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행동과 이해하는 속도가 느리다. 당신들은 어떤가?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 행동이 빠른 사람, 두뇌 회전이 빠른 사람은 삶에서도 작업 처리와 이해 능력이 빠르며 효율적이다. 이런 사람은 남들로부터 사랑받는다. 나도 사랑받고 싶어 속도, 빠름을 추구했다. 결과는?
어린 시절뿐만 아니라 지금도 책을 읽고 내용을 파악하는 데도 긴 시간이 필요하다. 손으로 하는 만들기는 시간도 오래 걸릴 뿐만 아니라 정교함도 떨어졌다. 동작이 꿈 떠서 어려서는 많이 혼났다. 칭찬받기보다는 야단맞지 않기 위해 빨리 움직여 보지만 생각과 달리 속도는 나지 않았다. 느린 행동은 변하지 않았고 결과물도 꼼꼼함으로 나타나지 않았다.
욕먹는 상황이 계속되다 보니 나중에는 빠르게 행동하지 않았다. 어떤 일은 의도적으로 느리게 행동했다. 그때 심정은 이렇게 하나 저렇게 하나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포자기하는 심정은 아니었지만, 행동의 변화와 교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데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그래서 이 행동을 고치기 위해 서두르다 보니 오히려 실수가 잦아졌다. 누구나 자기 속도가 있는데 타인에게 맞추려고 보니 좋지 않을 결과만 일어나게 되었다.
학습도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이었다. 느린 두뇌 회전 때문인지 배움의 익숙함, 숙련도가 떨어졌다. 이로 인해 아는 척, 대충 넘어가는 부분이 많았다. 알고 싶은 욕망도 있지만 모른다는 창피함과 질문하는 용기가 없어 소중한 시간을 놓쳤다. 나의 삶은 그래 왔다.
느린 행동과 이해의 속도가 느린 점 중 어느 부분의 잘못이 크고 먼저인지는 모르겠지만 배움을 지루해했고, 고통을 참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가 잦았다. 결과야 당연했지만 받아들이기는 싫었다. 그래서일까? 항상 허황한 꿈을 꾸고 과거 속에 살고자 했는지 모르겠다.
내 인생은 ‘날 빌드’와 같다. 즉 급조되듯 체계적인 순서는 없고 불안한 틀로 이루어졌다. 구멍을 때우는 삶은 피곤함, 어려움, 힘듦의 연속이었다. 자신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과 그때그때 땜질하듯 살아가는 인생이 안정될 리 없다. 인생은 안정함은커녕 불안함을 느끼고 자신감마저 떨어졌다.
하는 일에 있어서 항상 부족을 느끼는데, 당연한 일이었다. 곰국처럼 오랜 시간 끊여야 맛이 우러나는데 짧은 시간에 이루려고 하니 부족했다. 더불어 깊이도 없고 양도 부족한 상태, 수박 겉만 핥는 격이다.
느림의 미학처럼 꼼꼼했다면 결과는 달라졌다고 생각한다. 흔히 알고 있는 우화 “토끼와 거북이 경주”처럼 말이다. 내 잘못이고 못난 점이 드러남을 무서워했다. 지금처럼 공부해 인생이 양극성, 중용을 알았다면 결과는 다르게 됐을 것이다. 느림이 나쁜 것도, 빠름이 좋은 면만 있지 않다. 느림의 이면에는 꼼꼼함이고, 빠름은 효율이 탁월하지만, 이면에는 실수가 있다. 이것은 좋고 나쁘고, 옳고 그름의 차이가 아니다. 그 사람 인간 본연의 속성일 뿐이다.
골프 경기는 속도가 중요하다. 첫째, 멀리 치기 위해서는 속도가 필요하다. 속도가 없으면 골프공을 멀리 보내지 못한다. 둘째, 경기 지연으로 속도를 중요시한다. 늑장(느림보) 플레이어에게 벌타를 준다. 하지만 우리는 선수가 아니다. 선수를 따랄 할 필요가 없다. 우리의 속도가 중요하다. 급하게 속도를 내면 스윙을 망치는 경우가 많다. 또 볼을 치고 다음 장소로 갈 때 서둘러 가는 게 좋지 않다. 자신의 속도를 유지해야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항상 이야기하듯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선수와 우리는 다른 공간과 시간에 있다. 그들에게 맞출 필요가 없다.
이제 나의 느림을 나부터 이해하고 사랑할 수밖에 없다. 그게 ‘나’이기 때문이다. 느림은 깊게 볼 수 있고, 깊어지면 체계가 잡히고, 체계가 잡히면 빨라진다. 느림으로 인해 고민할 필요가 없다. 다른 사람 시선보다는 내 성공이 더 중요하다. 나를 잡아가고 올바로 세우기 위해 지금, 필요한 도구는 책 읽기가 아닌 지독한, 체계적, 미친 책 읽기가 필요하다. 지금 의식도 책 읽기에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