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의 혼백

존재는 흔적을 남긴다.

by 랑시에르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가 멈추자 방 안은 순식간에 진공상태가 됐다. 웅웅거리던 진동이 빠져나간 자리에 남은 건, 젖은 빨래에서 배어 나오는 눅눅한 세제 냄새와 형광등의 미세한 비명뿐이었다. 나는 덜 마른 양말처럼 축 처진 몸을 일으켜 벽에 기댔다.


무언가 ’있다‘는 건, 누군가에게 월세를 내듯 이 좁은 방 한 칸의 좌표를 점유한다는 뜻이다. 존재는 늘 시간과 공간을 전세 낸 세입자 같아서, 내가 저 낡은 옷걸이를 본다는 건 그것이 도망치지 않고 일정한 위도와 경도 위에 짐을 풀고 있다는 영수증과 같다. 하지만 그것을 내다 버리는 순간, 우리는 ’사라졌다‘고 말하며 쉽게 손을 털어버린다. 사실 사라짐은 깨끗한 공백이 아니다. 가구를 뺀 자리에 남은 짙은 먼지 테두리처럼, 이전에 무엇이 있었다는 눅눅한 흔적이 공기 중에 달라붙는다.


있음과 없음은 그렇게 한 벽면을 공유하며 나란히 누워 자는 사이였다. 내가 노트북 화면 위에 적어 내려가는 문장들도 다르지 않았다. 커서가 깜빡일 때마다 잉크 대신 빛으로 된 픽셀들이 제 영토를 주장하며 들어앉았다. 하지만 백스페이스 키를 눌러 문장이 지워질 때, 혹은 읽기를 멈추고 뚜껑을 덮을 때, 그 자리는 곧장 ’무(無)‘라는 진공 상태로 환원되지 않았다. 거기에는 기어이 침묵이 고였다. 그 침묵은 텅 빈 허공이 아니라, 문장이 남기고 간 혼백 같았다.


말이 머물다 떠난 자리엔 미처 다 챙기지 못한 잔향과 의미의 부스러기들이 부유했다. 나는 그것을 쉽게 느끼지 못했지만, 밤마다 등 뒤에서 서늘하게 차오르는 고독의 기척으로 그것을 감지하곤 했다. 설명할 수 없는 여운, 마침표 뒤에 남겨진 서늘한 온도. 그것이 바로 침묵의 정체였다.


결국 사람도 하나의 텍스트이자, 거대한 침묵 덩어리였다. 우리는 각자가 살아온 시간의 퇴적층이며, 차마 발음되지 못한 말들의 응어리였다. 편의점 계산대에서 주고받는 무미건조한 안부나 지하철에서 내뱉는 한숨은 편집된 서사에 불과했다. 그 이면엔 결코 해석될 수도, 번역될 수도 없는 생의 잔여물들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누구에게도 읽히지 않는 그 완강한 지점. 바로 그곳에서 시(詩)가 기척을 냈다.


시는 관계를 이어주는 매끄러운 다리가 아니었다. 오히려 각자의 내부에 고여 있던 침묵이 비로소 제 얼굴을 드러내는 순간에 가까웠다. 고독은 혼자 있어서 생기는 허기가 아니라, 자기 안의 깊은 침묵과 눈이 마주쳤을 때 일어나는 기묘한 진동이었다. 그 떨림이 비로소 언어라는 옷을 챙겨 입을 때, 나는 그것을 시라 부르기로 했다. 시는 마침표를 찍는 순간 완성되지 않았다.


훗날 어느 지독한 밤, 먼지 쌓인 책장을 넘기던 누군가의 내부에서 동일한 주파수의 진동이 울려 퍼질 때 시는 비로소 다시 태어날 것이다. 그때 시는 박제된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지금 막 벌어지는 뜨거운 사건이 된다.


텍스트는 존재가 자신을 세상에 남겨두는 가장 고집스러운 방식이며, 침묵은 그 뒤를 따르는 길고 짙은 그림자다. 나는 그 그림자 사이를 걷는다. 부지런히 쓰고, 지우고, 서로의 진동에 귀를 기울이면서. 창밖에는 어느새 잉크처럼 검은 밤이 가득 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