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야

그 안엔 어리광을 숨겨둔 꼬마가 있을 테지.

by dle

꼬마야 꽃신 신고 강가에나 나가 보렴

오늘 밤엔 민들레 달빛 춤출 텐데

너는 들리니

바람에 묻어오는 고향 빛 노랫소리

그건 아마도 불빛처럼

예쁜 마음일 거야


-김창완) 꼬마야



노래를 듣자마자

어느 시절에 있었을 꼬마가 생각났다.

예쁜 가사와 상냥한 목소리까지

그 시절 꼬마에게 누군가가 이렇게 말을 걸어주었다면

꼬마는 외롭지 않았을까?



막내딸이 울었다.

할아버지가 자기를 바보라고 놀렸다고 한다.

큰아이도 할아버지에게 소리를 쳤다.

자꾸만 자기를 꾹꾹 찔렀다고 했다.


마냥 웃어 넘기기엔 웃음이 나지 않았다.


아이들은 외할아버지를 좋아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할아버지의 새카만 얼굴과 새카맣게 때가 낀 손을 볼 때면 얼굴을 찡그렸다.

할아버지는 아이들을 언제나 반갑게 맞아주었지만

아이들은 한 번도 할아버지를 안아주거나 손을 잡아주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짓궂은 장난을 칠 때면 짜증을 내고 화를 냈는데

그러면 어김없이 할아버지는 할머니에게 혼이 났다.

혼이 나서 멋쩍은 미소를 짓는 나의 아빠를 볼 때마다

나는 뱃속에 물방울이 이는 것 같은 느낌에 휩싸였는데

아마도 그건 가여움이었던 것 같다.


아이들을 불러놓고 엄포를 놓았다.

"내 아빠야, 함부로 대하면 용서 못 해."

아이들은 겁을 먹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에서 나오지 않은 동의는 오래가지 못했다.


불같은 마음이 가라앉자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알아차렸다.

아이들이 할아버지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할아버지가 엄마의 아빠라는 것과.

이름 석자.

겨우 두 가지뿐.


당연히 알아차리고 이해해 주고 사랑해 주리라 생각했다.

우리는 가족이니까.

하지만 나와 아이들 마음 속 가족의 경계는 명확히 달랐다.


자기소개 타임이 생략된 관계는 오해를 야기시키고 불편을 초래한다.

아이들에게 내 아빠를 소개하는 시간을 갖지 않았던 게 문제의 씨앗이었다.


그래서 할아버지를 소개하기로 했다.

'기왕이면 그럴싸하고 멋지게 꾸며야지.'

그러나

70년을 살아온 한 사람의 인생을 들여다보자 당황스럽게도 과대포장 할 것이 없었다.

이렇다 할 경력도 성과도 보이지 않았다.

단지 70년 평생 외로웠고 불안했고 그럼에도 살아냈다는 것.

어느 시절 꼬마 때부터 노인이 된 지금까지도 말이다.


포장은 의미가 없었다.

'과대포장은 알맹이가 자신 없을 때나 하는 거야.

있는 그대로도 충분히 손뼉 칠 만큼 멋진 사람이야.'


얘들아,

나의 아빠를, 너희의 할아버지를 소개할게.



할아버지가 너희처럼 꼬마였을 때 말이야.

갑자기 할아버지의 엄마가 죽었대.

어느 날 아무 말도 없이 할아버지의 엄마는 하늘나라로 돌아가버렸대.


그때부터 할아버지는 학교가 끝나도 집에 들어가지 못했대.

엄마가 있던 자리가 텅 비어 있어서 너무너무 무서웠기 때문이었지.

꼬마였던 할아버지는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그저 날마다 날마다 올라오는 무언가를 알아차리지도 못 한 채

참고 또 참고 안으로 삼키면서

그렇게 어른이 되었대.


그러다 할머니를 만나고 이모, 삼촌, 엄마를 만나고

꽉 찬 집에서 살 수 있게 되면서 가족이란 걸 알게 됐대.

하지만

열심히 살지 않으면 엄마를 제대로 키울 수가 없었기 때문에

캄캄한 새벽부터 캄캄한 밤까지 일을 해야 했어.

그래서 훈장처럼 새카만 얼굴과 까만 손을 받게 된 거야.

어때? 까만 얼굴과 까만 손이 더럽고 불편하기만 하니?

엄마는 할아버지의 손이 까맣게 된 이야기가 너무 따뜻하고 멋져.


멋진 할아버지와 악수해 보면 어떨까?


사람은 원래 행복해지기 시작하면 그전에 못 해 봤던걸 해보고 싶어 하는데

할아버지에게는 아마도 어리광이었던 것 같아.

할아버지가 너희들에게 하는 짓궂은 장난이 뭔가 유심히 들여다보았더니

어리광을 피우고 있는 거더라.

원래 어리광은 화나고 짜증날 때 엄마한테 하는 거잖아.

하지만 엄마가 없던 할아버지는 꿀꺽꿀꺽 어리광을 삼킨거야.

그러다 너희들을 만나면서 어리광을 피워본거지.


할아버지는 어리광을 부려본 지가 너무 오래되어서 까먹었나 봐.

원래 어리광은 어린이가 어른에게 하는 거라는 걸.


그런데 이제는 할아버지보다 어른은 없어서 어리광을 피울 수가 없게 되었어.


그래서 하는 이야기인데

너희가 할아버지의 어리광을 좀 받아주면 안 될까?



노래를 들으며 상상을 했다.

그 시절 꼬마에게 다가가

꽃신을 신겨주고 손을 잡고

강가에 놀러 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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