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의 기도
그 시절 젊었던 엄마는 알았을까?
유튜브에서 흘러나오는 “소녀의 기도” 연주곡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맺혔다.
아름다운 명곡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렇다고
눈물이 터져 나올 정도로
내가 감수성이 풍부했었나 의심이 들었다.
가만히 눈을 감아본다.
선명히 보이기 시작한다.
어린 시절의 젊은 엄마와 나.
그리고 방앗간
붉은 장미와 2층 양옥집도 보인다.
마구 요동치는 가슴이 지금과 똑같아 당황스럽다.
30년 전 기억이 아름다운 피아노 소리처럼 흘러나왔다.
아! 그랬었지.
어린 시절 방앗간 맞은편 2층 양옥집에서
처음 만났던 피아노가 생각났다.
그때 들었던 피아노 연주곡이
“소녀의 기도”
였구나.
그런데 왜 난 눈물이 맺혔을까?
가만히 눈을 감아 그 시절로 들어가 본다.
엄마를 따라 방앗간에 갔던 날은
유난히 햇빛이 고소했던 날이었다.
방앗간 댓 마루에 앉아 발을 촐랑이던 소녀의 귀로
맞은편 2층 양옥집에서 흘러나오던
소리가 소녀의 가슴을 두드렸다.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줄도 모르고,
새카만 얼굴이 더욱 까매지는 줄도 모르고
소녀는 그대로 얼어버렸다.
순식간에 빠져든 그 마음을 알지도 못한 채
방앗간 처마 밑에 앉아 두 손 모아
귀를 기울이던 소녀.
깃털 같기도 별빛 같기도 했던
한 없이 몽글몽글한 멜로디가
소녀를 한 없이 두둥실 두둥실 어지럽게 만들었다.
활짝 열린 2층 창문 틈새로 흘러나오던
소녀를 간질이던 선율이
참기름 익어가는 냄새 따라
골목길 구석구석에 퍼져 나간다.
작은 눈 흔들림 없이, 삐죽이 입을 내민
소녀의 얼굴에
마침내
수줍은 미소가 피어오른다.
미소 끝에 시작된 가슴앓이.
미지의 세계를 향한 소녀의 애달픔이,
닿을 수 없어 삼킨 서글픔이
소녀의 눈 안에 가득 차오른다.
엄마도 모르게 아무도 모르게
소녀는
반지르르한 소매로 눈가를 문질러댄다.
엄마 손 잡고 멀어지는 소녀의 뒤로
붉은 장미꽃 활짝 열린 2층 양옥집
창문 틈새로
흘러나온 짝사랑이
두 손 가지런히 모은 소녀를
자꾸만 자꾸만 따라온다.
멀리서 따라오다 멈춘 꿈을 잡아보려
뒤돌아선 소녀의 애틋한 미소를
그 시절 젊었던 엄마는 알고 있을까?
내가 소녀였던 그때는 모두가 어려운 시절이었다.
산골마을은 더더욱 그러했다.
9살의 어린 나이였지만
이상하게도 엄마의 주머니 사정을
기가 막히게 알고 있었다.
그 시절엔 가질 수 있는 것보다 가질 수 없는 것이 더 많았는데,
물건이 그러했고 경험이 그러했다.
무방비 상태에 소녀를 찾아든 피아노가 그러했다.
첫눈에 아니 첫 귀에 반한 피아노였지만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거라는
소녀의 때 이른 체념.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알아차려버린
그 시절의 소녀가 너무나도 안쓰러워
괜스레 어깨를 감싸 안아보다가 소용이 없어
이제 9살이 된 막내딸에게 안아달라고
투정을 부려본다.
토닥토닥.
작은 손이 나를 두드린다.
더 이상 속상하지 말라고
나를 두드린다.
엄마 마음을 아프지 않게 하려는
그 시절 소녀의 마음과
어린 딸에게 위로를 받는
이제는 엄마가 되어버린 소녀의 마음.
엄마와 딸 이란 건 참 좋은 거구나.
소녀의 기도는
따뜻한 그리움이 되었다.
그 음악, 참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