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니와 헬퍼와 함께 우아하게 티타임
이라 쓰고 회식이라 부른다.
<이번 공휴일에 골프 약속 잡고 싶으면 잡아도 돼.>
몇 달 째 매주 토요일만 되면 골프를 치러 갔던 남편에게 너무하지 않냐고 투덜거렸었다. 이후로 2주 연속 내 눈치를 보며 골프 약속을 거절해야 했던 남편에게 선심 쓰듯 메시지를 보냈다.
<우린 회식하러 호텔 애프터눈 티 갈 거야.>
여기서 ‘우리’란 나와 11개월차에 들어서는 아기, 그리고 우리 집 파트타임 헬퍼(가사 도우미)인 딴딴과 내니(육아 도우미)인 N이다.
늘 비좁은 집에서 부대끼는 여자 셋과 아기 하나.
N과는 일주일에 서너 번 나가서 장보기 전에 카페나 식당에 가곤 한다. 하지만 우리 집에 오기 전에 다른 사무실 청소를 하고, 우리 집 일을 끝내고서는 아픈 사촌 언니의 수발을 들러 집으로 돌아가는 딴딴과 시간을 맞추긴 쉽지 않다.
예전에 집 근처에 있는 멜리아 호텔로 애프터눈 티를 마시러 종종 가곤 했지만 최근에는 기회가 없었다.
미얀마 양곤 멜리아 호텔의 olea 에서..
또 나름 맛있는 걸 사주고 싶어서 한국식 중국음식을 파는 홍콩반점에 다 함께 가기도 했다. 하지만 뭐든 잘 먹는 N과 달리 딴딴은 많이 먹지도 않고 편식을 하는 편이라 주문한 탕수육과 양장피는 손도 대지 않았고 밍밍한 볶음밥만 1/3정도 먹고 남긴 게 전부였다. (볶음밥에 부어 먹으라고 나온 짜장은 건드리지도 않았다!)
그러다 얼마 전 주말, 남편과 함께 역시 집 근처의 호텔 중 하나인 세도나 호텔의 애프터눈 티에 다녀왔다. 호텔 치고 케이크의 퀄리티가 많이 떨어지지만, 가성비 넘치는 금액을 생각하면 만족스러웠다.
잘 차려 입고 인증사진을 찍는 현지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N과 딴딴을 데려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풀문 공휴일에 일 끝나고 세도나 애프터눈 티 갈 수 있는지 딴딴에게 물어봐.”
딴딴과 나의 의사소통을 도와주는 N에게 말했다.
“가능하대요.”
“그래? 그럼 다음 주에 미리 예약하자!”
그런데.
애프터 눈 티를 가기로 한 날 며칠 전부터 아기가 콧물을 보이기 시작됐다. 코가 막혀 불편한지 밤에 잠을 잘 이루지도 못하고 칭얼거렸다.
이 상황에 한가하게 호텔 라운지에서 커피나 마시며 앉아 있어도 되는 걸까.
고민만 하며 쉽게 예약을 하지 못하고 시간을 보내다 약속 전날이 되었다.
현지 병원에서 처방받아 온 콧물 약을 먹이고 있었지만 아기는 여전히 콧물이 흘렀다. 그나마 다행인건 밤에 잠을 못 자던 증상은 사라져서 아기의 컨디션은 나쁘지 않았다.
세도나 호텔의 애프터눈 티는 금, 토, 일요일과 공휴일에만 가능한데 주말에는 일을 하지 않는 딴딴과 다시 시간을 맞추기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딴딴의 집에서 우리 집까지는 버스로 편도 한 시간 쯤 걸린다고 들었다. 일하러 오지 않는 날에 차를 마시러 그 거리를 오가라고 할 수 없다.)
이번에 취소하면 언제 다시 기회를 잡을 수 있을지 모른다.
“예약하자!”
콧물은 나지만 열이 나거나 아파하는 것도 아니고, 컨디션도 괜찮은데다 나가는 걸 좋아하는 아기니까… 하면서 마음 속에 일렁이는 죄책감을 덮어 버렸다.
N이 호텔로 전화를 걸었다. 직원은 예약이 가능한지 알아보고 다시 전화를 주겠다고 했다. 원래도 인기가 많은 패키지인데 명절이라 더 예약한 사람이 많은 것 같았다.
얼마 후 호텔 직원이 다시 전화를 걸어와 예약이 가능하며, 할인을 받을 수 있다는 말에 미리 Kpay로 결제까지 끝냈다.
드디어 풀 문 데이!
남편은 새벽 라운드를 나갔다가 시간이 맞으면 합류하기로 했다.
공휴일에는 사무실 청소를 하지 않는 딴딴이 평소보다 일찍 와서 집안일을 시작했다. 그녀는 2시가 되기 전에 일을 끝내고 옷을 갈아입은 뒤 아기와 놀아주었다.
“N, 원하면 너도 옷 갈아입어. 내가 가서 사진찍어줄게.”
N과 딴딴은 모두 론지 스타일의 일상복을 입고 출근을 했다가 움직이기 편한 헐렁하고 허름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일을 마치고 나면 다시 옷을 갈아입고 퇴근한다.
호텔이라고 해서 차려입고 가야 하는 건 아니지만 (나도 늘 반팔 반바지에 슬리퍼 끌고 다니는데 뭐…) 꾸며 입은 현지인들이 3단짜리 케이크 트레이를 옆에 두고 사진을 찍는 걸 봤던지라 어쩐지 허름한 일복을 갈아입고 가길 원할 것 같았다.
우리가 출발하기 전 돌아온 남편까지 해서 아기를 데리고
다함께 호텔로 출발.
나름 이 호텔 로비 라운지에 자주 오는데다, 외국인에 아기까지 데리고 다니는 특이점 때문인지 직원은 우리에게 아는 체를 해왔다. 그녀는 반갑게 인사하며 내 이름으로 예약된 테이블로 안내해주었다.
역시 연휴라 그런지 가족이나 친구 단위의 손님들이 많았다.
음료는 차와 커피 중에서 고를 수 있었다. 나와 남편은 아이스 아메리카노, N은 따뜻한 라테, 딴딴은 차가운 음료를 주문했다.
곧이어 두 가지 종류의 트레이가 우리 앞에 등장했다.
하나는 간단한 핑거푸드들이, 나머지 하나에는 케이크와 푸딩이 있었다.
미얀마 양곤의 세도나 호텔 로비 라운지
점심을 먹지 않았던 터라 배가 고팠지만, 나는 우선 N과 딴딴의 사진부터 찍어주었다. 가끔 아기와 사진을 찍어줄 때 N은 본인의 핸드폰 카메라보다 내 핸드폰 카메라의 화질이 더 좋다며 부탁하곤 했었다.
사실 나는 여러모로 똥손이라 사진을 썩 잘 찍진 못하지만, 여기저기 찍는 위치를 옮겨가며 열심히 찍어주었다. 마치 전문 사진사마냥 배경이나 트레이가 잘 나오도록 N에게 자리를 옮기도록 요구하기도 했다.
“사진은 바이버로 보냈어. 이제 먹자!"
인증샷을 찍고 난 뒤 우리는 본격적인 티타임을 시작했다.
트레이는 2인용으로 모든 핑거푸드와 미니 케이크들이 2개씩 올려져 있었다. 골프 멤버들과 점심을 먹고 온 남편은 여유 있게 커피부터 마시는 반면 배가 고팠던 나는 핑거 푸드부터 집어서 게걸스럽게 먹기 시작했다.
N과 딴딴의 트레이를 보니 나 혼자만의 속도보다도 느렸다. 여러 음식을 가리는 딴딴 때문이었다.
먹는 걸 즐기지도, 안 먹는 음식도 많은 딴딴에게는 이 시간이 크게 즐겁지 않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나름대로 N과 딴딴에게 기분 좋은 경험을 누리게 해주고 싶은 배려였지만 나 혼자만의 만족일지도 모른단 생각도 들었다.
아, 직장인들이 회식에 억지로 참석하는 그런 느낌이랑 비슷할까…?
음식양도 많은데 남편과 딴딴이 많이 먹지 않아서 케이크가 많이 남았다. N에게 포장해서 가져가길 원하면 그렇게 하라고 했다. (N은 집에서 주는 간식도 아들에게 주려고 안 먹고 가져가는 일이 많다.)
라운지를 나와 로비를 가로지르다 장식된 생화가 예뻤는지 N이 사진을 부탁했다. 럭키를 안고 꽃을 사이에 둔 N과 딴딴의 사진을 마지막으로 찍어주고 우린 호텔을 나섰다.
집에 도착하기 전에 딴딴이 버스를 타는 정류장에 먼저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기 전, 딴딴은 내게 아주 작은 목소리로 ‘쩨주띤바대’라고 인사를 건넸다.
얼마 전 N과 딴딴이 내게 가르쳐준 미안먀어라 알아들을 수 있었다.
‘고맙습니다’
그저 예의상 건넨 말일 수도 있다.
이 모든 게 그저 내 만족일수도 있다.
하지만 정신없이 집안일과 육아를 하며 여자 셋이 한 집에서 부대끼다 집 밖에 나와 여유 있게 차 한 잔 마시는 기회를 가진 것이 나쁠 것도 없지 않을까?
다음에 또 회식해야지.
그땐 딴딴이 좀 더 좋아할 만한 음식이나 장소가 어디일지 물어보고 그리로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