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마지막 글]
반송장처럼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있고 싶었다. 10월이 끝나갈 때쯤이었다. 아픈 일이 겹겹이 쌓여 풍선처럼 퍽하고 터졌다. 그 과정까지 오기까지 불안의 줄다리기를 탔던 나는 모든 감정을 토해내야 했다. 모든 일은 나를 블랙홀처럼 나를 빨아들였다. 많은 것들이 부서졌고 폐허가 됐다. 왼쪽 눈이 몇 주 동안 떨렸다.
갑자기 농구가 보고 싶어 강원도 원주에 갔다. 코로나 때문에 300여 명만 입장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찐’ 팬들만 있었다. 10살 정도로 돼 보이는 아이가 열렬히 응원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도 저렇게 열렬하게 스포츠를 보던 시절이 있었는데 말이야.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내가 많은 것들과 멀어져 있었다는 생각이 스쳤다.
“밖으로 나가자” “사람을 만나자” “아님 뭐라도 하자”고 생각했다. 밖으로 나가고 사람을 만나고 아님 뭐라도 하려면 에너지가 필요하다. 고갈된 상태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노력’이 필요했다. 농구장에 또 가고 영화제에 가고 쉬는 날 하루는 꼭 친구를 만나려고 했다. 하고 싶지 않은 건 하지 않았다. 보고 싶지 않은 영화를 억지로 보지 않았다. 사고 싶은걸 사고, 보고 싶은 걸 봤다. (뮤지컬 <작은 아씨들>을 보고 얼마나 벅차 올랐는지 책을 사고 영화를 한 번 더 보았다! 향조 보고 있나?!)
그렇게 두 달이 지나 이제 12월의 끝에 있다. 11월 말부터 오늘까지 돌아보면 벅참과 감격의 연속이었다.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우연한 만남이 정말 많았는데 그들은 나를 위로하려는 의도가 분명 없었을 거다. 그런데 한결 같이 좋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힘을 주었다. 사람을 만나는 게 이토록 즐겁다는 걸, 친구를 만나는 게 이렇게 안정적이라는 걸 새삼 느낀 연말이었다. 모든 게 소중했다.
새해라고 늘 그렇듯 크게 달라지는 건 없을 거다. 하지만 내가 받은 에너지와 즐거움을 또 다른 이에게 건네는 것. 이것만큼은 잊지 않고 꼭 해야겠다. 이런 이야기는 딱 오늘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