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공공연한 비밀-open secret]

몸이 먼저 쓴 글

by 랑시에르


공공연한 비밀이라는 말은 이상했다.

비밀이라면 숨겨져야 할 텐데, 그 말은 사람들 입에 너무 자주 올랐다. 나는 그 말을 처음 들은 날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대신 그 말이 내 하루를 조금씩 어긋나게 만들던 시점은 기억한다.


그 무렵 나는 자주 밤을 넘겼다.

넘겼다는 말은 밤을 건너뛰었다는 뜻에 가깝다. 잠을 자지 않았고 그렇다고 깨어 있었다고도 말할 수 없었다. 시간은 늘어났고 몸은 그 늘어난 시간에 맞춰 움직이지 못했다. 버스 안에서 창에 비친 내 얼굴을 보고 놀란 적이 있었다. 눈을 뜨고 있었는데, 보는 사람의 표정이 아니었다. 그 얼굴은 무언가를 오래 기다리다 기다린 이유를 잊어버린 사람 같았다.


보이는 것들이 믿기지 않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다. 형광등은 빛을 내고 있었지만 그 빛이 어디서 시작됐는지는 알 수 없었다. 사물들은 제자리에 있었고, 나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들이 정말 거기 있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나는 점점 눈을 덜 믿게 됐다. 눈으로 본다는 건 어쩌면 내 안에서 한 번 더 만들어진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울 속 얼굴이 실제보다 늘 반 박자 늦게 따라오는 것처럼.


몸도 마찬가지였다. 몸은 하루도 빠짐없이 나를 데리고 다녔지만 주인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 혼자 있을 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의자에 앉아 있으면 그냥 앉아 있을 뿐이었고 숨을 쉬고 있는지도 가끔 잊었다. 그런데 누군가 말을 걸면 몸은 갑자기 제 역할을 떠올렸다. 목소리가 먼저 나오고 그 다음에 생각이 따라왔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몸이란 혼자서는 작동하지 않는 물건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그 상태를 숫자 0에 가깝다고 불렀다. 없는 숫자라기보다, 붙을 자리가 있어야만 의미를 갖는 숫자. 혼자서는 아무 일도 하지 않다가 옆에 다른 숫자가 놓이는 순간 갑자기 값을 만들어내는 것.


사람들은 그 비밀을 하나만 알아도 세상을 이해한 것처럼 말했다. 그 하나를 붙잡고 말을 만들고, 말 위에 또 말을 쌓았다. 어느새 그 말들은 강연장이 되었고, 책이 되었고, 화면 속 얼굴이 되었다. 나는 그걸 보며 비밀은 나눌수록 커지는 게 아니라 얇아진다는 생각을 했다. 너무 쉽게 말해지는 순간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도 그 비밀 같았다. 그 비밀에는 퍼즐이 있다고 했다. 열 개쯤 되는 조각 중, 하나만 맞춰도 길이 보인다고. 나는 아직 세 개밖에 맞추지 못했다. 그래서 오히려 조심해졌다. 이해했다는 말을 아무 데나 놓아두고 싶지 않았다.


밤이 깊어질수록 나는 자주 처음으로 돌아갔다. 아무것도 알지 못하던 자리. 그 자리에서야 보이는 것들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마치 물속에서 천천히 바닥이 드러나는 것처럼. 누군가는 왜 그렇게까지 해서 그걸 알아야 하냐고 물었다. 나는 그 질문을 오래 들여다봤다. 그 말이 나온 자리에는 대답보다 먼저 포기 같은 게 놓여 있었다.


내가 견디고 있는 건 비밀이 아니라, 그 비밀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는 건 쉽게 사라졌지만, 견딘 시간은 몸 어딘가에 남아 지워지지 않았다. 아마 그래서 이 비밀은 공공연한 채로 남아 있는지도 모른다. 모두가 볼 수 있지만 아무도 대신 가져갈 수 없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