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타임 핼퍼(가사도우미)인 딴딴이 집안일을 끝내고 돌아간 오후, 내니(육아도우미)인 N에게 아기를 맡기고 우리 부부는 침실에서 잠시 쉬고 있었다.
그때,
각자 핸드폰을 들고 침대에서 딩굴거리고 있는 우리 부부의 여유로운 휴식을 와장창 깨트리는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평소 아기가 칭얼거리거나 투정부릴 때 내는 울음소리가 아니었다. 이건 분명 넘어졌거나 부딪쳤을 때, 정말 아파서 내지르는 울음이었다.
남편과 나는 황급히 거실로 나갔다. N이 악을 쓰며 우는 아기를 달래려고 애쓰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아무 일도 없었어요. 그냥 갑자기 울기 시작했어요.”
나와 남편은 황급히 아이의 온 몸을 살폈다. 피가 난다거나, 멍이 들었다거나 하는 외상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아이를 품에 안고 달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이는 쉽게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조금 진정이 되었나 싶으면 다시 울기를 반복했다.
한참 후 아기는 잠이 들었다.
울다 지쳐 잠이 든 아기의 얼굴이 안쓰러웠다.
그리고
정말 N의 말대로 아무 일도 없었다면, 도대체 왜 아기가 악을 쓰며 울었는지 의아했다.
잠투정을 했던 걸까. 아니면 이가 나는 걸까. 그것도 아니면 단순히 성장통일까.
“아무 일도 없이 그런 울음 소리를 낼 리는 없어.”
남편은 단호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었든, 이런 일을 만들면 안 돼.”
혹시….
정말 N이 거짓말을 한 건 아니겠지.
거실에는 홈캠이 있었고, SD카드에 영상이 녹화되어 있을 테지만 확신할 수는 없었다. 미얀마는 매일 몇 번이고 정전이 되는데, 건물의 발전기가 돌아서 금방 다시 전기가 공급 되어도 한 번 전원이 나갔던 홈캠은 오프라인 모드에서 멈춰있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N역시 거실에 홈캠이 있는 걸 아는데 거짓말을 하진 않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10개월 가까이 봐왔던 내가 아는 그녀는, 최소한 내 아이에게 일부러 해를 끼칠 사람은 아니었다.
낮잠에서 깨어난 아기는 잘 놀다가도 울고, 또 그치길 반복했다. 그렇게 유아무야 몇 시간이 흘러 N은 퇴근했다.
“왼팔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
내가 설거지를 하는 사이 아이를 돌보고 있던 남편이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확실히 아기는 왼팔을 불편해했다. 좋아하는 장난감을 건네도 왼손을 쓰지 않았다. 방긋방긋 웃다가도 왼손을 건드리면 찡찡거렸고, 평소처럼 기려고 하다가도 왼팔이 바닥에 닿으며 힘이 가해지는 순간 자지러지게 울어댔다.
혹시 뼈에 문제가 생긴건 아닐까. 더럭 겁이 났다. 아기들 팔빠짐으로 인터넷에 검색해봤지만 정확히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없었다.
몇 번이고 아이의 팔을 만져보고 움직이게 해보고 맘카페에 검색하는 일을 반복한 뒤 우리는 더 늦기 전에 응급실에 가기로 결정했다.
아기가 예방접종을 해왔던 어린이 병원에 가려다가, 아기가 감기에 걸렸을 때 방문한 적 있는 국제 병원으로 가기로 했다. 국제 병원이 그래도 의사 소통이 조금은 더 수월하지 않을까 싶었다.
간단히 기저귀 가방과 돈만 챙겼다.
그랩 택시를 타고 양곤의 거리를 달렸다. 집밖에 나오는 걸 좋아하는 아기는 언제 아팠냐는 듯 차창 밖을 바라보며 즐거워했다.
“이러다 병원 갔는데 안 아파하는 거 아냐?”
“설마 그런 시트콤 같은….”
양곤의 아유 국제병원 응급실
양곤 시내 국제 병원의 응급실은 생각보다 한산했다. 접수를 하고 간단한 아기의 체온이나 체중 등을 체크한 뒤 바로 의사를 만날 수 있었다.
우리는 방에 있었고 내니가 아기를 보고 있었기 때문에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른다, 는 말로 남편은 상황 설명을 시작했고 왼손을 쓰려고도 하지 않고 왼팔에 힘을 주거나 건드리기만 해도 많이 울었다고 덧붙였다.
나이가 지긋한 여자 의사가 낯설어하는 아기를 위해 볼펜으로 오른손을 먼저 건드리며 장난을 쳤다. 아기는 방긋 웃으며 응했다. 의사는 조심스럽게 볼펜으로 아이의 왼손을 건드리는 순간, 나는 엄청난 울음을 예상하고 긴장했다.
하지만 아기는 울지 않았다. 비록 오른손처럼 볼펜을 잡으려 하진 않았지만 의사가 아기의 왼손가락, 팔꿈치, 어깨까지 차례로 손으로 더듬어 확인하는데도 투정 한 번 부리지 않고 낯선 의사의 얼굴을 신기한 듯 바라볼 뿐이었다.
울지 않는 건 다행이지만, 남편과 나는 당황했다. 우리는 아기가 오후 내내 얼마나 불편해하고, 아파했는지,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변명처럼 덧붙여야 했다.
의사는 뼈에 문제가 있어 보이진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왼손을 쓰지 않으려하는 것 같다고, 하루 이틀 지켜보고 나아지지 않거나 아기가 아파하면 엑스레이를 찍어보자고 했다.
아기가 먹어도 되는 진통제를 처방해줬지만 이미 집에 상비하고 있는 약이라 병원비만 지불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아기는 한밤의 외출이 즐거웠는지 집에 와서도 한참 잠을 이루지 않았다. 잘 놀긴 했지만 여전히 왼팔을 쓰지 않았다. 기어 다니지도 않았다.
“내일 N한테 너무 화난 티 내지 마. 안 그래도 눈치 보던데.”
여전히 N을 못마땅해하는 남편에게 말했다.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몰라. 어떤 실수가 있었을지도 모르고, 한눈을 팔았을지도 모르지만 최소한 N이 일부러 아이를 아프게 할 사람이 아닌 건 알아.”
나는 오래 전 조카를 돌보다 조카가 다쳤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힘이 센 남자아이였던 조카가 어두운 밤거리로 뛰어나가려는 것을 잡았는데, 순간 그 손을 놓쳐버렸고 내가 당기던 힘 때문에 조카는 바닥에 넘어졌다. 바닥에 쓸린 이마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었다.
언니는 나를 탓하지 않았다. 하지만 형부에게는 혼자 놀다가 넘어진 걸로 하자는 말로 나의 죄책감을 깊게 만들었다.
그때 조카는 세상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아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애를 다치게 했다.
아끼고 애틋한 마음이 있더라도,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걸 남편에게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런데 사람의 심리란 참 우습다.
그 밤 아기는 잠결에 뒤척이며 어쩌다 왼손이 바닥에 닿기라도 하면 울면서 깨길 반복했다. 나는 아이를 달래며 걱정과 피곤이 뒤섞인 밤을 보내야 했다. 그리고 그렇게 남편에게 잘난 체 했으면서, 아기의 울음 소리를 들을 때마다 마음 한 쪽에 N에 대한 원망이 생기는 것을 느꼈다.
화가 나고, 그 분노가 위선적으로 느껴져 한심하고, 누가 내 마음을 읽는 것도 아닌데도 부끄러운, 뒤숭숭한 밤이었다.
다음날 새벽 아기가 잠에서 완전히 깼다. 뼈에 문제가 없으니 혹시 아침이 되면 아기의 팔이 멀쩡하게 괜찮아질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기는 습관처럼 팔을 딛고 일어나려다 곧장 울음을 터트렸다.
남편과 나는 아기가 좋아하는 장난감으로 놀아주며 몇 시간에 걸쳐 아기가 왼팔을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게 반복했다. 그러다 보니 조금씩 아이도 덜 아파하며 조금씩 왼손과 왼팔을 쓰기 시작했다.
출근한 N은 전날 응급실에 다녀왔다는 내 말에 걱정스러운 얼굴로 하루 종일 조심스럽게 아기를 돌보았다.
다행히 아기는 다음날이 되자 언제 아팠냐는 듯 거침없이 기어다니고, 왼손으로 장난감일 쥐거나 장난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날,
남편과 내가 방에 있는 동안 내니와 함께 있던 아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기의 왼팔은 왜 아팠는지 여전히 이유를 모른다.
..
육아는 행복이면서도 고통이다. ‘나’를 지우고 ‘양육자’로 24시간을 살아야 한다. 아기를 보며 행복하면서도 지워지는 ‘나’에 대한 우울감과 더불어 체력적인 한계와 늘 싸워야 하는 전쟁이다.
그런 의미에서 육아를 도와줄 누군가가 옆에 있다는 건 말할 수 없는 행운이었다.
하지만 타인에게 내 아이를 맡긴다는 건 생각보다 꽤 용기가 필요한 행위다. 내 아이를 돌봐주는 사람을 믿지 못하고 끊임 없이 의심하는 괴로움이 육아의 고통보다 덜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상대에게 아이를 맡긴다 한들 한시라도 편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