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의 여름밤> 윤단비 감독은 유년 시절 영화인으로의 꿈을 키우게 해 준 곳이 광주극장이라고 했다.
“그곳은 유일하게 내게 누구도 섣불리 참견하지 않았고, 외롭게 만들지도 않았으며, 미래가 막연하게 느껴지지도 않는 공간이었다.”(씨네21)
다른 곳도 아니고 아마 감독의 고향에 있는 그리고 광주극장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거라고, 나는 얼마 전 광주극장에 처음 가서 어렴풋하게 떠올려보게 되었다.
매혹적인 공간이 선사하는 낯선 경험, 거기서 발생하는 상상력과 에너지. 극장이라서 더 특별했을 공간. 그래서 그런지 <남매의 여름밤>에서 주인공들이 사는 2층 구옥도 매혹적이고 낯설며 정겹고 따뜻하다.
광주극장에 간 건 광주 고려인 마을에서 점심을 먹고 난 그날이었다. 버스와 지하철로 약 40분 정도 달리니 금남로4가역에 도착했다. 2번 출구로 올라와 좌측으로 한 번 돈 다음 우측으로 꺾어 3분 정도 걸으면 저 멀리 보였다. 광.주.극.장이라는 간판이.
도로를 한가운데 두고 양쪽에 식당, 상점이 쭉 늘어서 있는 평범한 거리 한 편에 광주극장이 우뚝 서 있다. 외관은 조금 낡았지만 그것보다 큰 규모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손 그림 영화 포스터와 그 아래 게시판에는 부착된 최신 영화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매표소는 입구에 있었다. 문을 열면 바로 매표소다. 매표소도 나이 들어 보였다.
전주에서의 체력 고갈로 영화는 도저히 볼 수 없었다. 직원 분에게 영화는 안 보고 구경만 해도 되냐고 물었다.. "2,3층에 전시도 되어 있으니 보고 천천히 보고 가세요." 아마 나처럼 구경만 하러 온 관객이 많이 거쳐 간 듯했다.
이 공간은 어떤 시간을 간직하고 있었다.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에 발을 올리고 위층을 보는 순간 ‘스윽’ 몇십 년 전의 공간으로 접속하는 것 같았다. 여기가 영화관이 맞을까. 웅장한 저택 같았다. 그곳에 옛 영화 포스터와 비디오, 수 십 년 동안 누군가 앉았을 낡은 소파, 열 개(!)가 넘는 상영관 출입구로 가득했다.
<해피투게더><파이란><와이키키 브라더스>의 포스터가 보였을 때 반가웠다. 오래전 개봉한 이 영화들은 지금도 사랑받는 영화들이다. 그렇다면 저기 걸려 있는 포스터는 개봉 당시 포스터일까. 그 오래전 느낌과 여운이 이 극장을 메우고 있었다. 영화관을 보러 온 건지, 역사박물관을 보러 온 건지. 사실 두 가지 모두였지만.
영화 상영 중이라 들어갈 수 없었다는 게 이날의 아쉬움이었다. 다음에 발길이 닿을 때 그때는 여기서 꼭 영화 한 편 보고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