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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도 감정을 배우는 중이다.

감정, 조절이 아니라 다루는 것이다.

by 김정락

나는 감정 조절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특히 내 아들이 감정을 다스리는 법을 배우길 바랐고, 방학 동안 함께 연습하며 가르쳤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내가 아들에게 화가 날 때는 그 방법이 좀처럼 적용되지 않았다.

화를 다스리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감정이 솟구치는 순간, 내 안에서 뜨거운 기운이 빠르게 퍼져나갔다.

“지금 내가 흥분하고 있어.” 머리로는 분명히 알았지만, 몸과 마음이 먼저 반응했다. 이성을 붙잡고 싶었지만, 감정의 속도가 훨씬 빨랐다.

화를 억누르려 할수록, 오히려 감정이 먼저 튀어나왔다.


목소리가 높아지고, 말이 거칠어졌다.

그리고 감정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후회가 남았다.

“아들에게 너무 미안했다.” 그 미안함은 곧 “나는 아빠로서 자격이 있는 걸까?” 하는 자책감으로 변했다.


그때 문득, 내가 아들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화가 난 걸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변화가 시작되는 거야.”

나는 그 말을 나 자신에게도 적용해 보기로 했다. 화를 없애려 애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처음엔 감정을 조절하기보다, 화를 알아차리는 것부터 연습했다.

감정이 솟구칠 때, 심호흡을 먼저 했다. 코로 깊이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쉬면서 속도를 늦췄다. 그렇게 숨을 세 번쯤 내쉬고 나면, 목소리도 조금 차분해지는 것 같았다.

그다음은 말을 천천히 하는 연습이었다.

화가 나면 말이 빨라지고, 감정이 앞서면서 불필요한 말들이 쏟아졌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말의 속도를 늦추고, 한 문장을 다 말하기 전에 머릿속으로 한 번 더 생각했다. 그렇게 하면 불필요한 말은 줄어들고, 감정도 함께 가라앉았다.

감정 가라앉히는 남자.jpg

행동도 마찬가지였다. 손을 바쁘게 움직이는 대신, 천천히 몸을 일으켜 다른 방으로 가거나, 물을 한 잔 마셨다. 때로는 밖으로 나가 쓰레기를 버리고, 계단을 오르내렸다. 그렇게 몇 분만 지나면 처음보다 감정이 한결 차분해졌다.


그제야 깨달았다.

이 모든 과정이 효과를 보인 이유는 뇌의 구조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걸. 화를 일으키는 편도체는 즉각 반응하는 반면, 감정을 조절하는 전두엽은 비교적 천천히 개입한다. 화가 날 때 바로 이성을 찾기 어려운 건, 편도체가 너무 빠르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결국, 감정이 폭발하기 전에 전두엽이 개입할 시간을 벌어주는 것이 핵심이었다. 천천히 숨을 쉬고, 말을 늦추고, 몸의 움직임을 조절하는 것. 이 작은 행동들이 뇌가 감정을 조절할 시간을 주는 역할을 했다.


나는 여전히 감정을 완벽하게 다스리지 못한다.

그렇지만 예전보다는 훨씬 나아졌다. 그리고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을 깨달았다.

감정 조절은 한 번 배우고 끝나는 기술이 아니라, 평생 연습해야 하는 과정이라는 것.


아빠와 아들 같은 곳 응시.jpg

문득 나는 아들에게 너무 빨리 감정을 다스리라고 부추기고 있던 건 아닐까? 정작 나 자신도 잘 해내지 못하면서 말이다. 나 역시 여전히 감정을 배워가는 중이다. 그러니 아들도 서두를 필요는 없겠지. 우리 둘 다, 천천히, 함께 배워가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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