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려고 앉았지만, 뇌와 손이 멈춰 있다.
단어를 고르고, 문장을 가다듬다가 다시 지운다.
‘이렇게 써도 될까?’
‘이 문장이 어색하지 않을까?’
‘좀 더 좋은 표현이 있을 텐데.’
‘색다른, 나만의 독창적인 표현은 없을까?’
잘 쓰고 싶다는 욕심이 클수록, 글은 점점 더 나오지 않는다.
언제부턴가 나는 글쓰기를 하나의 완성된 결과물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글은 나무처럼 자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완벽한 형태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씨앗처럼 작고 어설프게 시작해서, 천천히 뿌리를 내리고 땅속에서 힘겹게 온 힘을 다해 가지를 뻗어나가는 것.
루소는 《에밀》에서 아이를 키울 때 자연의 흐름을 따라야 한다고 했다.
억지로 가르치려 하지 말고, 아이가 스스로 배우도록 도와야 한다고.
글도 마찬가지다. 어느 순간 튀어나온 문장을 붙잡고, 강제로 멋진 글로 만들려 하면 오히려 망가진다. 글이 자라도록 두어야 하는데 말이다.
억지로 완벽해지려 하지 말아야 한다. 완벽을 잊고 지내지만, 계절이 흐르듯 어느덧 다시 그 자리로 돌아온다. 지운 줄 알았던 완벽함은 자연의 섭리처럼 희미해졌다가도, 옛 기억 속에서 스근하게 돋아난다. 예전에 나는 글을 쓸 때마다 첫 문장을 완벽하게 써야 한다는 강박감이 있었다. 지금도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시작이 좋아야 글 전체가 좋아질 것 같았고, 첫 문장이 이상하면 전체가 틀어질 것 같았다. 그래서 몇 시간을 고민해도 첫 문장을 완성하지 못한 채 문서를 닫아버리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완벽한 첫 문장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첫 문장이 글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글이 완성된 후에야 ‘좋은 첫 문장’이 무엇인지 보인다. 그러니 처음부터 잘 쓰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처음은 엉성해도 괜찮다. 중요한 건, 일단 시작하는 것이다.
글에도 성장 과정이 있다.
루소는 인간의 성장 단계를 네 시기로 나누었다.
유아기, 아동기, 소년기, 청년기. 각 시기에 맞는 교육이 필요하듯, 글쓰기에도 단계가 있다.
처음에는 마구 써야 한다.
이 시기는 유아기다. 규칙도, 구조도 신경 쓰지 말고, 그냥 써 내려가야 한다.
생각나는 대로 적고, 문장이 엉망이어도 개의치 않는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말을 유창하게 하지 못하듯, 글도 처음엔 어설플 수밖에 없다.
그다음엔 고쳐야 한다.
이제 아동기다. 글을 다시 읽고, 흐름을 살펴본다.
어떤 문장이 어색한지,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 스스로 깨닫는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도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이건 틀렸어”라기보다는, “이렇게 바꾸면 더 좋아질 것 같아”라는 마음으로 다듬어야 한다.
조금 더 정교하게 다듬는 단계가 온다.
소년기의 글쓰기다.
이제 글의 구조를 고민하고, 문장을 좀 더 다듬을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틀에 갇히면 안 된다. 가장 위험한 순간이 바로 이 단계다. 틀에 맞추려다 보면 글이 생기를 잃는다. 내 글이 아닌, 마치 정답처럼 보이려는 글이 되어버린다.
마지막으로, 자기만의 글을 찾아야 한다.
청년기의 글쓰기다.
이제는 완벽한 문장을 쓰려는 게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내 방식대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 문법이 조금 틀려도 상관없고, 구조가 정형화되지 않아도 된다.
내 글이 나를 닮았다면, 그 글은 이미 완성된 것이다.
글을 길들이지 말아야 한다.
루소가 말한 자연주의 교육의 핵심은, 억지로 아이를 길들이지 않는 것이다. 아이를 가두고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스스로 성장하도록 돕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우리는 글을 쓸 때 자꾸만 ‘길들이려’ 한다.
‘이렇게 써야 한다.’
‘이런 문장은 피해야 한다.’
‘이런 표현이 더 좋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글은 부자연스러워진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좋아 보이는’ 말을 하게 된다.
그러면 글이 매끄러울 수는 있어도, 생명력을 잃는다.
글은 길들이는 것이 아니다.
자라도록 두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나는 그냥 쓴다.
오늘도 나는 엉성한 문장으로 시작한다. 틀린 문장도 있고, 어색한 표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이 글이 지금 어설퍼 보이지만, 조금씩 다듬으면 점점 나아질 거라는 걸.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글을 쓴다는 그 자체라는 걸 말이다.
그러니 나는 오늘도 그냥 쓴다.
자연스럽게, 강요 없이, 내 글이 스스로 자랄 수 있도록. 힘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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