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가르쳐준 지혜
거대한 바위틈을 비집고 올라온 작은 꽃 한 송이. 우리는 흔히 그 꽃을 보고 감탄하지만, 정작 바위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그 장면에는 또 다른 이야기가 숨어 있다. 우리는 바위틈에서 온 힘을 다해 자라는 꽃과 나무를 보며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이겨내야 한다.”라고 생각한다. 절박한 상황 속에서 뿌리를 내리고 버티는 모습은 흔히 인고(忍苦)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무와 꽃은 바위 위에 자신의 흔적을 새기며 더욱 강한 생명력을 키워간다.
그런데 우리는 쉽게 지나치는 또 하나의 존재가 있다. 바로 바위다. 나무와 꽃이 제 모습을 갖출 수 있도록 바위는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바람과 비, 세월을 견디며 점점 닳아가고 있지만, 결코 자신을 희생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나무와 꽃도 바위에 기대어 살아가지만, 바위의 존재를 당연하게 여기지는 않는다. 이들은 서로를 짓누르거나 억누르지 않고, 각자의 자리에서 존재하며 균형을 맞춘다.
자연에서 배우는 조화의 법칙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누가 더 애를 썼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서로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가”이다. 자연은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주어진 환경 속에서 서로에게 맞춰가며 균형을 이룰 뿐이다. 나무는 바위틈에서 길을 찾고, 바위는 그 나무를 받아들이면서도 묵묵히 자리를 지킨다. 바람은 가지를 흔들어 내성을 키우고, 비는 흙을 적셔 뿌리를 단단하게 만든다. 서로 다른 존재들이 충돌하지 않고, 함께 살아가며 하나의 흐름을 만든다.
하지만 인간은 어떨까? 우리는 이분법적 사고에 익숙하다. “너 아니면 나”, “이쪽 아니면 저쪽”처럼 무언가를 선택하는 일에 익숙하고, 한쪽이 살아남으려면 다른 한쪽이 희생해야 한다고 믿는다. 사회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음에도,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곧 성공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사회는 서로 연결된 관계 속에서만 온전히 작동한다.
예를 들어, 드라마나 영화를 보자. 주연이 있고, 조연이 있으며, 연출가와 촬영 스태프, 음향 담당자와 편집자가 있다. 우리는 흔히 주연 배우에게 집중하지만, 조연과 엑스트라, 조명을 비추는 스태프, 소리를 조율하는 기술자까지 모든 요소가 맞물려야 하나의 작품이 완성된다. 이 중 하나라도 빠진다면, 이야기는 온전히 전달되지 못할 것이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누구는 앞에 나서고, 누구는 뒤에서 받쳐주며, 누구는 흐름을 조율하는 역할을 한다. 특정한 역할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각자가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때 비로소 건강한 균형이 만들어진다. 자연이 그러하듯, 사회도 서로를 배제하거나 억누르지 않고, 유기적으로 연결될 때 온전해진다.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은 우리의 선택이다.
같은 장면을 보더라도, 해석은 사람마다 다르다. 바위틈에서 자라는 꽃을 보며 누군가는 “어떤 환경에서도 이겨내야 한다”라고 생각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바위가 없었다면 꽃도 존재할 수 없었다”라고 말한다. 둘 중 어느 것이 더 옳은 시각일까?
우리는 때때로 세상을 하나의 정답으로만 보려고 한다. 하지만 자연이 그러하듯, 사회도 한 가지 시각만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관계 속에서 균형을 이루며 존재한다. 중요한 것은 한쪽을 강조하며 상대를 희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제자리를 지키면서도 서로를 살리는 방식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것이다.
결국,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경쟁과 배척이 아닌 공존과 균형을 택할 수 있는가? 자연이 스스로 그러하듯, 우리도 배워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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