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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들국화

그때 당신은 당신이 다음 이야기를 쓰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당신의 삶은 권태로웠고 더 이상 당신의 삶을 밝힐 만한 새로운 일들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니 당신의 삶은 이 자리에 머무를 것이고 그냥 살아지는 것이라고.

그러나 삶은 야속하게도 당신에게 쓸 거리를 다시 던져주게 되었다.

당신은 다음 이야기를 쓸 수 있게 된 것이 기쁘지 않았다.

다시 나의 무너짐을, 글에 담아야 하는 순간이 왔구나.

제자리로 돌아오는 시계바늘처럼 다시 모든 것을 원점으로 돌리는 시간이 됐구나.

다시 이 폐허에서 홀로 남아 담벼락부터 모든걸 쌓아가야하는 순간이 왔구나.


당신은 그래서 당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아주 짧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모든 걸 쌓아올려서 다시 무너지기 전에 이 모든 것이 끝나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어쩌면, 아주 어쩌면 다시는 모든 게 무너지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그런 작은 희망을 조금이나마 간절하게 가져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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