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뽀얀 바탕화면. 남녀 주인공은 하나같이 만화책을 찢고 나온 것처럼 화사한 얼굴이다. 여기까지 보면 일본의 여느 청춘 로맨스물과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여기에 약간 오글거리는 대사만 추가되면 완벽한데...'또 뻔한 10대 사랑 이야기인가?'라고 생각할 때쯤. 영화는 조금씩 방향을 바꾸기 시작한다.
최근 개봉한 일본영화 <사랑하고 사랑받고, 차고 차이고>(감독 미키 타카히로)는 10대 네 남녀 주인공의 내면 성장을 담았다. 고등학생인 네 명의 주인공들에게 무수한 또래들처럼 사랑을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공통분모를 통해 이들은 달라진다. 단순히 연애가 목적이 아니다. 낯선 세상을 향해 한 걸음 내딛기 시작한다. 불안과 고통을 마주하고 겪어내며 단단해진다. 사랑만큼 충실해야 하는 인내, 관계, 치유를 배우기 시작한다. 이렇게 로맨스의 외피를 두른 이 영화는 주인공들의 변화와 성장에 꽤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상형인 리오(키타무라 타쿠미)를 알게 됐지만 차일 걸 예상하고 머뭇거리는 유나(후쿠모토 리코), 부모의 재혼으로 남매가 된 아카리(하마베 미나미)를 좋아하는 리오, 유나의 소꿉친구 카즈(아카소 에이지)를 좋아하는 아카리. 영화는 네 명의 관계를 부드럽게 밀당하며 관객의 마음을 124분 동안 요동치게 한다.
이들 넷은 영화 제목처럼 상대방에게 고백하다 차이기도 하고 섣불리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려다가 주변으로부터 만류당하기도 한다. 때로는 눈앞의 사랑보다 가족을 먼저 우선해야 한다. 그럴 땐 마음을 잠시 접어야 한다. 이렇게 삶의 방법을 하나씩 발견한다. 거절당해도 단단해지는 방법, 가족을 지키는 방법, 나와 마주하는 방법 등등. 넷은 심리적으로 당당해지고 서로에 대해 이해심도 넓어진다.
이 영화에서 또 주목해야 하는 점은 어른들의 도움이 없다는 사실이다. 영화 속 어른들은 주인공들을 사랑과 안정감을 이끄는 존재들이 아니다. 오히려 주인공들을 불안으로 이끄는 존재들이다. 불안을 겪어낼수록 더 강해진다. 어른들에게 끌려가지 않고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표현하는 주인공들이 영화 속 진짜 어른이다.
어른이 된다는 건 어떤 것일까. 역시 내가 선택한 것에 책임질 줄 알며 불안과 고통을 마주해도 멋있게 겪어내는 것. <사랑하고 사랑받고, 차고 차이고> 주인공들을 보며 나를 돌아본다. 여전히 불안과 불투명한 현실에서 헤매고 있는 게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