 같은 달에 태어났지만 럭키가 훨씬 크다며, 럭키는 이미 라지 사이즈의 기저귀가 맞지 않지만 친구의 딸은 맞다는 말을 덧붙였었다.
짐작컨대, 아마 그때 N은 내가 먼저 -이미 럭키는 엑스라지 사이즈로 넘어가 쓸 일 없어 옷장 안에 쌓여 있는 라지 사이즈의- 기저귀를 주겠다는 말을 하길 바랐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뜬금 없이 기저귀 이야기를, 사이즈 운운하며 내 앞에서 할 이유가 없어 보였다.
당시에 살짝 눈치채긴 했지만, 친구들을 초대해 파티할 정도면 크게 어려운 상황도 아닌 것 같고 이미 기저귀들을 고아원에 보내기로 연락을 해둔 상태였기때문에 모른 척 했다.
그런데 내가 먼저 입을 열지 않자 그녀가 먼저 기저귀를 달라고 말한 것이다.
N의 입장에선 그리 어렵지 않게 꺼낸 말일 수도 있다.
지금껏 나는 럭키가 입던 옷, 쓰던 육아용품들을 N의 친구들에게 종종 주곤했다. 형편이 어려워서 일부러 도와준 적은 한 번뿐이었고 나머지는 그냥 더 이상 내가 쓸 일이 없는 물건을 버리는 것보다 다른 사람이 한 번 더 사용하는 게 합리적이고 환경에도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넘치게 남은 기저귀를 내내 지켜본 N은 이번에도 그런 의미로 내게 물었을 것이다.
혼자 주방에서 럭키의 이유식을 만들며 왜 N에게 못마땅한 기분이 들었는지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기저귀가 아까워서? 하지만 어차피 럭키가 쓰지도 못하는데, 포장도 뜯지 않은 물건을 그것도 제법 돈을 주고 산 수입 브랜드의 기저귀를 버리는 쪽이 더 아깝다.
돈이 아까워서? 한국의 당근처럼 페이스북에서 중고물품을 사고 파는 커뮤니티가 있다고는 들었지만 vpn을 써야 접속이 가능한 페이스북은 딱 한 번 접속해봤다. (정부에서 SNS접속을 제한하고 있어서 우회로를 써야 접속이 가능하다) 제값도 받지 못할 텐데 접속해서 글을 올리고 흥정하는 수고가 더 귀찮다.
N의 말투? 평상시랑 다름 없었다.
고아원에 더 많이 가져다주고 싶어서? 물품을 전해주기로 한 고아원에 기저귀가 필요한 연령대의 아기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다. 없다 해도 언젠가 고아원에 오게 될 수도 있는 아기를 위해 전달하는 것뿐이다. 전달해주실 분께 기저귀가 몇 팩인지도 말하거나 약속하지도 않았다.
도대체 왜 나는 심기가 불편해진걸까?
왜 주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을까?
그리고 나는 이 꼬인 심보가 처음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냈다.
당장 생각난 것은 N이 우리 집에서 일한지 두 달도 채 되지 않았던 띤잔 때였다. 띤잔은 미얀마의 최대 명절이다. 연휴 때 문을 열지 않는 식당과 마트가 많다고 들어서 식료품을 사두기 위해 연휴 전날 N과 함께 마트에 갔었다. (N은 열흘간의 연휴 중 사흘만 쉬고 모두 오버타임 특근으로 일을 하겠다 했다)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마트에서 정신 없이 식재료를 사고 긴 계산대에서 줄을 서 있는데, N이 말했다.
“제 친구는 띤잔 보너스를 받았대요.”
우리는 띤잔이나 보너스 이야기는 커녕, 서로 대화도 하지 않고 있던 상황이었다. 뜬금 없는 친구의 보너스 이야기에 나는 당황했다. 그건 그냥 ‘저도 보너스 주세요’라는 뜻과 같다고 나는 받아들였다.
얼마나 받았냐고 물어볼까 하다 그만두었다. 집집마다, 고용인마다 상황이 다를텐데 굳이 액수를 물었다가 그보다 적거나 많거나 고민하는 일이 더 골치 아팠다.
집에 와서 남편과 상의한 뒤 보너스를 주기로 했다. 사실 그땐 지금만큼 N과 정이 들기도 전이었기 때문에 더 마음이 불편한 건 사실이었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이기에 적어도 다른 집보다 덜해주고 싶진 않았다.
게다가 그녀는 아기를 돌보는 내니 아닌가. 내 아이를 돌보는 사람의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은 마음은 아기를 맡겨 본 부모는 이해할 것이다.
보너스 액수를 고민하다 월급의 절반을 주었다. 행복해하며 퇴근하는 N의 뒷모습을 보니 적게 준 건 아닌 듯싶었다.
이왕 준 거 기분좋게 줬으면 아름다운 마무리가 되었을 일인데, 이상하게 나는 기분이 상했다.
‘일한지 두 달도 안된 사람이 보너스 달라는 요구를 저렇게 천연덕스럽게 돌려서 말할 수 있을까.’
중간 중간 생각이 나면, 은근히 N을 괘씸해했다. 다행히 사흘 뒤 그녀가 다시 출근했을 때쯤엔 불편한 마음이 사라졌지만.
또 다른 일도 기억났다.
N과 함께 마트에 갔을 때 아들이 좋아한다며 10개들이 누들 과자 한 팩을 집어들었다. 집에 가서 돈을 줄 테니 계산을 내게 부탁했다. 하지만 그녀는 내게 돈을 갚지 않았다.
사실 한국 사람 입장에서는 너무 저렴한 가격이라, 그녀가 정말 돈을 내게 줬다면 내쪽에서 마다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녀가 너무 당연하게 돈을 주지 않고 과자를 들고 퇴근하는 뒷모습을 보며 씁쓸한 마음이 들었었다.
너무 미비한 금액이라 돌아서자마자 털어버린 찜찜함이긴 했지만, 이번에 다시 생각난 것이다.
난 왜 기분이 나빴을까.
보너스나 과자값이 아까워서는 아니다.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는 카페나 식당에 가는데 그럴 때마다 N에게 차나 밥을 사준다. 음식 배달을 시키면 두 번에 한 번꼴은 N의 음식을 따로 시켜서 퇴근길에 들려보내준다. 비싼 음식이든 저렴한 음식이든 특별한 게 있으면 N과 딴딴에게 맛보라며 간식으로 내어준다. N의 아들에게 가져다주라며 한국 과자를 종종 사주기도 한다. N과 딴딴 두 사람 모두 데리고 호텔 애프터눈티를 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