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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싶은 글과 써야할 글

by 강진



쓰고 싶은 글과 써야할 글

우리는 늘 선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하나하나의 선택이 모여 하루를 만들고 또 우리의 삶을 만들어 갑니다. 그 모든 선택의 합이 결국 ‘나’인 셈이죠. 아침에 눈을 떠서 아침 운동을 갈까말까부터 시작해서 퇴근 후 느긋하게 쉬면서 티브이 채널을 고르는 것까지 크고 작은 선택으로 하루가 채워져 있습니다.

미국 버지니아공대의 비즈니스 스쿨인 팜플린 경영대(Pamplin College of Business)에서는 우리가 눈을 뜨고 하루를 시작하는 시점부터 밤에 잠 들 때까지 얼마나 많은 선택을 하는지 연구했습니다. 그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하루 평균 약 3만5000회의 선택을 한다고 합니다. 어떤 바지를 입을까, 엘리베이터를 타고 갈까 아니면 계단으로 갈까, 점심 메뉴는 뭘로 할까 또는 누구랑 먹을까…. 어찌보면 눈을 뜨고 있는 매순간이 의사결정의 연속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쓰고 싶은 글’과 ‘써야할 글’도 글을 쓰는 사람에겐 선택의 영역입니다. 글을 쓰기 전 예상독자를 설정합니다. 대중적 글도 있지만 특정분야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글을 쓰는 경우도 있습니다. 제가 진행하고 있는 ‘코치의 글쓰기’는 경영코치들의 글쓰기 모임입니다. 이 분들이 쓰신 글의 주요 독자는 코치들, 기업의 팀장급, 임원들, HR담당자 등입니다. 그래서 리더십이나 코칭의 이론이나 과정, 자기 성찰 관련 글들을 주로 씁니다. 때론 주요 이슈에 대해 칼럼형식으로, 때론 경험을 토대로 에세이도 씁니다. 하지만 글감을 정치적 이슈나 종교적 신념같은 걸 글감으로 가져오진 않습니다. 어느 정도 독자의 범위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죠.

글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따라 글의 종류나 방향이 정해집니다. 글을 써서 특정한 지면에 발표해야한다면 글의 범위와 색깔은 더 선명해지겠죠. 책을 출간할 목적으로 원고를 쓴다면 어떤 책이냐에 따라 글의 성격이 결정될 것입니다. 독자들에게 정보를 잘 전달하는 글이라면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는 글이 될 것이고, 글쓴이의 의견이 강한 글이라면 뒷받침할만한 근거들이 들어간 글이 될 것입니다. 때론 스토리텔링이 많은 에세이나 칼럼도 있을 수 있습니다.




‘쓰고 싶은 글’과 ‘써야할 글’ 이 둘 사이를 고민한다면 ‘써야할 글’을 먼저 써 보시길 권합니다. 그렇지만 ‘써야할 글’에 대한 것이 지금의 글쓰기 실력으로 어렵다면 ‘쓰고 싶은 글’을 쓰는 것이 낫습니다. 처음부터 목표를 크게 잡으며 지치기 쉽습니다. 많은 분들이 책쓰기를 목표로 ‘리더의 글쓰기’ 과정에 들어왔지만 그 목표를 달성하신 분은 많지 않습니다.

책출간을 목표로 삼는다면 자신의 콘텐츠를 찾아 글을 쓰는 게 유리합니다. 요즘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과 관련된 것을 책으로 정리해서 출간하는 사례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경험까지 일반인과 나눈다고? 싶은 책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 발자국 다가가보면 특별해 보이는 직업군의 경험도 결국 ‘인간’과 맞닿아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전문직에 종사하고 계신데도 영역을 확장해서 다른 일을 하시는 분도 많습니다. 얼마 전 모임에서 만난 분이 그런 분들입니다. 명함에는 서울아산병원 박소연 교수는 치과의사라도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아래 ‘한국 코치협회 인증코치(KPC)’ ‘미 Gallup 인증 강점코치’ 라고 적혀 있더군요. 치과의사와 코치라는 게 연결고리가 없어 보이는데 두 가지 일을 다 하고 계셨어요. 관심있게 찾아보고 나서야 글쓰기도 열심히 하고 계시고, 치과의사로서 <슬기로운 어린이 치과생활>이라는 책을 출간했고, 강점코치로서는 <강점으로 키워라>, <주치의의 책처방전> 라는 책을 냈더군요. 아마 글쓰기가 서로 전혀 다른 분야처럼 보이는 ‘의사’와 ‘코치’라는 두 영역을 공고히하고 강화하는데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SBS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3> 촬영 자문의를 맡으셨고 단국대학교 권역외상센터 외상외과 조교수로 계시는 허윤정 교수님도 자기의 일을 확대해서 활동 범위를 넓히고 계십니다. 외상외과 의사가 겪는 삶과 죽음의 문턱에서 싸웠던 시간들을 기록해서 <또다시 살리고 싶어서>라는 책을 냈습니다. 거기서 존엄사와 노령화 , 공존같은 민감한 이슈들을 가지고 유튜브에 출연해서 의견을 말하거나 직접 독자를 만나거나 함께 심도 있게 이야기를 나눕니다. 자기만의 콘텐츠를 강화하고 일반인들과 만나는 방법 중 글쓰기만큼 유용한 수단은 없는 것 같습니다.




‘써야할 글’과 ‘쓰고 싶은 글’ 사이에서 망설이고 있다면 이런 단계로 고민을 해결해 보면 어떨까요? 지금 나의 콘텐츠가 뭔가 분명해 보이면 그것이 ‘써야할 글’입니다. 망설이지말고 ‘써야할 글’을 쓰십시오. 만약 난 내가 가진 콘텐츠가 뭔지 잘 모르겠어, 라는 생각이 드신다면 ‘쓰고 싶은 글’을 써 보시기 바랍니다. 혹시 압니까? ‘쓰고 싶은 글’이 모여서 나의 유용한 콘텐츠가 될지.

하지만 ‘써야할 글’은 물론이고 ‘쓰고 싶은 글’도 생각나지 않는다면 매일 일기라도 쓰시길 권합니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쓰고 싶은 글’이 떠오를테고 ‘써야할 글’도 생각날 것입니다. 글쓰기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을 한다면 오늘 쓰는 것이 중요하지 ‘써야할 글’과 ‘쓰고 싶은 글’을 구분하는 게 큰 의미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 글을 썼느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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