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영화제에 갔다. 작년에 이 영화제에서 내가 자원 활동을 했던 인연 있는 영화제다. 약 1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 그 당시는 되돌아가고 싶을 정도로 그리울 때가 있다. 영화를 애정 하는 사람들이 모여, 영화제에 힘을 얹는다는 건 안락했다. 영화에 대한 애정만큼은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었으니까. 9일이라는 시간 동안 웃으면서 서로를 응원하고 지지했다. 우리는 영화라는, 영화제라는 세계에 있었다. 나는 얼마나 좋았냐면 함께 자활했던 우리 팀원들에게 영화 티켓과 영화 책을 선물했다.
이 영화제는 애프터서비스가 매우 좋다.(정말 처음엔 몰랐다.) 작년 자활들에게는 이번 영화제에서 하루에 몇 장씩 초대권을 준다고 했다. 그런 내용의 메일이 도착했고 영화제가 열리기 전부터 서로의 인스타그램에는 영화제에 대한 기대와 흥분이 조금씩 넘쳐났다. 나 역시 이번 영화제에서는 단편영화를 많이 보겠다는 의지와 계획을 세우고 영화제가 열리는 압구정으로 향했다.
초대권을 나눠주는 곳에 줄을 섰다. 작년에 만났던 영화제 스태프(매니저)가 초대권을 나눠주고 있었다. 작년에 나랑 같은 팀은 아니었고 종종 오가다 본 사이였다.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대화는 거의 안 해본 사이. 1년 만에 만나는 거라 설마 나를 기억할까 싶었다. 못 알아볼 것 같아서 조용히 초대권을 얻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딱 눈빛이 마주치자 그가 나한테 말을 걸었다. “혹시 작년 자활했던 분 아니세요?” 나는 순간 놀래서 기어가는 목소리로 “아 네 맞아요”라고 하고 초대권을 받고 그 자리를 떴다. 생각해보니 나는 이 사람을 기억하는데 왜 나는 이 사람이 나를 기억 못 한다고 했던 걸까.
누군가 나를 기억해준다는 건 참 좋은 일이다. 오랜만에 누군가를 만나서 안부를 묻는 것만큼 살짝 두근거리며 즐거운 일도 없다. 오랫동안 만나지 않았어도 마주쳤을 때 알아보고 인사를 하고 말을 건네는 건 고마운 일이기도 하다. 나는 영화제가 열리는 멀티플렉스 1층 카페에서 이런 경험을 여러 번 했다. 영화제 매니저 몇 분과 자연스럽게 마주쳤고 “어떻게 지내냐” “영화제 와줘서 고맙다”는 등의 이야기를 했다. 그 시간은 사실 5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놀랄 만큼 따뜻했다. 겨울이라는 계절과 어울리는 장면이었다. 이번 영화제 상영작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 프로듀서분이 나를 초대해줘서 1년여 만에 만났는데 그분은 내가 셀 수 없을 만큼 고맙다는 말을 했다. 오히려 내가 감동받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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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는 일면식이 없는 사람이 갑자기 저 멀리서 나에게 손을 흔들어 당황하기도 했다. 올해 자활분이었는데 나를 본 적이 있다는 거다. 알고 보니 영화제 SNS에 올라간 자활 홍보 이미지에 있는 나를 기억한 거였다. 그 사진만 보고 실제 나를 어떻게 알아본 건지도 신기하지만 일상에 훅 들어온 우연적 사건에 마음이 즐거웠던 사실이다.
사실 올해 가을께부터 힘든 일이 여러 겹치면서 매우 심신이 지친 상태였다. 인생에 있어 큰 상처를 겪었고 마음이 깊게 파여 중환자실에 있는 환자처럼 힘들었다. 결국 사람과의 마찰과 불화로 발생한 일이었고 쉽게 회복하지 못했다. 약간의 번아웃과 우울함이 겹쳤고 정말 아.무.생.각.도. 안 하고 싶었다. 그냥 누워 있고 싶다는 생각을 19만 8430번 정도는 했으니까.
이때 이 영화제를 만난 건 정말 행운이었다. 뜻밖의 좋은 만남이 이어지면서 신기하게도 마음의 상처가 조금은 아물었다. 사람에게 받았던 상처들을 다시 사람을 극복해가는 길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마음이 진심으로 즐거웠다. 영화제에서 예상치 못한 위로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