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에서 알려드립니다 (2)
‘남극에도 생물이 살아요?’ 물론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곰팡이부터 귀여운 펭귄까지 다양한 생물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남극에서 생존하고 있다. 그런데 남극은 세상에서 가장 추운 대륙 아닌가? 남극은 얼마나 추운 곳이며, 도대체 어디에서 생물이 살아가고 있을까?
남극대륙은 지구에서 가장 차가운 대륙이다. 또 남극이 북극보다 추운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현재까지 남극의 최저 기온은 러시아 보스토크 기지에서 관측된 -89.2 ℃ 로 북극의 최저 기온인 -70 ℃ 보다 20 ℃ 가량 더 낮다. 남극이 북극보다 추운 이유는 지형적 특징 때문이다.
남극은 전체 표면의 약 98%가 평균 두께 2,000 m (200 m가 아닌 2,000 m!) 넘는 얼음으로 뒤뎦여있다. 남극대륙의 대부분을 뒤덮고 있는 얼음이 햇빛을 반사하므로 실제로 지표면에 닿거나 흡수되는 햇빛 양이 적다. 한편 남극대륙 주위는 남빙양 (南氷洋, Southern Ocean) 이라고 불리는 차가운 바다가 순환한다. 남빙양은 수온이 -2 ℃ ~ 10 ℃ 정도로 낮으며, ‘남쪽의 얼음바다’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곳곳에 얼음덩어리가 떠다니는 차가운 바다이다. 우리가 흔히 아는 대양인 태평양이나 인도양은 대륙으로 둘러싸여 있지만, 남빙양은 남극을 둘러싸는 독특한 바다이다. 차가운 남빙양이 남극 주위를 감싸며 순환하기 때문에 북쪽의 따뜻한 바닷물이 남극으로 가까이 가지 못한다. 반면 북극은 대륙이 아닌, 대륙으로 둘러싸인 바다이다. 남쪽의 따뜻한 바닷물이 북극으로 흘러 들어갈 수 있고 얼음이 녹아 햇빛이 많이 닿거나 흡수된다. 이러한 이유로 남극이 북극보다 기온이 더 낮다.
이렇듯 북극보다 추운 남극대륙의 어떤 곳에서 생물이 살고 있을까? 사실 남극의 육지와 바다 모두에서 생물이 살아가고 있다. 그 중에서도 남극 바다에 가장 다양한 생물이 살고 있는 삶의 터전이다. 얼마나 다양하냐면, 적어도 8,000 종 이상의 생물들이 남극 바다에 거주한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확인’된 생물이 8,000 종 이상이지 과학자들은 실제로 그보다 많은 생물이 남극 바다에 사는 것으로 예측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동물성, 식물성 플랑크톤부터 해조류, 어류와 포유류까지 다양한 범주의 생물군이 복잡한 생태계를 이루며 살아간다. 그 중에는 우리가 잘 아는 생물들도 있다. 해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미역처럼 생긴 해조류는 세종기지 인근 해안가에서 흔하게 발견된다. 숙취로 즐겨찾는 대구탕의 ‘대구’는 남극의 대표적인 어종이다. ‘새우’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새우가 아닌 동물 플랑크톤인 ‘크릴새우’와 크릴새우를 잡아먹는 ‘혹등고래’ 도 남극 바다에서 살아간다.
세종기지 근처 마리안소만에서도 혹등고래가 드물게 발견되었는데 혹등고래가 수면 위로 나올 때마다 대원들이 카메라나 드론을 갖고 뛰어나와 촬영하기도 했다.
바다 뿐 아니라 남극 육지에서도 다양한 생물들이 거주한다. 남극대륙은 언제나 하얗게 눈에 덮여 있을 것 같지만 여름이 되면 얼었던 눈이 녹으며 남극의 땅은 다채로운 색을 띄게 된다. 남극 육지에서 가장 흔히 관찰되는 생물은 지의류이다. 지의류 (地衣類), 즉 땅의 옷이라는 뜻처럼 지의류는 눈이 녹은 남극의 땅 위를 덮는다. 곰팡이와 조류가 공생하는 생물인 지의류는 열대지방부터 남극 같은 극지에서도 발견되며 척박한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생물이다.
지의류가 사는 곳 근처에는 이끼도 발견된다. 원시적인 식물인 선태식물에 속하는 이끼도 지의류와 마찬가지로 지구 어디에서나 발견되며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다.
특히 남극의 이끼는 남극의 추운 겨울에 생장을 멈추고 따뜻한 여름까지 기다리는 휴면 대사가 발달했다고 알려져 있다. 지의류와 이끼는 남극 전역에 각각 200 종, 100 종 이상 서식하며 남극 육지생태계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이들뿐 아니라 펭수 캐릭터로 잘 알려진 펭귄과 펭귄의 천적인 남극도둑갈매기와 남방큰풀마갈매기 같은 조류도 남극 육지에서 살아간다.
세종기지에서 도보로 30분 정도 떨어진 펭귄마을의 입구에서 보이는 남방큰풀마갈매기는 날개 폈을 때 길이가 150 cm ~ 210 cm 정도로 실제로 덩치도 크고 부리도 강해 보였다. 겉모습과 다르게 남방큰풀마갈매기는 사람이 지나가면 둥지에서 벗어나 달아났는데 이 때문에 겁을 먹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지나가야 했다.
이처럼 추운 남극에서도 수많은 생물들이 저마다 삶의 터전을 마련하며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