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 말일은 우리 집 파트타임 헬퍼(가사도우미)인 딴딴과 내니(육아도우미)인 N의 월급날이다.
새벽형 아기인 럭키와 새벽 5~6시부터 하루를 시작해 아기가 잠드는 저녁 7~8시까지 정신없이 보내다보면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고, 또 그런 하루 하루가 모여 말일은 금방 다가온다.
“얼마 전에 월급 준 것 같은데 또 월급날이네.”
현관문 앞에 놓인 N과 딴딴의 타임시트를 넘겨다보는 내게 남편이 대답했다.
“이번에는 중간에 명절 보너스를 줘서 뭔가 더 자주 돈을 주는 느낌일 거야.”
얼마 전 더띤주(라고 발음하는 게 맞나…) 명절이 있었다. 미얀마의 가장 큰 명절인 띤잔 때는 N만 우리집에서 일하고 있었고 월급의 50% 정도를 보너스로 줬었다. 이번에 그냥 넘어가면 서운해할까봐 두 사람에게 약간의 보너스를 주었었다.
월급을 계산하려고 타임시트를 식탁에 가져와 앉았다.
다른 집은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집은 두 사람의 타임시트를 만들어 관리한다.
기본적으로는 출근 시간과 퇴근 시간을 쓰고, 협의한 시간보다 더 일을 하거나 각종 공휴일에는 오버 타임 란에 시간을 기록한다. 시간 외 수당은 1.5배로 계산해주기 때문이다.
보통 확인란에 내가 사인을 하긴 하지만 매일 체크하는 건 귀찮아서 일주일이나 열흘에 한 번씩 몰아서 대충 사인한다.
어차피 매일 정확히 시간을 기록했는지 감시할 각오가 아니라면 두 사람을 믿는 게 마음 편하기도 하거니와, 월급제인 N의 경우 지각을 했다 한들 그걸 이유로 월급을 깎는 것도 야박한 일이다. (요즘은 많이 나아졌지만, 우기 때는 한 달에 절반은 지각이긴 했었다. 하지만 도로 사정이나 교통 사정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이라 지적 하기가 애매했다.)
시간을 기록하는 정확한 방식을 정한 건 아니라서 두 사람의 스타일이 조금 다르다.
N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출근 시간을 기록한 뒤 옷을 갈아 입고 아침을 간단히 먹은 뒤 일을 시작하는 반면 딴딴은 집에 와서 옷을 갈아 입은 뒤 일을 시작하기 전을 기준으로 적는다.
퇴근 시간도 N은 업무가 끝나고 화장실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단장을 끝낸 뒤 집에서 떠나기 직전 시간을 기록하고, 딴딴은 집안일을 끝내고 본인이 할 일이 더 이상 없다고 생각될 때 시간을 기록한 뒤에 옷을 갈아입고 퇴근 준비를 한다.
딴딴에 비해 N의 근무 태도가 느슨하다고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파트타임에 시급제로 일하는 딴딴과 달리 N은 월급제(물론 공휴일이나 오버타임은 1.5배 시급을 적용하지만)인데다 종일 일하기 때문에 여유를 가지며 일하게끔 모른 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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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휴일이나 명절에는 1.5배의 시급을 적용해서 계산하는데, 누군가에게 월급을 준 경험이 없는 나는 N을 고용했던 초반에 남편에게 물었었다.
“공휴일이긴 하지만 평일인데. 공휴일에 쉰다는 조건이 아니니 월급 안에는 그 날의 일당이 이미 포함되어 있는 거잖아. 그럼 1.5배를 계산한 다음 이미 월급에 포함된 일당을 제하고 줘야하는 거 아니야? 그렇지 않으면 일당이 두 번 들어가는 거잖아.”
그러자 남편이 곤란한 듯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게 좀 애매해. 사전에 그 부분에 대해서 협의하지도 않았고. 그렇게 세세하게 계산하면 골치 아파. 또 큰 금액이 아니니까 그냥 줘.”
N은 일요일만 쉬고 연차는 없다. 그렇지만 가끔 불가피하게 쉬어야 하는 일들이 생긴다. 병원을 가야 한다거나, 가까운 사람의 장례식에 가야한거나 하는 이유로 양해를 구해오면 쉬게 해주거나 늦게 출근하게 한다. 그렇다고 차마 월급에서 그 날의 일당을 제할 수는 없었다.
(애초에 연차를 몇 개 책정해주고 그에 맞춰 월급을 조정한 뒤, 연차를 쓰지 않으면 월급에 연차 수당을 주는 방법을 써도 좋았겠다 싶다.)
또 N은 남편이 출장을 가거나, 새벽 일찍 부터 라운딩이 있어 나가야 하는 날에는 우리집에서 숙식을 한다. 숙식을 할 때는 아침에는 6시부터, 저녁에는 8~9시까지 일하는 것으로 협의했는데 아기는 7시면 잠자리에 들기 때문에 이후로는 설거지 정도만 하고 쉴 수 있다.
N의 입장에서는 왕복 3시간이 걸리는 출퇴근 노고 없이 오버타임으로 돈을 더 벌기 때문에 나쁘지 않은 조건이다. 그래서 그런지 매주 금요일이 오기 전에 ‘저 이번주 금요일에 집에서 자요?’하며 내게 묻는다. (보통 남편은 토요일 새벽에 라운딩을 나간다)
한 번은 남편이 한국으로 출장을 다녀오고, 이후로 연이어 미얀마의 어느 해안 지방에 팀빌딩까지 가면서 열흘 가까이 집을 비운 달이 있었는데 그때 N은 평소의 두 배에 가깝게 월급을 받았다.
그래도 돈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이 낯선 타국의 땅에서 남편 없이 홀로 아기를 지키는 밤에 N이 함께 있어서 얼마나 든든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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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딴은 아침 10시 정도에 출근해서 4~5시간을 일한다. 기본 월급을 맞춰주기 위해 일찍 끝나더라도 최소 4시간을 보장해서 계산하는데, 일찍 끝나는 날은 흔하지 않다. 특히 딴딴이 출근하지 않은 주말을 보낸 뒤 맞이한 월요일에는 할 일이 밀려 5~6시간 우리 집에 머물기도 한다.
딴딴은 오전에 다른 사무실 청소를 하고 우리 집에 일하러 오는데, 사무실 청소로 버는 돈은 본인이 쓰고 우리 집에서 받는 월급은 노모에게 보낸다.
40대 초반의 딴딴은 결혼을 하지 않았다. 나이가 많고 거동이 어려운 사촌 언니의 생활을 도와주며 언니의 집에 얹혀 살고 있다. 그럼에도 본인의 노후보다 부모를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 예전 K-장녀의 책임감이랑 비슷한 느낌이다.
그래서 그런지 항상 수줍게 웃고, 조용하고, 묵묵히 할 일을 하는 딴딴에게는 뭔가 더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명절 보너스를 준 다음 날, 그녀는 작은 비닐봉지를 내게 내밀었다.
그 속에는 내가 마시는 브랜드의 인스턴트 커피와 종종 간식으로 사는 치즈 과자가 들어 있었다. 항상 내가 더 많이 베풀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N과 딴딴을 챙기려고 노력하는데, 받는 입장이 되니 뭔가 기분이 묘하고 뭉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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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을 계산해서 타임시트 위에 올려두었다.
월급을 챙겨가는 모습도 두 사람은 판이하게 다르다.
처음 N에게 월급을 주었을 때 엄청난 돈뭉치를 일일이 세는 모습에 약간의 문화 차이를 느꼈다. 돈을 준 사람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액수를 확인하는 행동이 낯설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녀의 행동이 맞다.
20대 때 아르바이트를 하고 현금으로 월급을 받았을 때, 나는 왜 감사하다 굽신거리며 봉투를 화장실에 가져가서 셌을까. 내가 일한 시간을 정확히 체크하고, 계산된 액수가 맞는지 확인해야 했었다.
정당하게 일을 하고 받는 보수인데 왜 그렇게 송구스러웠을까.
반면 딴딴은 월급제인 N에 비해 시간제로 계산하기 때문에 더 철저하게 확인해도 모자랄 판에 타임 시트에 시수를 계산해놓은 것도, 올려놓은 돈의 액수도 확인하지 않는다.
N을 통해 정확히 시간을 확인하고 돈도 세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해봤지만 소용 없어서 그냥 편하게 하도록 내버려 둔다. 대신 내가 한 번 더 꼼꼼하게 확인하고 액수를 맞춰서 놓아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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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으로 줄 돈뭉치를 세면서 ‘아, 나 좀 성공한 사람 같다’ 는 착각이 들 때가 있다.
오랫동안 가난한 작가로, 여기저기 여러 출판사에서 들어오는 돈으로 연명하던 시절을 떠올리면 누군가에게 월급을 주는 사람이 된 지금의 상황이 재밌기도 하고, 황송하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