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된 주관 vs 훈련되지 않은 의견
예전 골프 코스에서 남자 선배가 자기 골프 지식을 자랑해 여자 후배를 힘들게 한 사고가 있었다. 그는 18홀 내내 골프 지식-지식을 가장한 의견-을 뻐기듯 무려 5시간 동안이나 원하지도 않았는데 교습을 한 것이다. 골프 코스를 끝마치고 들어오는 그녀의 귀에서 피가 나고 표정은 그야말로 어둠침침하고 무서웠다. 중요한 점은 그 선배만 모를 뿐만 아니라 심지어 얼굴에는 지식을 전해줬다는 자부심이 가득한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이런 일들은 골프연습장에서도 비일비재하다.
훈련되지 않고 미천한 경험을 가진 사람이 무책임하게 의견을 남발하는 예는 골프에서 자주 목격된다. 골프 코스, 골프연습장에서 사람을 유심히 관찰해보면 프로 아닌 일반인이 교습하는 경우가 있다. 지인이거나 그날 처음 만난 사이 이거나. 이걸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 친화력은 최고인 듯하다. 하지만 이것을 친화력이라 표현하고 싶지 않다. 호의로, 배려로 오인해 잘못된 생각이라 하지 못하고 같은 행동을 되풀이한다.
골프 하수는 가르쳐 주고 싶어 안달 났고, 보기 골퍼(90대)는 먼저 와서 가르쳐주고, 싱글골퍼는 물어봐야 가르쳐준다. 그리고 프로골퍼는 돈을 받아야 가르쳐준다는 말이 있다. 골프 계층 구분이 우리 인생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얼마나 명확하게 알려준단 말인가. 왜 이렇게 인생에 하수가 많은지. 심리학자 크리스토퍼 차브리스와 대니얼 사이먼스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수준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는 생각을 ‘지식 착각’이라 말한다. 우리가 대상을 자주 접하거나 익숙해지면 그 대상을 아주 잘 안다고 착각한다.
이 부류의 사람은 골프 좀 친다는 즉 구력이 있거나 아니면 먼저 시작한 사람일 것이다. 골프계에서는 1분이라도 골프클럽을 먼저 잡으면 스승이라는 말이 있다. 또 자기 품은 엉성하고 잘하지 못해도 남을 가르치는 데는 팔을 걷어붙이는 사람들이 많다. 좋은 의도로 개인 의견을 마구마구 쏟아낸다. 좋은지, 아닌지는 상대를 살펴야 함은 물론이고, 말과 언어에 굉장한 실례된 행동이다. 하지만 이 사람들은 어떤 잘못을 하는지 어떤 무례를 범하는지 인지하지 못한다. 그저 자기 의견을 자랑하며 토해내기에 바쁘다.
우리는 상대에게 자기 생각, 즉 의견에 대해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 의견은 정확한 증거 없이 주관적인 관점에서 자기 생각의 정도-이렇게 생각한다-이다. 서울대학교 철학 사상연구소에서는 “의견은 지식 및 무지와 대비를 이루며 구분된다고 한다. 지식은 대상이 있고 무지는 대상이 있지 않은 것이라고 할 때, 의견의 대상은 있는 것도 있지 않은 것도 아니다. 따라서 의견은 무지도 지식도 아니라고 말한다.” 의견은 둘 사이에 중간이며 흐리터분함이 느껴지면 어떠한 책임도 느껴지지 않는다.
김주원 선생님은 공부하면 할수록 모르는 것이 더 많아지고, 말 수가 줄어들고 조심스럽다고 말한다. 왜? 공부하면 아는 게 많아지고 할 말도 더 많을 텐데. 처음에는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지금은 어렴풋이 알 수 있다. 언어와 글에 대한 무게를 알고 그것이 사람의 진가를 드러내게 만든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라는 평범하다 못해 진부한 진리를 무시하듯 가볍게 넘기지 말고 가슴 깊이 새겨야 한다. 평범함 속에 세상의 이치가 들어있다.
경험과 지식의 양이 찬 훈련된 사람은 함부로 의견을 개진하거나 지식을 자랑하지 않는다. 그만큼 가치를 알고 언어가 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받을지를 깊고 넓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사람의 스스로 훈련된 개인 주관은 믿고 따를 수 있다. 훈련된 사람은 풍부한 경험으로 의견도 조언, 충고, 견해, 담론으로 변화시킨다고 한다.
훈련되지 않은 사람의 의견은 조심해야 한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지식도 무지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로 자칫 생각을 고착시켜 지식이라고 착각하게 만든다. “의견이란 저주받은 것이다.” 의견은 지성과 증오와 오만과 함께하는 것이다. 그것은 특히 증오와 짝을 이룬다. 그리고 증오는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경우보다도 앎을 의하여 뒷받침될 때,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된다. 그의 말대로 “가장 나쁜 것은 지적인 증오이다(2014. 깊은 마음의 생태학, 김우창). 거짓 된 지식이 고착된 의견은 오만과 증오로 얽히고, 지식이 아닌 무지함의 의견은 들키면 책임을 회피하는 행동을 보인다.
지금 생각하니 예전에 내가 또한 그랬다. 나이 먹었다고, 책을 조금 읽었다고 알량한 경험과 지식으로 무식하고 용감하고 당당하게 내 의견을 서슴없이 날렸다. 그 선배처럼 똑같이 말이다. 딱 훈련되지 않은 사람, 그 자체였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창피해 소름 돋는다. 공부하면 할수록 말이 적어지는 의미를 알게 됐다.
무심코 던진 말이 상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르고 했던 행동이다. 골프에 대비해 생각해 보면 너무나도 선명한데 깨닫지 못했다. 진짜 지식을 많이 쌓아야 세상을 보는 눈을 가질 수 있고 자기 성찰도 가능하게 한다. 인생에서 태도와 기본, 왜 중요한지 새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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