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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는 인간, 변질되는 사회

사람, 변할수 밖에 없는가

by 김정락


사람은 변할 수밖에 없는가? 우리는 변하지 않으려고 애쓰지만, 결국 시간 앞에서 변할 수밖에 없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나는 변하지 않았다”라고 말하고, 변했다고 느낄 때는 초심을 유지해야 한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는데 어떻게 처음의 생각과 감정을 그대로 간직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단지 새로운 마음가짐을 다지고, 태도를 새롭게 할 뿐이다.


많은 사람은 변화를 부정한다. “나는 변하지 않았다”라고 말하거나, 변했어도 초심을 유지하면 된다고 한다. 하지만 초심은 잡을 수 없는 허상과도 같다. 애초에 초심이라는 것이 특정한 감정과 태도를 의미한다면, 시간이 지나도 그것을 똑같이 유지할 수 있을까? 결국 우리는 변하고, 변한 자신을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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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성공하면 사람은 변한다. 아니, 변하는 것이 아니라 본모습이 드러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통화할 때 예의를 지키던 사람이 있었다. 나직한 목소리로 공손하게 말하고, 작은 배려까지 신경 쓰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나름 성공한 뒤에는 달라졌다. 전화하면서 하품을 하고, 목소리 톤에서도 묘한 건방짐이 묻어났다. 아마 본인은 모르겠지. 하지만 듣는 나는 불쾌했다. 상대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 것일까, 아니면 원래 그런 사람이었는데 감출 필요가 없어졌을까?


또 다른 사람은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요청했다. 중요한 대화를 나누려는 자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그는 내 앞에서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며 거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내가 말하는 동안 고개도 들지 않았다. 순간 화가 치밀었다. 그가 만남을 요청했는데, 왜 나는 이 자리에 앉아야 했던 걸까? 관계란 무엇인가? 사람은 성공과 함께 변하는 걸까, 아니면 변한 뒤에야 본모습이 드러나는 걸까?


변한 걸 들키지 않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관계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끊고 만남을 줄이면 된다. 하지만 아무리 조심해도, 그 최소한의 관계 속에서도 변화는 드러날 수 있다. 결국 관계는 거울과 같다. 아무리 자신을 숨기려 해도, 상대방을 통해 드러나게 되어 있다.


만약 변한 모습이 드러나고, 계속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면, 선택적으로 행동할 필요가 있다. 사람들을 그룹으로 나누는 것이다. 아무렇게나 행동해도 괜찮은 집단, 잘해야 하는 집단, 적당히 거리를 두며 지내야 할 집단, 그리고 마치 없는 듯 살아가는 집단. 나는 그들에게 첫 번째 집단이었을까. 아니면 마지막 집단이었을까.


삶이 늘 선택의 연속이라면, 집단을 나누어 다르게 행동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변화를 감춘다고 해서 변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관계 속에서 변화를 들키게 마련이다. 초반에는 공손하고 정중하던 사람도, 시간이 지나고 환경이 바뀌면 조금씩 태도가 달라진다. 스스로는 변했다고 생각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타인은 그 변화를 감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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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는 인간을 기형과 괴물로 만든다. 원래 사회는 질서와 규칙을 세워 조화를 이루려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질서와 규칙은 점점 변형되어 왜곡되었고, 거짓과 비도덕이 습성처럼 자리 잡았다. 우리는 그 습성을 배우며 살아간다. 어릴 때부터 교육을 받고, 규범을 익히고, 관습을 따르면서 사회가 원하는 방식대로 행동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보이지 않는 강제적 강압이다. 법과 규칙만이 강압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거치며 만들어진 관습, 학습된 가치관, 보이지 않는 규제들이 결국 우리를 특정한 방식으로 살아가도록 조종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이 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사회가 만든 습성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방법은 단 하나, 스스로 성찰하는 것이다. 상황을 바꾸면 습성이 변하고, 습성이 변하면 결국 우리는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자연’이란 원시적인 삶이 아니라, 사회가 강요한 왜곡된 습성을 벗어던지고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과정이다.


퍼널 이론을 떠올려보자. 우리는 수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그들 모두가 우리의 가까운 인연으로 남지는 않는다. 과거를 돌아보면, 그때는 없어서는 안 될 것 같았던 관계들이 지금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가? 대부분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넓은 입구에서 좁은 출구로 이어지듯, 관계 역시 시간이 흐르면서 정제되고, 결국 필연적으로 선택과 집중이 이루어진다. 즉, 관계는 ‘정제의 과정’이다.


그러니 관계가 줄어든다고 두려워할 필요 없다. 나이가 들어서 관계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본연의 자연스러운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다. 자연에서 태어나 사회 속에서 괴물이 되었다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 이것이 어쩌면 다행인지도 모른다. 반면, 끝까지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욕망에 휩싸여 살아간다면, 평생 사회가 만들어 놓은 기형적인 틀 속에 갇혀 살게 될 것이다.


변했다고 서운해하지 마라. 너도, 나도, 결국 누군가에게는 변한 사람으로 보일 테니까. 중요한 것은 변화 자체가 아니라,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활용하느냐다. 사람은 변하지만, 어떤 변화를 선택할지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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