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SU다떨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진수 Feb 15. 2022

10문장 안에 펼쳐지는 각자의 세계


한 동안 글쓰기를 멈추다가 다시 하기 위해서는 글근육을 키워야 했다. 우연히 알게 된 "매일 10문장 글쓰기"라는 문구가 보였다. 문구가 반짝거리고 있었다. ⓒPixabay


매일 24시간의 '마감 시간'이 주어졌다.


새해의 1월, 어느 독립책방이 주최한 '매일 10문장 글쓰기' 온라인 모임에 참가했을 때의 일이다. '꾸준히 쓰는 데 동력이 필요하신 분'이라는 참가 대상 문구에 눈보다 마음이 먼저 반응했다. 작년에 지독할 만큼 글을 쓰지 않았고 직장을 다니며 틈틈이 글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똑똑히 체감한 상태였다. 역시 글쓰기란 '마감'이라는 반강제성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인가. 이 같은 고찰을 하던 중 만난 '매일 10문장 글쓰기'라는 문구는 반짝이고 있었다.


인터넷 카페에 가입하고 등업 신청 게시물을 올렸다. 나와 같은 게시물을 올린 사람이 13명 더 있었다. 이렇게 모인 14명이 이 글쓰기 모임의 29기였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고 이름도 제대로 모르는 (카페에서는 각자 별명을 사용했다.) 우리가 모여 한 달간 글쓰기라는 커다란 배의 키를 잡고 항해에 나서게 된 것이다.


사실 나는 그때부터 좀 들떠버렸다. 오랜만에 덜컥 '기수'라는 동기가 생기기도 했고 그 단어에서 '함께'라는 따뜻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 따뜻함이 글쓰기라는 세계에 나를 초대한 것 같았다. 그래서 한 명의 낙오 없이 전원이 미션을 잘 수행해 이 글쓰기 모임의 마지막인 줌(ZOOM) '글쓰기 상담소'에서 모두 만나기를 시작 전부터 응원했다.


그렇게 시작한 하루 10문장 쓰기는 생각보다 즐겁고 까다롭기도 했다. 산문가이자 29기 담당인 김이슬 작가가 매일 밤 자정에 주제를 올려주었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문장이나 대화', '발견과 깨달음', '인물과 사물' 등의 주제로 우리 '29기 동기'들은 당일 밤 11시 59분까지 10문장을 카페에 올렸다.


밤에 주제를 확인하고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직장에서 일하며 뭘 쓸지 생각하다가 해가 질 때쯤 스마트폰을 엄지로 두드려 10문장을 완성하는 게 생활 패턴이 됐다. 처음에는 말 그대로 '10문장'일 뿐이라 부담이 없었는데 쓰다 보니 부담이 생겼다. 잘 써야겠다는 생각보다 10문장 안에서 글이 완성되어야 한다는 압박 때문이었다. 마치 신문사에서 정해진 지면에 몇 매의 원고지 분량의 기사를 넣기 위해 줄이는 일처럼.


하지만 오랜만에 글쓰기에 집중하는 시간이 생겼다. 아니 만들어졌다. 온종일 틈틈이 어떻게 쓸지 생각하고 있다가 회사 일에 쫓겨 퇴근길에 스마트폰 메모장을 열고 허겁지겁 쓴 적도 있었고 그러다가 간신히 마감 시각에 딱 맞춰서 올린 적도 있긴 했지만. 그렇게 글쓰기 습관은 자라고 있었다.


10문장의 초미니 에세이에는 29기 동기들의 열네 갈래 세계가 열려 있었다. 기억에 남는 인물이나 사물을 쓰라는 주제가 나왔을 때 나는 누군가에게 선물 받았던 기억을 꺼냈고 누군가는 독립해 살게 된 이야기를 말했고 누군가는 가난을 언급했다.


내가 일본어를 잘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냈을 때 누군가는 자신만의 책방을 열어 멋진 할머니로 살고 싶다고 했고 또 다른 이는 바다를 보러 가고 싶다고 했다. 주제는 같았는데 각자의 글은 여러 모양을 하고 있었다. 내용도 형식도 모두 달랐다.


글을 잘 쓰고 못쓰고는 애초 존재하지 않았다. 자신을 억지로 꾸며내려고 하지도 않았다. 이곳에서 글쓰기는 온전하게 나를 바라보는 일이었다. 각자 깊은 내면을 파고들어 가 끄집어내는 진짜 나의 이야기.


다시 말하자면, 얼굴 한 번 본 적 없고 서로 이름도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이 모인 이곳에서 우리는 서로의 솔직함을 확인하고 이해와 공감으로 각자 자신의 영역을 확장해 나갔다. 모두가 열려있는 이곳의 세계관 덕분에 하루하루 들려올 이야기가 참을 수 없을 만큼 궁금했다.


그렇게 매일 쓰기를 거듭할수록 알게 된 사실이 있다. 글쓰기에서 정말 중요한 건 솔직함과 이해, 공감 같은 것들이었다. 차분하면서도 적극적인 관심이라고 할 수 있을까. 쓰는 사람은 자신이 정말 쓰고 싶은 이야기를 최대한 솔직하게 써 내려가고, 읽는 사람은 쓴 이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하는 것. 양쪽의 노력이 꾸준히 쓸 수 있는 동력으로 이어진다.


이걸 알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다. 주중에 썼던 글을 한 곳에 모아 올리면 주말에 댓글로 동기들끼리 피드백을 해주는 시간이 있었다. 내 글을 읽고 자신의 비슷한 옛 시절을 떠올렸다거나 내 글을 읽고 큰 용기를 받았다는 등의 댓글 하나하나를 읽을 때마다 더 잘 써야겠다는 욕구가 저절로 샘솟았다. 이게 같이 쓰는 힘인가 싶었다.


김이슬 작가는 좀 더 구체적인 피드백을 주기도 했다. 1주 차를 마치고 "철저하게 필요한 문장만을, 사실에 기반해 쓰는 것 같다가도 마지막 문장에서는 짙은 여운이 남기도 했다"라고 했다. 마음을 들킨 기분과 부족하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어 2주 차부터는 달라지려고 머리를 좀 굴렸다. 3주 차에는 A4가 살짝 넘는 분량의 글을 쓰면서 마침내 긴 글까지 완성할 수 있었다.


그렇게 모임의 마지막 날 마침내 동기들과 김이슬 작가를 줌으로 만났다. 아쉽게 모든 동기들이 다 함께하진 못했지만, 또 글로 마주하다 직접 얼굴을 봐서 긴장을 해버렸지만, 여러 얼굴이 모니터에 떴을 때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우리가 이렇게 3주 동안 글을 썼구나.


다들 글 근육이 얼마나 붙었을까. 근육을 어디선가 또 키우며 글쓰기로 자신의 세계를 확장하고 있을 사람들. 그리고 이 근육을 잃지 않으려고 나도 쓴다. 지난달도 썼고 이번 달도 이렇게 썼다. 자, 오늘도 무사히 마감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