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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쪽같은 내 새끼 네 새끼 (1)

by 진양 Dec 04. 2024




우리 아기돌봐주는 내니(육아도우미)인 N은 어머니를 일찍 여의었다. 친척집에 맡겨졌던 그녀는 17살쯤에 일감치 결혼을 했고, 20살에 아들을 낳았다.



그 아들이 벌써 한국으로 치면 중학교 1학년~2학년쯤 되는 나이가 되었다. N이 나이는 나보다 열 살쯤 어리지만 부모경험은 한참이나 선배인 셈이다.



어느 부모가 안 그렇겠냐만은, N역시 아들 사랑이 끔찍하다. 아들의 미래를 위해 가족과 떨어져 홀로 싱가포르에서 헬퍼 생활을 하며 살림을 일궜고,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도 아들에게 영어와 수학 투션을 시키고 있으며, 간식으로 아들이 좋아할 만 한 음식을 주면 집으로 살뜰히 챙겨간다.



내 새끼를 돌봐주는 N의 아들이니 나도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마트에서 초코파이나 카스타드 같은 한국 과자가 있으면 아들에게 전해주라며 사주기도 했고,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할 때 가끔 N이 가져갈 수 있도록 따로 주문해서 들려보내기도 했다.



한국에 갔다가 돌아올 땐 샤프 세트와 키 성장에 좋다는 영양제를 사다주었다.



어느 날 N이 말했다.



“아들이 럭키를 직접 보고 싶대요. 사진도 이렇게 귀여운데 실제로 보면 얼마나 더 귀여울지 궁금하대요.”


“그래? 그럼 한 번 놀라오라고 해.”


그렇게 대화를 나눈 다음 날, N은 2시쯤 아들이 올 거라고 했다.


“미리 말해줬으면 간식을 사놨을 건데. 뭘 좀 시켜줄까? 아들이 햄버거랑 피자 중에 뭘 더 좋아해?”

“햄버거를 좋아해요.”

“그래? 그럼 kfc에서 햄버거 시켜야겠다.”





2시에 맞춰 햄버거를 주문했지만 도착한다는 아들은 깜깜무소식이었다. N은 아들을 데려다준다고 했던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다가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못 움직이고 비를 피하고 있대요.”



당시 미얀마는 우기였다. 매일 쉬지 않고 하루에 서너 차례 폭풍 같은 비를 뿌릴 때였다.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 3시, 4시가 되었지만 여전히 그녀의 아들은 도착하지 않았다. 햄버거는 식었고, 감자튀김은 눅눅해졌으며, 콜라의 얼음은 모두 녹았다.



몇 시간째 덩그러니 식탁에 놓여 있던 햄버거몇 시간째 덩그러니 식탁에 놓여 있던 햄버거


5시가 넘어서도 아들에게서 연락이 없자 어리둥절할 정도였다. N의 퇴근 시간은 6시였고 5시 30~40분 정도가 되면 쓰레기를 정리하고 집에 갈 준비를 하게 해주었다. 지금 당장 도착한다 해도 햄버거를 먹을 시간 여유가 없을 것 같았다.



“이제 쓰레기통 비워주고 집에 갈 준비 해.”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N의 전화기가 울렸다.  



“로비에 도착했대요.”



키카드가 있어야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기 때문에 N은 로비에 내려가서 아들을 데리고 올라왔다.



“헬로우. 나이스 투 미츄.”



그녀의 아들은 영어로 인사를 하며 집에 들어섰다.



N과 너무 닮은 얼굴에 한 번 놀라고, 생각했던 것보다 큰 몸집에 두 번 놀랐다. 오가며 거리에서 보게 되는 현지 아이들의 몸집이 작은 편인데 비해 N의 아들은 또래보다도 더 커서 언뜻 다 큰 청년처럼 보였다.



미얀마는 더운 나라라 그런지 가게나 식당에서 일하는 직원도, 집에 뭔가를 고치러 오는 콘도 엔지니어들도 주로 맨발에 조리 타입의 슬리퍼를 많이 신고 다닌다. 그런데 N의 아들은 폭풍처럼 쏟아졌던 비에도 불구하고 옷도 깔끔했고 양말과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아이로서는 최선을 다해 예의를 차린 것처럼 보여 왠지 기특한 생각이 들었다.



“선물이에요.”



아이는 봉지 하나를 내게 내밀었다. 담겨 있는 두리안을 보고 웃음이 빵 터졌다.



우리가, 특히 남편 두리안을 아주 많이 좋아한다는 걸 아마도 엄마를 통해 들었을 것이다. 미얀마산 두리안은 가격이 크게 비싸지 않은 반면 씨가 크고 과육이 적은 편이었고, 태국산 두리안은 과육이 많고 맛이 좋지만 비쌌다.



소년이 들고 온 두리안소년이 들고 온 두리안

다행히 미얀마에서 두리안이 나던 시즌이라 큰 부담없이 두리안을 받았다.


“잘 먹을게. 햄버거를 먹고 가면 퇴근이 늦겠다. 햄버거는 집에 가져가서 먹고 지금은 이것 먹어.”



나는 다 식은 버거 대신 초코파이와 콜라를 내주었다. 아이는 깍듯하게 인사하고 간식을 받았지만 먹진 않았다.



N이 쓰레기통을 비우고 옷을 갈아입으며 퇴근 준비를 하는 동안 그녀의 아들은 내가 돌보고 있는 아기를 신기한 듯 바라보거나, 어색하게 어르는 소리를 내며 놀아주려고 했다.



N이 퇴근 준비를 끝냈을 때, 아들이 수줍은 얼굴로 내게 무슨 말을 건네왔다.


“뭐라고?”


미얀마어인지 영어인지 알아 들을 수 없었다.


“같이 사진을 찍고 싶대요.”


N이 대신 아들의 말을 전해주었다.



“아… 나는 별로 안 찍고 싶은데. 아기랑 같이 둘이 찍어. 내가 찍어서 바이버로 보내줄게.”



아기를 안은 N, 그리고 그 곁의 그녀의 아들. 마치 한 가족처럼 소파에 앉은 세 사람의 사진을 찍어주었다.



N이 퇴근한 뒤 나는 사진을 N의 바이버로 보내주었고, 남편에게도 보내주었다.



말로만 듣던 아들을 직접 봐서인지, 어쩐지 N과 더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다.



몇 주쯤 지난 토요일 오후였다.


주말에는 출근을 하지 않는 딴딴 대신 N이 아기가 노는 거실과 자는 이부자리를 청소하는 동안 남편이 아기 놀아주고 있었다.



누군가 집 현관문을 두드렸다. 딱히 찾아올 사람이 없어서 처음에는 우리 집 현관문 소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또 다시 더 큰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남편이 아이를 안은 채 문을 열었다.


“서프라이즈!”


소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야?”

“음… N 아들 같은데?”

“뭐?”



사진으로 봤던 얼굴을 알아 본 남편이 소년을 집안에 들어오게 했다.



“어서 와. 앉아.”



웃으면서 N의 아들을 맞이했지만, 사전 약속도 없이 찾아온 행동에 속으로는 적잖이 당황했다.



우리 콘도는 카드키 없이는 엘리베이터를 탈 수 없는 시스템이었다. 아마도 로비의 직원 누군가가 직원 카드로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이렇게 집주인에게 어떤 확인 절차 없이 낯선 사람을 올려보내는 허술한 시스템이라면, 배달원도 집 앞까지 올 수 있게 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마트 배달이나 음식 배달이 왔을 때 로비까지 내려가야하는 게 너무 귀찮다.)



N은 아들이 온다는 걸 알고 있었을까? 그녀를 쳐다보았지만 속내를 읽을 수 없는 표정이었다.



“선물이에요.”



아이는 작은 봉지에 담긴 무엇인가를 내게 건넸다. 빼이자라고 불리는 미얀마 음식이었다. 으깬 콩을 밀가루 반죽을 튀긴 빵이랑 함께 먹는 음식인데 한때 내가 빠져서 아침 식사로 자주 먹던 음식이었다.



“고마워. 내가 빼이자 좋아한다는 걸 엄마한테 들었구나.”



그날 따라 집에 마땅히 대접할 간식도 없어서 콜라와 초코파이를 꺼내 소년에게 주었다. (남편이 좋아해서 콜라와 초코파이는 늘 집에 있는 편이다.)



아이는 엄마가 퇴근 준비를 하는 동안 우리 럭키 주변을 맴돌며 아기를 구경하거나, 베란다에 나가서 인야 호수가 보이는 바깥 풍경을 보기도 했다.  



두 번째 방문이라 익숙한 느낌이 드는지 N이 주로 핸드폰을 충전하는 작은 침실에 가서 자신의 핸드폰을 충전하기도 했다.



소년이 돌아갈 때까지 남편과 나는 미소를 잃지 않았지만, 현관문이 닫히고 난 후 나는 남편에게 솔직하게 말했다.



“나 조금 당황스러운데. 이거 오반가?”



아이가 엄마의 일터에 놀러올 수도 있다. 모두를 놀라게 해주는 깜짝 등장이 즐거운 일일 수도 있었다.



“사실 나도 좀 놀랐어.”

“자기는 태연해보였는데.”

“그거야, 아이니까.”


갑자기 찾아왔다고 해서 문전박대를 하거나, 당황한 모습을 드러내서 아이를 민망하게 만들 수는 없었다.



“버스로 한 시간 반 넘게 걸릴 텐데, 혼자 온 건가.”

“글쎄… 그런데 앞으로도 사전에 약속 없이 갑자기 이렇게 찾아오는 건 좀 곤란한데. N에게 이야기를 해야할까?”

“그것도 좀 애매하지 않아? 너무 박하게 구는 것 같기도 하고.”

“고민이다….”



그날 밤, 나는 왜 아이의 등장이 당혹스러웠는지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친구의 아들이 (사실 N은 친구는 아니지만, 품을 넓게 가지고 생각해보려고 노력했다) 집에 갑자기 찾아왔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선물로 사왔다. 그렇게 오랜 시간 머물지도 않았다.



어느 부분에서도 아이가 크게 잘못한 점이 없었다.



그런데 나는 당황했다.

부담스러웠다.

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했다.



혹시 아이가 여자 아이라거나, 나이가 좀 더 어렸다면 어땠을까?



상상을 해보니 크게 부담스럽지 않았다.



그렇다면 내가 부담스러운 가장 큰 이유는, 나보다 키가 큰 10대의 남자 청소년이 여자와 아기 밖에 없는 우리 집에 불쑥 찾아올 수 있다는 사실인 것 같았다. 순진한 소년을 잠재적 위협 존재로 인식하는 것 또한 마음이 불편했지만 그게 솔직한 결론이었다.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N은 나쁜 사람은 아니었지만 보너스를 달라거나, 물가가 너무 올라서 생활하기 힘들다거나, 본인의 월급이 많지 않다거나, 아들을 내년에 사립학교에 보내야 한다거나, 교통비가 이중으로 든다는 등의 ‘돈’ 이야기를 자주 꺼내는 편이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기저에 보너스나 월급 인상을 원하는 요구가 깔려 있는 말들이었다. 그리고 남편과 나는 그동안 그녀의 요구를 맞춰주려고 노력해왔었다.



나는 약간의 선물과 과자로 N의 아들을 가끔 챙기긴 했다. 하지만 소년과 더 가까워진다면 N이 뭔가를 부탁했을 때 더 거절하기 어려울 거라는, 나름의 속된 경제적 부담이 느껴진 것도 사실이었다.




며칠 후 나는 N과 마주 앉아 커피를 한 잔 마실 때 마음 먹은 것을 입 밖으로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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