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SU다떨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진수 May 05. 2022

내가 이방인이었다

전라도 광주 고려인 식당에 가다


전주에 간 김에 겸사겸사 광주에 하루 갔다. 광주극장을 보러 가고 싶기도 했지만 그 앞에 한 번 들러보고 싶은 곳이 있었기 때문이다. 광주에 고려인 마을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불과 한 달 전쯤이다. 한국에 사는 이주민을 다룬 예능프로그램 <조인 마이 테이블>을 통해서였다. 평택이나 안산은 알고 있었지만 '광주에도 저런 곳이 있었나' 할 정도로 생소했다.


광주송정역에서 진곡196번 버스를 타고 15분쯤 가면 월곡시장이 있다. 딱 골목길로 접어드는 순간 이질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한국어가 아닌 간판들이 눈에 띄기 때문이다.


방송에서 이금희 전 아나운서와 박상영 작가가 플로프(쇠고기, 야채 등이 들어간 볶음밥)를 먹었던 그 식당에 갔다. 빨간 간판에 적당한 크기의 식당이었다. 직원분이 한국어를 하나도 못하고 못 알아들어 살짝 당황했다. 하지만 '플로프'라고 말하자 바로 큰 소리로 주방에 주문을 넣었다. 그리고 샐러드 안 필요하냐, 빵은 안 먹냐며 메뉴판을 가리켰다. 흠. 당연히 이렇게 먹어야 하는 건가 싶어서 하나씩 시켰다. 메뉴가 식탁에 펼쳐졌을 때, 잘못 주문했다는 걸 알았다. 일단 플로프 양이 엄청 많았고 빵 크기는 더 어마어마했기 때문이다.


플로프는 건조한 맛이었다. 약간 소금을 뿌리거나 진한 소스가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대로 먹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김치가 없어서 샐러드에 나온 오이를 김치 대신해서 먹었다.



밥을 먹으면서 묘하게 긴장되었다. 그곳은 분명 한국이었지만 그 가게 안은 경계 너머였다. 직원과 손님 그리고 간판과 물 잔까지 비 한국적이었고 그곳에서 나는 이방인이었다. 해외에 나가 산다는 게 이런 기분일까 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동시에 이 (양이 많아) 손도 댈 수 없는 빵을 포장할 수 있을까 걱정이 들기도 했다. 다행히 남자 직원분이 한국어를 알아들으셨고 포장해주었다. 방송 보고 찾아왔다고 말하니 여기 말고 주변에도 여러 가게가 있다고 말해주셨는데 사실 거의 알아듣지 못하고. 하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근처 식료품점에 들러 훈제 소시지랑 빵처럼 보여서 물어보니 러시아 과자라고 해서 하나씩 샀다. 소시지는 구워서 먹으면 되는 거냐고 '프. 라. 이. 팬'이라고 여러 번 말했지만 언어의 장벽은 1cm보다 높았다. 그냥... 어떻게든 먹으면 되겠지.


매거진의 이전글 일기를 읽고 일기를 썼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