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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언 Mar 11. 2021

감성 경계인의 선택

아날로그 삶을 좋아해

 스마트기기의 발달은 인간의 편의를 높여줄 유용한 수단임을 부정할 수 없다. 가만히 누워서 목소리나 생체인식으로 기계를 조종할 수 있다. 밖에 나가서도 집안의 물건들을 제어할 수 있다. 인간의 기억을 대신할 수 있는 기계들이 늘어나고, 인간은 기계에 의지한다. 마치 그 물건들이 원래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다. 


 조깅하러 나서는 사람이 귀에 아이팟을 꽂고, 궁금한 정보가 생기면 구글링하고, 청소를 시작할 때 지니를 부른다. 스마트폰이든, 블루투스 이어폰이든, 태블릿pc든 스마트기기 하나쯤 없는 사람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취급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사람이 사용하는 스마트기기는 무한하게 뻗쳐나간다. 세상의 흐름은 진실로 눈 깜짝할 새에 변해가고, 인간은 얼리어답터가 되느라 바쁘다. 클릭 한번으로 원하는 상품을 새벽에 배송 받을 수 있고, 터치 몇 번으로 시간 관계없이 야식 배달을 받을 수 있다. 태국에 가지 않아도 편의점에서 값싸고 깔끔하게 포장된 팟타이 밀키트를 사 먹을 수 있다. QR코드로 상품을 검색하고, 사람을 검색한다. 이렇게 세상은 소리 없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언제부터였는지 어디까지일지 가늠할 수 없는 세상이다. 세상이 좋아지면 좋아질수록 더 예측이 어려워지고 있다. 화성에 가서 살게 될지도 모를 미래를 바라보면서, 가사도 못 알아먹는 노래를 들으며 고개를 까딱거리고 있자니, 내가 가는 길이 맞는지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된다. 그럴 시간이 없어지고 있음을 매일 확인하지만,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답은 얻지 못한다.


 노래 가사 하나를 끌어안고 몇 달을 흥얼거리며 다니던 학창시절이 있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하고, 문구사에서 500원에 그 노래 악보를 사서 건반을 쳤던 때는 몰랐다. 지금 듣고 있는 노래를, 들려만 주면 찾아주는 기계가 나올 줄도 몰랐고, 한국 노래가 곡 전체를 몽땅 영어로 부르게 될 날이 올 줄도 몰랐다. 너무 구닥다리 감성을 갖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세상이 변해가는 것에 적응하지 못하는 한 사람의 한탄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20년 전만 해도 낯설었던 지구촌이라는 말이 지금은 촌스럽기까지 하니까.


 일상에 머무르는 시간이 짧아질수록 기억하는 노래가 적어지고, 좋아하는 대상이 빨리 변하는 것이 슬프다. 저장강박증이 생길만큼 저장해야 하는 기기들은 많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삶에 무엇을 우선순위로 두어야할지를 정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타인이 무엇을 하고 사는지는 실시간 알람으로 받으면서, 정작 자신이 무엇을 해야하는지, 어떻게 삶을 운용할지를 정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을 만나다보니 문득 500원짜리 악보를 모으려고 용돈을 저금하던 나의 그 시절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현재의 나는 디지털도 아날로그도 아니다. 감성적으로는 아날로그지만 일상의 많은 부분에 디지털이 침투해있다. 경계선에서 발버둥치고 있다. 어떤 것도 본인의 선택이지만, 급변하는 파도를 타고 서핑하고 싶진 않다.  현재의 스마트한 흐름도 결국은 다음 세상에선 아날로그가 된다.  흐름을 따라가는 것은 중요하고, 내게 맞는 파도를 타기 위해 천천히 내공을 다지는 것은 조금 더 중요하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떻게 살 건지, 어떻게 죽고 싶은지를 고민하고 일상을 설계하자. 일상의 기쁨은 타인이 쓰는 물건을 재빠르게 구매하는 것보다, 빠르게 스캔해야할 정보들보다, 500원짜리 악보 안에 있는 경우가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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