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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수 Mar 20. 2021

가슴을 적시는 70년 전 가족이야기

[영화 리뷰] 오즈 야스지로 <동경 이야기>


“뭐가 아무 일도 안 일어나요. 엄마가 돌아가셨는데…아들도 전쟁에서 죽었고, 그게 뭐가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 거예요.”      

“그런 이야기를 좀 심심하게 그리신…”      

“심심한 게 어때서요? 본래 별게 아닌 게 제일 소중한 거예요. 오즈 야스지로 감독님이 그런 걸 영화에 다 담으셨잖아요. 그런 보석 같은 게 그 분 영화에 다 나오잖아요.” 



 

<찬실이는 복도 많지>(2020)에서 찬실은 김영과 영화 <동경 이야기>(1953)를 언급하며 멋있는 말 한마디를 날린다. “본래 별게 아닌 게 제일 소중한 거예요.” <동경 이야기>는 정말 별게 아닌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충분히 우리의 가슴을 적신다. 왜냐면 가족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동경에 살고 있는 자식을 만나러 오는 노부부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영화. 부모의 방문은 좋기도 하지만 어찌 된지 지금으로부터 약 70년 전인 1953년에도 자식들은 바빴다. 같이 있을 수 있는 시간은 없다. 오히려 며느리인 노리코가 노부부에게 동경 구경을 시켜준다.



영화를 보는 내내 노리코의 따뜻함이 스크린 너머로 전해져 좋았다. 며느리와 시부모라는 관계이긴 하지만 노리코라는 사람 자체에서 분명 선함이 느껴졌다.

  

노부부의 관대함과 넓은 이해심도 좋았다. 좀 슬프기도 했다. 기대만큼은 아니지만 자식들이 잘 컸다는 둥, 다 뜻대로 원래 안 된다는 등의 이야기를 들으니 왜 이렇게 마음 한구석이 짠해지는지. 아내가 죽고 나서 자식들이 모두 오자 할아버지는 “바쁜데 와줘서 고맙다”고 말한다. 부모와 자식은 가족이지만 결국은 각자의 선이 생긴다. 늙어가는 부모는 자식의 눈치를 보게 된다. 자식은 효도를 하려고 하지만 바쁘다. ‘더 잘해드려야지’라고 마음먹다가도 각자 일을 우선시한다.



<동경 이야기>는 <찬실이는~>에서 김영이 말한 것처럼 심심한 영화가 아니다. 한 가족사의 희로애락을 잘 압축해서 보여준 따뜻하면서도 아련한 홈드라마다. 대부분의 장면에서는 카메라는 멈춰있고 등장인물이 빠졌다가 등장하는 장면이 많아 연극처럼 보이기도 해 흥미로웠다. 러닝타임이 136분이지만 훌륭한 네러티브에 빠져 시간은 금세 흘렀다.


이 영화는 긴 러닝타임에 흑백영화라 부담스러운 사람도 있을거다. 2014년 개봉한 야마다 요지 감독의 <동경가족>(2014)을 먼저 보면 좋다. <동경 이야기>의 리메이크작인데 일단 웃겨서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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