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매체에서 기자로 일한 적이 있다. 유명 스포츠 선수나 영화배우나 감독을 만나는 일도 좋았지만 내 이름 석 자가 기사 하단에 함께 나간다는 사실은 설렘이었다. 내가 쓴 결과물이 온라인에 공개된다는 건 나를 증명하는 일이었다.(동시에 책임감이기도 했지만) 모든 기사를 잘 쓰기는 어려웠지만 내가 잘 취재하고 상대적으로 더 공들인 기사가 내 이름과 나갈 때, 그 쾌감이란! 해본 사람만 느낄 수 있는 짜릿함이다.
기자 시절이 생각난 이유는 최근 <마이 뉴욕 다이어리>(감독 필리프 파라도)를 보면서다. 작가를 꿈꾸는 조안나(마가렛 퀄리)는 뉴욕에 머물기로 결정한다. 먹고는 살아야 하니 취직자리를 찾았다. 결국 에이전시에 입사한다. 작가들이 원고를 쓰면 출판사를 연결해 주고 작가의 매니저를 하는 일. 오자마자 거물을 담당하게 된다. 『호밀밭의 파수꾼』의 작가 J.D 샐린저를 맡게 된다.
샐린저는 에이전시의 대형 고객이다. 사장 마가렛(시고니 위버)은 샐린저에게 전화가 오면 조심해서 받으라고 말한다. 쓸데없는 말은 절대 하지말라고 한다. 조금이라도 심기를 건드리면 안 된다는 의미. 유명한 작가들은 역시 어디 한구석이 깐깐하구먼!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스쳤다.
아니었다. 조안나가 우연히 샐린저의 전화를 받는 장면을 보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세상 따듯한 목소리로 자기 용건을 말하는 샐린저 씨, 아니 작가님… 뿐만 아니라 그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조안나를 응원한다. 물론 자기가 제일 잘하는 글쓰기로.
아침에 15분씩이라도 좋아요
조안나 씨는 작가지요? 그럼 쓰세요!
매일 글을 써야 돼요.
<마이 뉴욕 다이어리>의 한 장면. ⓒ영화사 진진
뼈를 때리는 말이었다. 조안나가 아니라 나에게 하는 말 같았다. 왜냐면 최근에 글을 쓰고 있지 않았으니까. 글쓰기를 직업으로 삼고 있을 때는 불안한 미래도 꽤 해소됐다. 생각하고 쓰고 수정하고 다시 써서 완성하는 이 행위가 좋았다. 물론 좋은 글을 쓰기 위해 노력했고 내 글에 공감하는 이가 많을수록 마음에 안식이 되었다.
글쓰는 직업에서 벗어나자 자연스럽게 삶의 활력들이 떨어지는 시간이 있었다. 꽤 길었다. 원인을 찾았다. 그중 하나는 글을 정기적으로 쓰지 않았다는 거다. 올해 중반 일주일에 두 편이라도 쓰자고 마음먹었는데 퇴근하고 쓴다는 게 좀처럼 쉽지 않았다.
하지만 샐린저의 저 말 몇 마디를 듣고 난 속으로 '유레카'를 외쳤다. 왜 하루에 15분을 쓸 생각을 못 했을까. 하루에 완성해야 되는 분량이 정해진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래서 다시 쓰기로 했다. 너무 부담 없이 다시 글 근육을 키우자!
<마이 뉴욕 다이어리>에서 조안나는 다양한 삶의 경험을 겪으며 마침내 본인의 길을 걷기로 결정한다. 꿈이었던 작가의 길을 다시 걷기로. “평범한 게 싫었어요. 특별해지고 싶었죠.”라는 자기의 염원처럼.
나는 특별해지고 싶은 마음은 없다. 글쓰기가 거창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하루에 15분이라도 글을 쓰고 싶다. 쓰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