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내 생일에 있었던 일이다. 그날은 1년 중 유일한 하루라 (어쩔 수 없이) 생일 축하 메시지를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9일 0시가 되자마자 첫 번째 축하 메시지가 도착해 기분 좋게 잠들 수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서도 축하는 이어졌다. 오전 9시 26분과 39분에도 카톡이 울렸다. 대면한 지 꽤 오래된 선배에게 메시지가 왔고 13분 뒤 아는 피디에게서 축하 메시지가 왔다. 이때 나는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 우승자가 운영하는 부산의 한 카페에서 모닝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잘 꾸며진 카페에서, 비록 멜론 맛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잘 익은 멜론이 떠오르며 설탕 시럽 같은 단맛 그리고 마실수록 은은한 레몬티’라고 설명된 오늘의 커피를 마시고 있었으므로 참 좋은 생일 아침이구나, 들떠 있었다.
그렇게 1시간쯤 지난 10시 42분이었다. 스마트폰이 떨며 검은색 액정 위로 카톡 메시지가 하나 떴다. “진수야 정말 올만이다 ㅋㅋㅋ” 내 두 눈은 순간적으로 커졌다. “기억해?? 나?ㅋㅋㅋ” “생일 축하하고 ㅋㅋㅋ 추석 잘 보내 임마.” 카톡 창을 열지 않은 채 액정에 뜬 메시지를 봤다. 보낸 사람은 기자 시절 알던 타 매체 선배였다. 그럼에도 이상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는데, 그 이유는 그 선배와는 현장에서 대화를 나눈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열 마디는 됐을까. 무슨 좋은 일이라도 생기셨나. 왜 갑자기 축하 메시지를 보낸 거지…머릿속이 복잡하고 빠르게 돌아갔다.
그 의문은 곧 풀렸다. “안 본 지 10년 넘은 거 같은데” “○○는 보니??” 라고 메시지가 이어 왔기 때문이었다. 손가락으로 세보니 난 그 선배를 안지 아직 10년이 채 되지 않았으며 ○○는 내가 모르는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으로 착각했구나. 그래서 나는 카톡을 확인하지 않은 채 가만히 있었다. 카톡이 차단된 것처럼 위장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확인하지 않은, 붉은 번호가 남은 카톡 창은 그 상태로 남은 채 새 카톡 창에 깔려 점점 아래로 내려갔다.
오후에는 문보영 작가의 <일기시대>를 읽었다. 문 작가가 등단 당선 전화를 받고 자기한테 꼬치꼬치 캐묻는 기자한테 거짓말을 했다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이상하게 난 여기를 읽고 아까 그 선배가 떠올랐다. 문보영도 거짓말을 하는데 내가 이 메시지에 답장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이 둘은 무슨 연관성이 있을까) 가만히 있는 것이 답일까. 아마 답장이 없다면 그 선배 나름대로 걱정할 것 같았다.
그래서 제대로 격식을 차려 답장을 썼다. "000선배님 안녕하세요. 저는 00와00에서 기자를 했던 김진수라고 합니다. 제가 선배님을 처음 뵌 게 2014~15년쯤이었으니까 아마 동명이인의 다른 분과 헷갈리신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오늘이 생일이고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중략) 답장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는데요. 그래도 답장을 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이제 스포츠 기자를 하지 않지만 기사는 열심히 읽는 편이라 선배님 기사도 종종 보고 있습니다."
그 선배는 미안하다고 연거푸 사과했다. 그러면서 동명이인 중에 아는 축구 기자가 있다고 했다. 나는 그건 정말 몰랐고 괜찮다고 했다. 그리고 이렇게 오랜만에 연락이 되어서 반갑다고. 그 선배는 무안한 지 연신 “아 ㅎㅎ”이라고 했지만 사실 나는 마음이 편했다.
착각해서 카톡이 보내는 건 유별난 사건은 아니다. 착각할 수 있다. 다만 예전 같았으면 나는 이런 상황이 이상하고 부끄러워 그저 피해야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는 이번엔 답장했고 안부와 내 생각을 똑바로 전했다. 그러니까 이젠 또 이런 상황에 놓인다면 더 능숙해질 것이다. 잘못 도착한 축하 메시지 덕분에 나는 좀 더 능숙한 사람이 될 수 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