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2021)
모든 게 비슷했다. 아니 거의 같았다. 내가 읽은 책을 저 사람도 읽었다고 했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의 이름을 대면 대는 만큼 저 사람은 “좋죠”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들고 다니는 이어폰이 항상 꼬이는 것도, 영화 티켓을 책갈피로 쓰는 것도 같았다. 심지어 깜빡하고 가지 못한 같은 콘서트 티켓도 서로의 지갑 속에 있었다. 스물한 살 무기(스다 마사키)와 키누(아리무라 카스미)의 우연한 만남은 예정된 운명 같았다. “(콘서트를) 보러 갔으면 만났을 수도 있었겠네요.” “그런데 콘서트에 갔더라면 오늘 못 만났을 수도 있어요.” “이건 오늘 이렇게 만나기 위한 티켓이었네요.”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감독 도이 노부히로)는 풋풋한 연애와 싱그러운 사랑을 경쾌하면서도 천천히 포착해낸다. 물감을 듬뿍 바른 붓으로 그린 수채화 같은 두 주인공이 건조하지도 습하지도 않은 적당한 온도로 내디딘다. 뽀얀 화면이 내내 나오고 마치 젊은 사랑은 학교에서만 이뤄지는 것 마냥 이야기하는 여느 일본 영화와는 다르다. 일본 로맨스 영화의 화려한 귀환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막차를 놓쳐 만나게 된 무기와 키누는 어느 새 막차가 떠나기 직전까지 함께 웃고 떠드는 사이가 되었다. 그 사이를 틈타 서로에 대한 마음도 깊어졌다. 깊어진 마음을 입 밖으로 마침내 꺼냈을 때 둘은 하나가 되었다. 그 뒤로는 뭘 해도 웃음이 났다. 시간은 쉴새없이 흘렀다. 어디에 있던 서로를 향해 달려갔다. 뭘 해도 소중하고 즐거웠다. 같이 있는 순간이 전부였다.
영화는 예쁜 연애만 담지 않는다. 지극히 현실적이다. 무기는 안정적인 삶을 위해 꿈을 잠시 접고 취직을 선택한다. 안타깝게도 사회는 풋풋한 연애를 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무기가 바빠지면서 둘은 소원해지고 점점 멀어진다. 함께 하려고 더 열심히 일할수록 관계는 조금씩 흐려진다. 쏜살같던 둘만의 시간은 서서히 속도를 늦춘다. 한 번 벌어진 마음의 틈은 어떻게 해도 쉽사리 복구가 안 된다. 둘에게 역에서 집까지 걷는 30분의 시간이 처음에는 소중했지만 점점 같이 걷는 일이 없어졌다.
사랑에는 정말 유통기한이 있는 걸까. 왜 마냥 예쁠 수는 없을까. 사랑의 끝에는 이별이라는 하나의 종착점밖에 없어서 그런 것일지 모르겠다. 또 한 가지. 그 시절의 연애란, 사랑이란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 빛나니까. 그만큼 그 강렬함을 유지하기 어려운 게 아닐까. 답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다. 그때 그 시절, 한 번씩 거쳐 갈 수밖에 없는 ‘슬픈 관문’일지도.
관객이 반드시 어떤 한 명을 떠올리게 될 영화. 너무 예뻐서 슬프고, 너무 슬퍼서 예쁜 123분. 그래서 깊은 여운이 남는 영화.
키누는 무기를 처음 만나고 난 후 집으로 돌아와 아무와도 말하지 않고 곧장 자기 방으로 향한다. 침대에 누워 마음으로 외친다. '아무 말도 하지 마. 내 감정을 덮지 마. 아직 어젯밤의 여운 속에 있고 싶단 말야.'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를 보고 난 뒤의 감정이 키누와 비슷했다. 주인공들의, 영화의 감정에 푹 빠져 헤어 나오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뿜어져 나왔다. 그 여운 속에 오래오래 머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감독만큼 어떤 각본가가 작품을 참여하는지가 중요한지 보여주는 영화다. '포인트 카드로 친다면 (마음이) 이미 꽉 찼는데 다음번엔 꼭 고백해야지' 같은 소소하지만 표현력이 뛰어난 대사들이 눈길이 간다. 드라마 <최고의 이혼>(2013), <언젠가 이 사랑을 떠올리면 분명 울어버릴 것 같아>(2016) 등에서 명대사를 쓴 사카모토 유지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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