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을 배달시키면 두 번에 한 번꼴은 집에 갈 때 가져가라고 간단한 음식을 따로 주문해서 포장채로 N에게 주기도 하고, 그렇지 않을 땐 먹기 전에 미리 접시에 덜어놓고 먹고 가라고 한다. N은 그 자리에서 먹을 때도 있고 집에 가서 먹겠다며 싸가기도 한다. 전날에 등갈비를 시켜서 미리 N의 것을 덜어두고 먹었는데 음식이 많아 남았다. 냉장고에 넣어두려다가, 혹시 부족하면 더 먹으라며 N의 접시 옆에 나뒀는데 그녀가 먹지 않고 모든 음식을 집에 싸갔다. 난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라 개의치 않았는데 N과 마주하는 일이 많지 않은 남편 입장에선 좀 놀란 모양이다.)
그래.
바로 이거다.
상대방이 호의를 '당연'하게 여기는 것.
혹은 호의를 요구당하는 것.
호의는 선의로 베푸는 것이지 요구당해야 할 의무가 아닌데.
그러고 보니 남편은 가끔 잔돈을 주지 않는 그랩 기사가 기분나쁘다는 말을 했다. 사실 그랩 택시비의 잔돈은 정말 푼돈 중의 푼돈이다. 원화로 계산하면 몇십 원, 몇백 원 정도의 가치밖에 되지 않는다. 안 받아도 상관 없고, 실제로 안 받는 경우가 받는 경우보다 더 많다.
그런데 정말 당연하다는 듯이 잔돈을 주지 않는 기사들이 있다. 꽤 많다.
미안해 잔돈이 없어, 라고 말 한 마디만 해도 노 프라블럼 하고 기분좋게 내릴 수 있는데 너희 같은 외국인에게 이건 하찮은 푼돈이잖아, 라는 태도로 잔돈을 주지 않는 기사들의 태도가 거슬리는 건 사실이다.
또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집에 뭔가 문제가 생기면 콘도 매니지먼트에 연락해 직원을 부른다. 하수구 물이 잘 안 빠진다거나, 세면대 거울장 문이 고장났다거나, 에어컨이 시원하지 않다거나, 이유는 다양하다.
비용은 관리비에 포함되어 있어 별도로 지불하지 않아도 되지만, 뭔가 직원이 와서 고생했다 싶으면 약간의 팁을 주곤 했다.
그날은 세면대 물이 잘 빠지지 않아 직원을 불렀다. 한 명이 와도 거뜬한 일을 여긴 인건비가 워낙 저렴해서 그런지 두세 명이 오곤 한다. 그날은 관리직인 젊은 남자아이도 와서 좁은 집이 더 북적북적. (정작 일을 하는 사람은 한두 명이고 나머지 한두 명은 멀뚱멀뚱 서 있는 게 전부다.) 배수관에 무슨 약품을 넣어야 한다고 하기에 우리 집 헬퍼 딴딴에게 돈은 줘 보내 약품을 사오게 했다.
한 일이라곤 약품을 세면대에 부은 게 전부라 팁을 줄까 말까 고민하다 알아서 나누거나 실제로 일한 직원한테 주겠지 싶어 약간의 돈을 N을 통해 줬다. 딴딴의 시급 10배 정도의 금액이었다.
그런데 다음 날 나갈 일이 있어 로비에서 차를 기다리는데 로비의 여직원이 미얀마어로 N에게 무슨 말을 했다. N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한동안 두 사람은 대화를 주고 받았다.
차에 타서 N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맴이 집에 온 사람들에게 돈을 더 줘야 한대요.”
“내가 수리비를 지불해야한다는 거야? 아님 팁이 적다는 뜻이야?”
“저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나중에 돌아와서 더 정확히 물어볼게요.”
볼 일을 마치고 콘도에 돌아왔을 때, 로비에는 그 여직원이 아니라 다른 직원이 앉아 있었다. N은 직원에게 집에 뭔가를 고치러 왔을 때 우리가 돈을 지불해야하는지 물었고, 직원은 지불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럼 왜 아까의 직원은 그런 말을 했는지 물었지만 지금의 직원은 내 눈길을 피하며 자신도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기분이 나빴다.
물론 큰 돈은 아니지만 본인들의 월급에 비하면 결코 적다고만 할 수 없는 액수에, 사실 한 일도 그다지 없으면서 팁이 적다고 드러내놓고 사람을 앞에 두고 빈정거린 것 아닌가.
이후로 집에 뭔가를 고치러 온 사람에게 팁을 주지 않게 됐다. 준다 해도 얼마를 줄지, 주고 나서도 이게 적다고 돌아서서 비웃거나 투덜거릴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차라리 주지 않는 쪽을 택한 것이다.
..
삐딱해졌던 마음을 바로 잡고, 주방을 나갔다. 기저귀를 한 팩 꺼내 N이 가방과 옷가지들을 보관하고 있는 선반 위에 놓아두었다.
어차피 그 기저귀 고아원에 가져다주거나 버릴 거잖아, N의 태도에서 느낀 뉘앙스가 나를 기분 나쁘게 만들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겪어왔던 호의를 권리라고 생각하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반감까지 더해서 그녀에게로 향했던 것 같다.
옳고 그름을 떠나, 쿨하지 못한 내 모습이 싫다.
고아원에 가져다줘서 쓰든 N의 친구 아기가 쓰든 필요한 누군가에게 준다는 나의 의도는 달라지지 않고, 기저귀가 버려지지 않고 쓰여진다는 목적도 같다. 상대방의 태도를 문제 삼는 것은 어쩌면 내가 주는 행위, 베풀고 나서 느끼는 내 만족감을 박탈당해서 심통을 부리는 위선이기도 하다.
그녀에게 사모님(ma’am)으로 불리면서 호칭만큼의 아량도 없다는 점이 가끔 부끄럽다.
한심하지만, 그래서 쿨해지고 싶고 노력도 할 테지만 가지고 태어난 품이 이 정도 뿐이라면 앞으로도 가끔 한 번씩은 ‘호의를 권리로 아는 건가’ 하면서 발끈할 것 같다.
그러면서도 기분이 상했다는 말을, 나에게 당연한 호의를 요구하지 말라는 말을 할 만한 강단도 없다. 불편하고 어색한 상황을 만드는 건 더 스트레스니까.
얼마 뒤면 또 미얀마 명절이다. 띤잔 만큼 큰 명절은 아니지만 이미 남편과 나는 N과 딴딴에게 명절 보너스를 주기로 결정했다.
괜히 떠보거나 은근히 보너스를 요구하는 모습으로 N에게 실망하고 싶지 않은데, 차라리 보너스를 줄 거라고 일찌감치 말을 하는 게 나을까…. 쿨하지 못한 사모님은 오늘도 생각이 많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