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훈이 있나요?
어릴 때 집마다 가훈이 있고 학교 교실에는 급훈이 걸려있었다. 초등학교(예전 국 민학교)에서 가훈을 조사한 적이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가훈(조상, 어른이 자손에게 알려주는 가르침, 집안의 전통적 도덕관)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집에 가훈이 따로 있지 않았던 것 같다. 학교에서 가훈을 적어오라고 해서 급하게 만든 것으로 기억한다. 왜냐하면 옛날에는 가훈이라고 해서 액자에 걸어두고 대문 또는 현관에 가장 잘 보이는 장소에 놓아두어야 했는데 가훈은 없었다. 눈에 띄는 장소에 놓는다는 뜻은 머리와 가슴에 새기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 집에는 가훈 액자는 없었다.
아무튼 집 안에 가훈 액자가 걸려있든 걸려있지 않든 학교에 ‘성실(誠實)’을 적어서 제출했다. 학교에서 다른 아이들 가훈을 보니 왠지 더 좋아 보였고 우리 집 가훈은 볼품없다고 생각했다. 즉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는 모르겠고 다른 집 가훈은 멋있어 보이고 더 좋아 보였다. 그냥 그때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성(誠)자는 ‘정성’이나 ‘진실’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성(誠)자는 言(말씀 언) 자와 성(이룰 성)자가 결합해 ‘말을 갖춘다.’ 즉 말을 진실하게 하라는 뜻이다.
실(實) 자는 ‘열매’나 ‘재물’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부유하다’를 표현했으며 후에 ‘결과가 좋다.’라는 뜻으로 확대되면서 현재는 ‘열매’, ‘재물’, ‘내용’으로 쓰인다.
‘성실’의 사전 뜻은 정성스럽고 참되다는 뜻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뜻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성실한 사람은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 같고 모든 일에서 나태해 보이지 않는 대상을 가리켜 표현한다.
‘성실’은 인생에서 필요하다는 정도의 의미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모든 일에서 당연히 성실해야 한다고 배웠다. 게으름 피우지 않고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성실성 말이다. 중요하게 생각은 하지만 세상에 꼭 필요한 덕목으로 취급하지는 않았다. 있으면 좋고 없어도 사는 데 큰 어려움이 없는 그저 그런 항목이었다. 그래서인지 사회에서 성실을 깊게 생각 사람이 사라지고 있다. ‘경제적 부’를 추구해 돈을 벌기 위해서 ‘성실함’은 터부시한다. ‘일’하러 와서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고 판단되는 순간 1시간도 버티지 못하고 아무 말도 없이 가는 경우가 태반이다. 과연 이 태도에서 성실함을 엿볼 수 있을까? ‘부’의 축적이 이루어질까?
‘일’하는 데 있어서 돈을 많이 안 줘서 중간에 그만두는 핑계. 힘들다는 핑계, 더럽다는 핑계, 어렵다는 핑계. 모든 이유는 오만에서 나온다. 시작한 지 얼마나 했다고 핑계만 될 것인가. 잘하고 못하고보다 시작은 자신의 성실함이 없어서 생긴 결과다. 6개월, 1년, 3년 아니 5년은 해보았는가? 예전 유명 영어 강사 유수연 씨는 방송에서 언급한 말이 있는데, 정확한 시간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3년, 5년 인가 노력은 해봤니?”라는 말이 기억난다. 우리는 아니 나도 마찬가지다. 조금 해보고 어렵거나 이해되지 않아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중용에서 ‘성실’의 가치는 큰 울림을 주었다. 중용 23장에서 “성실함이 있으니, 성실하면 드러나고, 드러나면 뚜렷해지고, 뚜렷해지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움직이고, 움직이면, 변하고, 변하면 교화된다. 오직 천하의 지극한 성실함이라야 교화할 수 있다.”
성공한 사람의 특징과 같다. 지금은 유명한 회사대표 이야기인데 말단사원일 때 상사가 시키는 하찮은 일(복사, 커피 심부름)을 몇 년 동안 정성을 다했고 윗사람들에게 믿음을 얻었다고 한다. 성실성은 눈에 띄기 시작하고 드러나고 변화를 일으켜 성공했다고 한다. ‘성실’은 그럭저럭 덕목이 아니라 성공을 위한 필수적인 요소다. 작은 일도 무시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면 겉으로 드러나게 되며 밝아지고 지극히 정성을 다하면 변화가 일어난다.
그만큼 어떤 일이든 무슨 일이든 성실하게 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용과 지인의 이야기를 볼 때 과연 나는 성실하게 하고 있는지 질문해야 한다. 가훈이 성실이였다지만 잊고 살았을 뿐 아니라 그런 삶과는 멀게 살았다. 아! 그래, ‘적당히’가 나를 표현하는 단어가 될 것이다.
‘적당히’ 이 정도로
‘적당히’ 여기까지
‘적당히’ 괜찮겠지
‘적당히’ 죽지 않을 만큼
‘적당히’ 보이는 만큼
‘적당히’ 건성건성
‘적당히’ 대충대충
‘적당히’ 이만큼
어쩌면 적당하리만큼 더욱더 형편없이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적당히 괜찮고 적당히 잘 살아온 듯 삶의 결과가 지금이라도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고 영혼을 건들고 있는 듯 느껴진다.
적당한 이 삶의 결과는 지금 계산서를 받는데 다행히 나쁘지 않다. 너무 적당히 살아서인지 현재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해야 할 것도 많고, 알아야 할 것도 많고, 알고 있어야 할 것도 많고, 해야 했던 것은 너무 많은데 그 시간, 그 자리, 즉 현실의 자리에 발을 붙이지 않고 허공에 헛다리를 짚으면서 적당히 적당히 삶을 관망하듯 살았다.
중용을 보면 성실함은 절대 가볍지 않다. 타인에게 “야! 너 성실하게 좀 해! 성실하게 살아!”라는 말을 나와 남에게 함부로 ‘성실’을 이야기하지 못하겠다. 성실은 고통이 따르고 힘겨움이 동반된다. 그만큼 성실은 절대 가볍지 않고 무게는 무겁다. 성실함은 명철해지고 자신의 본성을 드러내야 밝아지고 변화가 일어나 교화된다. 성실에 대한 진가를 알게 되면 누구는 성실하게 되며 누구는 포기하게 된다. 성실의 열매는 쓰든 달든 그것은 자기에게 달려있다. 나부터 성실하게 살자! 어려운 길을 선택했지만, 영혼이 말한다. 네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지금 필요한 것은 성실. 구하면 열리고 얻게 될 것이다.
내 인생은 무지해서 용감했고 지식이 없어 비겁했다. 세상의 비겁함은 지식이 없어 깨닫지 못하고 무지하게 바라보았다. 그러니 무엇을 정확하게 판단하고 볼 수 있겠는가. 세상에 드러내기 위해서는 성실하게 임해야겠다. 유명세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내가 하고 싶은 것을-작은 일이라도-성실하게 밝게 드러내 변화하고 교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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