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떻게 쓸 것인가(2)_글감찾기
글감을 찾는 과정 두 가지
하지만 당장 내일까지 글 한 편을 써야하는데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아 고민이라는 분께는 ‘글쓰기 실력을 쌓아야 좋은 글감을 찾을 수 있다’는 말이 다가오지 않을 것입니다. 글이라는 건 대개 ‘마감’이 있기 마련입니다. 시간이 마냥 주어진 일이 아니라는 거죠.
이런 분들께는 우선 책꽂이 앞으로 가서 책 몇 권을 꺼내오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커서가 깜박이는 걸 보고 있는 것보다 살짝 돌아가는 것 같지만 일단 한 발 물러서는 게 낫습니다. 저도 글을 쓰다가 막히면 책꽂이 앞으로 서서 제목들을 훑어보면서 책을 꺼내기 시작합니다. 읽었던 책이나 사놓고 읽지 않은 책이든 상관 없습니다. 그리곤 끌리는 목차가 있으면 읽기 시작하면 됩니다. 뭔가 써야한다는 건 잊어도 좋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은 책을 읽다보면 쓸 거리가 떠오른다는 겁니다. 읽고 있지만 내가 곧 뭔가를 곧 써야한다는 무의식이 작동하는 건지 아니면 써야한다는 강박이 있기 때문인지 쓸 거리가 생깁니다. 혹시 한 권의 책이 영감을 주지 않으면 다른 책을 집어드세요. 끝까지 읽어내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니까요.
글감을 찾는 과정은 다음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주제 -> 글감으로
글감 -> 주제로
글의 첫문장을 쓰기 전 글쓴이의 사고는 위의 두 가지 중 한 가지 방법으로 작동합니다.
글의 주제를 먼저 떠올리고 첫문장을 쓰던가, 아니면 글감을 먼저 생각하고 글을 시작하던가.
예를 들어서 ‘세상은 아직 따뜻하고 살만해’라는 걸 말하고 싶다고 먼저 생각했다면 글의 주제를 먼저 생각한 것입니다. ‘세상은 아직 따뜻하고 살만해'라는 주제를 뒷받침할 수 있는 글감을 찾는 것이죠. 그러다보니 연말에 봤던 ‘전주의 기부천사' 뉴스가 떠올라서 그걸 주제를 뒷받침할 글감으로 쓰려고 메모를 합니다.
꺼내 온 책이 ‘의사소통’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었다면 ‘우리나라 세대간의 의사소통’, ‘Z세대와 소통은 어렵다’라는 주제가 연결될 수도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써야할 글의 주제가 떠오른 거죠. 주제가 먼저 결정되고 나서 그렇다면 어떻게 전달하지를 고민하는 과정이 ‘1) 주제-> 글감으로’입니다. ‘Z세대와 소통은 어렵다’라는 걸 주제로 잡았다면 회사에서의 에피소드를 글감으로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와 반대의 과정도 있을 수 있습니다. 책이 산티아고 가는 길의 여행기라면 지난 해 베트남 달랏에 갔던 이야기를 한번 써 볼까, 생각할 수 있겠죠. 달랏 여행기에 어떤 메시지를 ‘주제’는 아직 정하지 못했는데 지난 해에 베트남 달랏 여행을 글감으로 해서 써볼까, 하고 글감이 먼저 생각날 수도 있습니다. 달랏 여행 이야기로 독자들에게 어떤 주제를 전달할지는 모릅니다. 그런데 책에서 필자의 여행기를 보고 갑자기 ‘나도 지난해 달랏 여행기를 한번 써 볼까’하고 연상작용이 일어난 것이지요.
주제가 먼저 떠올라 시작했다면 글을 쓰면서 주제를 뒷받침할만한 근거들을 찾아야 할 것이다. 해마다 익명으로 기부천사 역할을 하는 뉴스, 노숙자들에게 따뜻한 한 끼를 먹이고 싶어 고생하는 사람들, 혹은 글쓴이 주변의 훈훈한 미담들, 고전에서 끌어올만한 인간의 따스함 등 이 근거들이 될 것입니다.
글감부터 글을 풀어갈 수도 있습니다. 연말에 전주의 기부천사 뉴스를 보고나서 저걸 가지고 글을 써볼까, 생각했다면 글감에서 글을 시작한 경우입니다. 이 뉴스의 경우 자연스럽게 글은 ‘세상은 그래도 아직 따뜻한 사람이 많고 살만하다’라는 주제로 나아갈 것입니다. 물론 글쓴이에 따라 전혀 다른 주제를 도출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주제가 확실한 글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 글감을 가지고 무엇을 말해야 할지 막막한 경우도 있습니다. 즉 가치판단이 뚜렷하지 않은 글감을 잡으면 그 글의 주제가 뭐가 될지 알 수 없습니다. 이게 어떤 주제에 이르게 될까 쓰면서 의심이 들 것입니다. 그래도 쓰기를 멈추지 말고 진행해 보시기 바랍니다. 글은 글을 쓰는 사람이 이끌는 행위지만 때론 글이 글을 쓰는 사람을 이끌어주기도 합니다. 그걸 믿고 쓰기 시작했다면 바로 앞 문장만을 보고 따라가 보십시오. 글감에서부터 글이 시작되면 처음엔 막막하지만 의외로 좋은 결과가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다음 글의 시작을 보겠습니다.
얼마 전 등산동호회 사람들과 베트남 판시판 등산을 다녀왔습니다. 판시판은 하노이에서 북쪽으로 버스로 5시간 거리에 있는 유명한 휴양지 입니다. 베트남에서 유일하게 겨울에 눈을 볼 수 있는 고산지대이며, 정상은 해발 3,143미터나 됩니다. 우리의 목적지는 당연히 정상까지 가는 것이었습니다. (....) - <인생의 승패는 어떻게 결정되는가_ p.256
등산동호회 사람들과 판시판 등산을 가는 경험을 담담하게 쓰고 있습니다. 글의 초반에는 이 글의 끝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확산’의 지점에서는 어디로 수렴될지 알 수 없습니다. 글의 중간쯤 내용을 볼까요?
그런데 제1캠프에서 제2캠프로 올라갈 때부터 선두와 간격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제2캠프까지는 3시간 정도를 예상했는데 상상했던 것보다 길이 험했습니다. 급기야 중도에 하산하는 사람도 생겼습니다. (....) _ p.257
만만치 않은 산행의 고통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오르기를 포기하고 하산하는 사람들도 생겼고 정상까지 못가고 중간에 비박을 해야할지도 모르는 두려움도 몰려왔다는 내용도 나옵니다. 그렇다면 이 등산 이야기는 과연 어떤 주제와 연결될까요? 글의 끝으로 가 보겠습니다.
우리는 정상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와서 그날 산행을 종료했습니다. 딱 15분 걸리더군요. 10시간 동안 힘들게 올라갔는데 15분 만에 출발선에 되돌아오다니. 약간 허무한 생각도 들었습니다. 10시간과 15분. 이 두 가지 시간의 간극이 매번 각자가 선택했던 인생인 것 같습니다. 다시 판시판에 오른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질문해 봅니다. 아마 다시 간다고 해도 저는 한 발 한 발 힘들게 오르는 산행을 선택할 것 같습니다. 힘들면 잠깐 멈춰 풍광도 둘러보고 바람도 느끼고 다시 걸음을 재촉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왔듯이 말입니다. - p.260
여기가 글감에서 시작한 글의 마지막입니다. 주제에 다다른 터닝포인트 10시간과 15분! 그 과정의 차이를 보여주기 위해 산을 오르는 긴 과정을 보여줬던 것입니다. 글쓴이는 쓰는 과정에서 10시간과 15분의 차이를 깨닫고 그걸 붙들고 주제까지 연결시켰을 것입니다.
글감과 주제가 잘 맞아서 처음부터 이 글감으로 시작해서 이런 메시지를 전달해야겠어, 라고 결정되면 좋겠지만 글쓰기에서 그런 행운(?)은 가끔 주어질 뿐입니다. 머릿 속에서 오래 가지고 있는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글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글감을 찾는 방법에 왕도는 없습니다. 평소 잘 관찰하고, 관심있는 것에 메모하고, 세 줄 일기라도 쓰고 … 이런 작은 습관이 왕도입니다. 무엇보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다’라는 걸 잊지 않고 세상을 향해, 또 나를 향해 촉수를 예민하게 뻗어놓는 것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