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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언 Mar 09. 2021

내가 나를 버리지 않으면, 포기가 아니다.

열심히 글을 쓰자

 포기하고 싶지 않았지만, 포기해야만 했던 순간들이 있다. 


 고등학교 때 짝사랑한 남사친에게 고백할 때마다 차였다. 형편 따라 국립대학 갔는데 적응 못하고 재수까지 했지만 제자리였다. 요가 강사 자격증을 따고, 실습을 망쳐 포기했다. 글쓰기 공모전은 한 번도 붙지 못했고, 목공일을 배울 땐 남편과의 갈등으로 중단했다. 코로나가 닥치며 토의토론 지도사 자격증을 딴 건 무용지물 되었고, 코딩 전문가 자격증 수료기간에는 갑자기 편찮아지신 친정엄마를 돌보며 중도 포기하게 됐다. 


 큼지막한 일들만 나열해 봐도 그때의 감정들이 날 것처럼 떠오른다. 자괴감, 한심함, 자신감 상실, 타인의 부정적 시선, 불안, 두려움으로 가득 차서 회복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 일들이다. 


 어떤 사람들은 한 우물만 제대로 파지, 어떤 사람들은 기술을 배워서 돈이 되는 일을 해야지, 또 어떤 사람들은 그냥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잘 살면 된다고 나름의 조언을 해주었다. 그럴수록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었다. 포기했던 많은 일들을 뒤로하고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구실이나 명분이 아닌 나의 이유가 필요했다. 사람들이 말하는 성공이나 정상의 위치가 아니라 내가 인정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했다. 미래사회에 필요한 일이라고, 경제적으로 도움이 될 거라고 해서 섣불리 도전하면 안 되는 거였다. 마음이 썩 내키지 않았을 때 뭉그적대지 말고 화끈하게 끊었다면, 될 일이었다. 그리 못함을 후회하고 남 핑계를 대는 것도 그만해야 했다.


 중단된 일들이 쌓일수록 더 간절해진 것이, 바로 글쓰기다. 내가 가장 편안하게 느끼고, 가장 하고 싶어 하는 일인데, 한 번도 제대로 수면 위에 올리지 못했다. 그냥 취미일 뿐이라고, 실력도 없고, 능력도 없다며, 그걸로 먹고 살지도 못한다고 하면서 내가 나를 갉아먹었다. 포기하고 포기되면서 깨달아진 사실, 내가 진정 좋아하는 일을 감추고 깎아내리려고만 했던 진짜 이유는 내가 나를 믿지 못한데 있었다. 내 안의 내게 온갖 프레임을 씌워놓고 다른 곳에서 의미를 찾으려고 했으니, 끝까지 가고 싶은 의지가 생겼겠는가. 


 속에서 하는 말은 듣지도 않고, 아무 상관없는 남이 생각 없이 한 말을 내 것인 냥 껴안고 시간을 허비했다. 허울 좋은 자격증들에 도전하는 것들이 나를 찾는 일이라 생각했고, 다양한 도전을 한 것으로 나를 발전시키는 거라고 자부했다. 이제야 나는 왜, 무엇을 위해서 계속 뭔가를 했어야만 했냐고 묻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미래에 밝지 않아도, 남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어도 괜찮다고, 그럴 수도 있다고 해주는 사람이 바로 나 자신이어야 했음을 알게 되었다.


 나의 포기 리스트들은 인간관계를 이어가고, 나를 지키는데 너무 큰 걸림돌이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글쓰기에 막혀 돌이켜본 일련의 일들이 나의 글쓰기를, 나의 삶을 지탱하게 해 준다는 것을 안다. 


 무명가수 오디션 프로그램 <싱어게인>에 나온 한 가수의 말이 떠오른다. 빨간색과 파란색 불빛 사이에서 자기 자리가 없는데도 3초간 반짝이고 사라지는 노란 신호등이 자신과 닮았다고 소개했다. 작은 기회라도 기회가 왔을 때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라고 하면서. 그 말이 심장을 쿵 때렸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보고 어떻게 평가할지가 두려워 쉬쉬하면서 응어리를 안고 살게 아니라, 그 응어리를 풀어낼 무대를 내가 만들면 되는 거였다. 잘 닦인 무대에 올라 제대로 된 실력을 뽐낼 날이 분명히 있다고 믿으며, 그 날이 홈런 치는 날이 아닐 지라도 꼭 멋진 안타 한방 날리겠다고 다짐해 본다. 또한 중도포기 리스트들은 이 글의 마지막 문장과 함께 예쁘게 접어 넣고, 포기하고 다시 깨워내고 다시 포기하더라도 버리지 않을 나의 글들을 펼쳐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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