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맨 얼굴로 세상을 살지 않는다.
우리는 언제나 얼굴 위에 또 다른 얼굴을 얹고, 그 얼굴로 사람들을 만난다.
선생으로서, 부모로서, 연인으로서, 친구로서, 동료로서 —하나의 얼굴은 다른 얼굴로 겹쳐지고, 그 안에서 우리는 조심스럽게 관계를 이어간다.
이 가면들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가면이 없다고 해서 순수한 건 아니다. 오히려 거칠고 위험할 때가 많다. 사람 사는 세상은 가면을 통해 만들어진다.
화를 꾹 참아 미소로 바꾸고, 속상함을 눌러 따뜻한 말로 건네고, 초조함을 숨기며 차분해 보이려 애쓰는 것 —이렇게 우리는 서로를 덜 상처 주며 살아간다.
가면은 인간의 미덕이자 살아가는 지혜다.
하지만 가면은 때때로 인간을 벼랑 끝으로 몰아넣는다.
문제는 가면이 ‘역할’이 아니라 ‘위선’이 될 때 생긴다.
친절이 계산되고, 정직이 연기가 되고, 약속이 껍데기로 남을 때, 가면은 점점 사람의 얼굴에서 사람다움을 지워간다. 더 큰 문제는, 그 가면에 너무 익숙해져서 자신이 누구였는지조차 잊어버리는 데 있다.
나는 누구인가?
회의실에서 웃고 있을 때, 그 웃음은 내 웃음인가?
아이에게 단호한 표정을 지을 때, 그 표정은 어디에서 온 걸까?
철학자 칼 야스퍼스는 이렇게 말했다.
“진정한 자아는 위기에서 드러난다.”
우리는 벼랑 끝에서 가면이 벗겨질 때 비로소 자기 얼굴을 본다.
안타깝게도, 그 순간은 종종 너무 늦게 찾아온다.
그래서 중요한 건 가면 속에서 ‘나’를 놓치지 않는 일이다.
어색한 회의를 마치고 돌아오는 퇴근길, 버스 창가에 비친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순간.
가족과 다투고 난 밤, 문득 미안함이 올라오면 가만히 방문 앞에 서 보는 일.
가면을 쓰더라도, 그 안의 마음은 솔직할 수 있다.
가면을 쓰더라도, 그 안의 목소리는 진심일 수 있다.
하루가 끝나면 가볍게 자신에게 물어보자.
“오늘 나는 어떤 얼굴로 살았을까?”
“그 안에 나는 있었을까?”
“아니면, 오늘도 나 아닌 누군가로 하루를 보냈던 걸까?”
우리는 가면을 쓴 채로 살아간다.
그러나 그 안에서 나를 잃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이야말로, 우리를 조금씩 더 인간답게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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