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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시에르 Oct 26. 2024

혼자 노는 양을 아시나요.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나요. 노래하는 혼양입니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갈 때 계절은 노인에서 아이로 태어나는 것 같았다. 뽀얗고 알맞게 익은 복숭아 닮은 연인들 얼굴도, 하늘도, 세상도 그랬다. 확인이라도 해볼 겸 조카 엉덩이를 까보니 아직 덜 익은 푸르뎅뎅한 몽고반점이 있었다. 하루 종일 벗고 다녔는지 엉덩이는 까슬까슬했다. 존슨즈 베이비 로오숀을 발라주었다. 한참을 문대고 있으니 누나가 안방에서 나왔다. 야, 적당히 만져. 걔 그러다 똥 싼다. 그래, 그럼 안 되겠다. 아까부터 로숀 냄새랑 섞여서 났거든.


문자의 위대함을 깨달을 때가 있다.

소리를 문자로 만들 때. 뿌찌지-이익하고 나던 음어를 말로 발음해 보고 문자로 남긴다는 게. 표현한다는 경이로움이 사무쳤다. 그도 그럴 것이 새겨졌기 때문에. 검지를 들어 두 콧구멍을 몇 번이고 가로질렀다. 훌쩍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흩날리는 벚꽃들 사이이로 존슨즈 베이비 로오숀 향기가 났으니까. 벚꽃이 지고 가을이 올 때에도 그랬다. 복숭아 털 알레르기가 유전적으로 없었다. 끝나지 않을 예비군 훈련 참가 고지서처럼 날아왔다. 밀린 전기세 마냥 누진세를 매기고서는 민방위가 끝날 때가 되어서야 사라졌다. 알고 보니 존슨즈 베이비 로오숀이 단종됐다고 했다. 조카 또한 여자가 아닌 여성에 온 기를 모을 때였다.


삼촌, 여자 엉덩이 본 적 있어?


있다고 말했더니 대뜸 저질이라 말했다. 그는 저질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필요하면 녹음을 하든 영상으로 남기라고 했다. 목이 쉬었다. 가서 물 좀 가져와. 아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아니 글쎄 물 좀 가져와. 마시고 얘기해 줄게. 수학 문제집 이름이 쎈이었다. 우리 얘기도 막 쎈 그런 거였다. 너 문제 풀던 거 마저 풀어라. 이 저질은 그만 말해야겠다. 인체의 신비는 스스로 경험해 보도록. 방문을 가로막더니 무릎을 꿇었다. 삼촌님 제발 알려줘요. 너도 이제 저질이 되는 거야 인마. 안 돼. 우리 집안 저질은 나하나로 족해. 큰삼촌은 몰라, 야. 거기는 교회 다니잖아. 그런 거 몰라. 너 교회 다니잖아. 저질 되면 가서 회개할 게 늘어나니까 여기서 이만.


누군가 가장 재미있는 장을 찢어놓은 만화책처럼 얼굴이 찢겨 있었다. 예부터 그랬다. 영상보다는 구설이 더 재밌다는 것은. 본래 리얼리티는 우리 아나키스트에게는 강령과 같은 것이었으니 내 말빨은 탈북하게 만들 수준이었다. 조카를 저질로 만들었고 타락시킬 지경이었으니까. 누나의 훼방이 만만치 않았지만 나는 코사인을 보냈다. 수학 문제집 쎈으로 해 집고 들어가 여성의 몸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술술 풀렸다. 야, 침 닦아. 너무 상상하지 마. 리얼하게 받아들여야 해. 어렵다고 했다. 상상하려고 하면 자꾸 만지게 된다고 했다.


그날도 그랬다.

눈앞에서 여성이 앉아 있었다. 바깥 벚꽃 잎을 옮겨 놓기라도 한 방이었다. 왕벚꽃이 아니라 어디 황제벚꽃이 덕지덕지 붙었다. 익숙한 살풍경이었다. 늘 신기했다. 벽지를 손으로 쓸어보았고 꽃 수술도 따는 흉내를 내기도 했다. 그 벽에 기대어 배시시 웃고는 꽃잎을 물고 있었다. 여기 와서 앉아요. 왜 거기서 처박혀 서 있는 거예요. 술이 다 떨어져 갔다. 이미 술집을 들른 터였다. 오늘 처음 만난 여자였다. 그래서 모텔에 왔다. 황제벚꽃 구경시켜 주려고. 맥주 여덟 캔을 다 마셨으니 말이 들어가고 나오는 것이 바뀌고 있었다. 그녀의 말씨는 몽고 초원을 달리는 백마 같았다. 자유와 낭만이 사람으로 태어나면 딱 그렇게 말할 것만 같았다. 가게 문 닫을 즈음 찾아왔다. 부산에서 내가 보고 싶어서 왔다는 패기 넘치는 고백을 퍼붓었다. 허기 진 나머지 고백을 술잔에 담아 폭탄주로 마셔버린 거였다. 무질서한 꽃무늬 베개의 기대었던 그녀가 깨끗하고 맑은 중저음으로 다시 무언가 퍼붓고 있었다.


"나 여자예요."


알고 있었다. 백육십 센티미터 넘는 것도. 커트 머리였지만 소년처럼 새하얗게 매끄러운 피부를 가진 것도. 까만 불테 안경 때문에 더더욱 예뻤다는 것을. 가까이 다가가 말하고 싶었다. 점점 멀어지는 기분이 들었으니까. 깨끗한 비누 냄새가 났다. 언젠가 맡아본 적 있는 그 향이었다. 왜요, 할 말이 뭐예요. 어서 말해봐요. 눈은 감지 말아요. 지금 감을 순서 아니에요. 코로나19 보다 앞선 거리 두기였다. 남자였으니까. 내 피는 36.5가 넘어가 버린 지 오래였다. 마지막 이성의 동아줄이었다. 그 호랭이가 붙잡고 올라가다 끊어진 것과 같은 거.


"나 저질 아니에요."


부산에서 노래 부르고 산다고 했다.

그럼 뭘 먹고살아요. 낭만이요. 그럼 돈은요, 자유예요. 한국 말이 이렇게 어려웠다. 상징 기호는 기표에 따라 기의가 달라진다고 소쉬르 선생이 말했다. 그러니까 직업이 뭐냐고 물었는데 낭만이었다. 더 섬세하게 돈은 어떻게 버냐고 물으니 자유라고 답하는 센스 보소. 언어학 책 한 권 제대로 읽지 않은 탓이라 생각했다. 라캉을 몰라도 된다고 했으니 밤이 맞도록 상징은 복숭아 알레르기처럼 다시 일어났다. 이름을 묻지 않았다. 난 서울 넌 부산이라 칭했으니까. 다음날 뜨거운 포옹과 함께 헤어졌다. 나는 먹고살기 위해, 그녀는 자유와 낭만을 찾아서.



 모든 사물에는 이름이 붙어있다.

나무, 사과, 책상, 창문, 의자, 마우스, 강아지, 호랑이, 버스, 도로, 산, 강, 들판, 여자, 남자... 이런저런 이유로 이름을 붙여 외우기 쉽게 됐다. 이름이 생기면 기능도 생기고 무엇을 해야 할지 대부분 정해졌다. 그 용도를 벗어나는 일은 잘 없었다. 의자는 충실하게 허리와 엉덩이를 맞이했다. 사과도 백설공주를 독살시키는 데 사용됐다. 빨간색을 얻게 된 것도 하와의 아들 아벨이 죽고 난 자리에서 났다는 전설도 있다. 책상은 밥을 먹고 무엇이든 놓이는 지위를 누리는 식이었다. 내 이름도 그렇게 태어났고 삼십 년 넘게 이 세계와 함께 지어먹고 살았다. 엄마 뱃속 세계에는 이름이 없다. 아무래도 엄마가 주관하는 몸이라 그랬는지 모른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름을 구상하기 여념 없었다. 태어나니 돌림자로 대충 지었다고 한다. 어서 빨리 자라나 그 기능을 하길 바랐으니까. 때마침 이름 없을 시간이 며칠 있었다. 내가 유일하게 이름 없이 이 세계의 존재하는 시간이었다. 성 어거스틴이 그랬다. 신에게는 이름이 없다고. 스스로 있는 자, 있고자 의지를 가진 자 뭐 고작 이따위 표현으로 신을 말했다. 며칠 동안 같은 지위를 누렸다. 임시 이름으로 새끼라 불렸지만 상관없었다. 그녀의 이름을 몰랐다.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몇 날 며칠을 여신으로 모시고 있었다. 사계절과 무관하게 나의 세계를 다스리고 있었으니까. 그녀가 지상으로 나리는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니 부러 묻지 않았다. 너의 이름은, 하고 묻고 것은 낭만적이지 않았다. 이름을 부르는 것은, 애써 얻은 자유를 박탈하는 일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알레르기가 사라진 것도 그랬다. 이름 없음을 화인 받고서는 홀연히 신이 되어버렸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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