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랑시에르 Oct 27. 2024

이중 하나는 사랑

아저씨, 사랑해요_이수지.

 낡은 음악 노트였다. 안쪽에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내게 쓴 편지가 짤막하게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작곡한 노래가 빼곡히 연습장처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꿈 많은 소녀의 일기장을 보는 것 같아 먹먹해졌다. 적힌 날짜를 더듬어 기억해내고 있었다. 여기저기 적힌 스케줄도 있었다. 매니저와 만나는 장소도 기록해 놓았다. 내가 부산으로 만나러 간 날들이 시간 순서대로 피드처럼 적어놨다. 무엇을 먹고 무엇을 했는지도. 시시하고도 소소하게 적힌 일기들이 웃고 있었다. 아주 환하게. 지금 여기에서 볼 수 없는 얼굴을 하고서는. 숨이 차올라 아무 말할 수 없었다. 이걸 어떻게 박현주 이사가 가지고 있는지 묻지 않았다. 현실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인간적으로 이 음악 노트가 내게 있는 게 중요했으니까. 혼양은 이 세계에 없는 계절이 됐다. 나의 세계에서도 그녀가 살아가는 세계에서도 이름이 있어도 더 이상 불리는 이름이 아니었다. 언니, 친구야, 동생아, 사랑하는 딸아. 화려했던 그녀는 검소했다. 성실했고 누구보다 소년처럼 순수하게 사람을 사랑했었다. 내가 오해한 것도 그 순수하게 사람을 사랑하는 이유 때문이었다. 우리가 그렇게 순수하게 밤을 보냈던 것도. 너무 뜨거워서 나를 녹여버릴지 몰라 그날 밤에는 술만 마셨다. 헤어지고 나서도 순수하게 만났고 순수하게 그녀의 노래 앨범을 받고서는 꼭 안아주었다. 허공에서 사라지는 순수하고도 뜨거운 그 무엇들이 이 세계 어딘가에 제 숨을 쉬라고.




부러 152번 버스를 탔다.

애플케이션은 똑똑하게도 구간 별 시간표를 알려주었다. 나는 속아 넘어가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수유 역까지 마흔넷 정류장을 달려야 도달했으니까. 수유 역에는 하얀 몽블랑 설산 위에 미끄러지는 검은 액체가 발라진 무엇을 팔고 있었다. 종이 빨대를 통해 세상 밖으로 탈출을 기다리는 흙탕물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단내들이 온몸에 퍼져나갔다. 우리가 서로의 사정을 모르고 살았던 그 계절의 시간 속에, 때로는 노오랗게 물든 단풍으로, 초록이 무성한 무더운 여름 색으로, 날름날름 잘도 받아먹었던 벚꽃처럼, 문장이 식상해질 때면 차갑게 미끄러지는 눈 속 겨울로.


그러니까 얽히고설킨 무수한 밤들이 바나나에 박힌 검은 점들처럼 차곡차곡 생을 쌓아갔다. 오래전 그날이 무성의하게 흘러나왔다. 그 멜로디 마디마다 음계를 계단 삼아 감정의 음표를 그렸다. 도도하게, 때로는 쏠쏠하게. 또는 파-하게. 이렇게 무성의한 시시함도 함께 노래를 완성해 버렸다. 괜찮았다. 사랑은 이별이 우리에게 주려고 슬픔과 함께 보낸 것이었으니까. 슬픔 적신 땅에서는 사랑이 자라기도 했으니까. 이별이 남긴 자리에는 언제나 별 두 개가 송송하게 박혀 있었으니까. 한겨울 섬광처럼 쨍하니 밝게 웅웅거렸으니까.


그녀를 똑 닮아 웃는 모습이 제법이었다. 아이 예뻐라 아이 예뻐라, 나는 진짜 어른이 되어 있었다. 스무 살 넘어가니 사회는 여기 아저씨, 저기 아저씨라고 불렀다. 어디를 가도 아저씨라 불렀다. 혹여나 이름을 잊어버릴까 두려울 정도로. 붉은 잠바를 한껏 맞춰 입은 아주머니들만 다르게 불렀다. 거기에도 이름은 없었다. 거기 총각, 어이 삼춘 따위로. 그랬다. 무어라 불리면 불리는 대로 역할을 해야 했다. 아저씨는 총각 행세를 하고 삼춘은 무엇이든 번쩍번쩍 들어야 했다. 그 집네 아저씨와 다른 무엇을 드러내야 했으니까. 무르 익은 사회생활의 자부는 중년 아버지를 지나고 있었다. 나에게 아이는 사랑의 교집합 같은 거였다. 사랑의 결실이니, 두 사람의 결정체니 하는 유치한 표현들이 진리라는 것을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너무 평범하거나 이것도 모르면 바보 아니야 하는 듯이. 그랬다. 아빠, 하고 달려오는 딸 때문에 거칠 대로 거칠어진 입을 금방이고 순수하게 오무려졌으니까. 형, 너무 예뻐. 몇 대 쥐어박고 싶을 때도 있어. 근데 진짜 예뻐. 아름이 보다 예뻐. 아름이에게 이른다고 말했다.


엄마도 그랬다. 우리 아들 예쁘다고. 누나도 그랬다. 야, 쟤 존나 귀엽지 않냐. 아니 하나도 안 귀여워. 쟤 타락했어. 저거 아주 저질이야. 뭐 어때, 그럴 나이인데. 너는 안 그랬냐. 넌 더 했지. 만난 여자가 몇 명이야. 니가 결혼 같은 거 할 줄 몰랐다니까. 그랬다. 누난 내가 저질인 것도, 남자 냄새 풀풀 풍기는 남동생인 것도 알았다. 엄마는 할머니는 이미 오랫동안 차곡차곡 알고도 어디서 그런 예쁜 말들 줏어왔을까. 문득 고마웠다. 공개적으로 형태와 현실을 남겨둔 것은 문제였지만. 백일 사진에는 유독 고추만 덩그러니 데롱하니 보이게 찍었다. 내가 아는 남자아이 사진 다 그랬다. 다 그렇게 예쁘다에 속았던 것이었다. 그래서 여자만 보면 예쁘다를 남발하며 자라는 것일지도. 오무릴 힘이 없어 까르르, 흔들어대는 양증맞은 팔이며  통통하게 오른 젖살에,  무방비로 온 동네방네 다 내 고추를 봤던 거였다. 누나는 귀엽다고 까닥까닥, 조물딱조물딱 만지기도 했다고 한다. 하물며 할머니는 따 먹기 까지 했다고 하니. 한편, 형은 오줌을 막 가려 팬티를 입고 다녔다고 한다. 내가 당하는 것을 목격하고도 자신의 안전이 먼저였을 것이다. 아마도 자기의 속사정을 몇 번이고 번갈아 보면서 처음 다행이라는 낱말을 온몸으로 깨달았을 테다.


얼마나 지났을까.

밤새 걸었던 미아 역을 지나고 있었다. 미륵 부처님과 아미타 부처님께서 이 세상 오실 때 가장 먼저 오시는 곳이라고 해서 '미아리'라고 한다. 점집이 많은 이유가 있는 동네였다. 봉천에서 출발했으니 둘의 접점은 언제나 대비와 대조를 이루며 강남과 강북으로 연결하고 있는 셈이었다. 받들 봉에 하늘 천 자, 신이 가장 먼저 나리는 동네. 옛날 사람들의 신앙은 꽤나 낭만적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름 없는 신에게 이름 붙여서 확인이라도 하듯, 기능과 역할에 채근하는 그들의 뜀이나 춤사위, 무구들이 펼치는 화려함은 마치 한 편의 색동저고리 동화 같았다. 얼마나 많은 연인들이 사랑이라는 낱말에 인생을 걸고 삶을 바쳐 획득하려고 했을까. 사랑은 바람 같아서 슬픔을 머금을 때도 곧잘 용기 가져다 주었다. 살아야 한다면, 사랑이 그 이유라고 믿고 싶었다. 인간 세상 종교는 전부 사랑 때문에 태어났다는 사실. 현실을 온 몸으로 체득하고 몇 번의 눈물과 몇 번의 이별과 아픔, 외로움, 쓸쓸함을 지나 낙옆 하나로 떨어진다. 책갈피에 차곡차곡 담고서는 다시, 또 다시 사랑을 기다린다.



여보, 이제 남은 것은 슬픔 밖에 없는 것 같아.

왜요, 사랑이 더 남았는 걸요.




이전 09화 오늘 같은 밤이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