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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언 May 10. 2021

소중한 취미생활

책과 맥주와 커피(ft.방광)

 

 “제일 좋아하는 게 뭐예요?”

 “책이요.”


 책 읽는 거 좋아한다. 혼자 있을 때도, 아이들을 보다 틈새 시간이 생길 때도 책을 읽는다. 책으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책으로 위로받는 시간도 많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책만 있을 때를 좋아하는 건 아니다. 책과 함께 하는 사람, 공간, 음식, 분위기가 조화를 이루었을 때 희열을 느낀다. 그중 어떤 ‘마실 것’이 함께 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나의 최애 음료는 맥주다. 살얼음 낀 맥주는 혼술의 고독함을 더 진하게 만들어 주고, 깊은 밤 독서에 울림을 준다. 맥주잔은 매일 냉동실 한 쪽에서 곱게 대기 중이고, 맥주가 마시고 싶어질 때면 잔을 꺼내 병이나 캔에 든 맥주를 촤르르 따라낸다. 고맙게도 금방 살얼음이 만들어지고, 그게 단 한 잔에 끝나버리는 게 아쉬워 미리 두 개의 잔을 넣어둔 나를 칭찬한다. 어떤 음식을 먹건, 어떤 책을 읽건 맥주 한 캔 하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것까지 막을 수가 없다. 


 대체 맥주가 먹고 싶은 건지 책을 읽고 싶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조합을 떠올리기만 해도 기분이 좋은 걸 어쩌나. 오랫동안 해온 독서모임에서 김혼비 작가의 책 <아무튼, 술>을 할 때, 진짜 맥주를 마시며 책 이야기를 했는데, 이보다 좋을 순 없었다. 새로 생긴 맥주집이 있으면 고개가 절로 돌아간다. 오픈 예정이라는 맥주집 앞에서 언젠가는 나도 맥주와 책을 함께 하는 공간을 내볼까? 하는 소망도 가져본다.


 그 다음은 커피다. 우유나 크림이 들어가지 않고 오직 신선한 원두로 갈아 내린 핸드드립 커피가 좋다. 아, 물론 때에 따라 체인점 커피나 물맛 나는 커피를 마셔야할 때가 있지만 대체적으로 커피는 마다하지 않는다. 그냥 돌아 나와서 다시는 안가고 만다, 정도지. 날씨에 따라 ‘뜨아(뜨거운 아메리카노)’와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맞춰가며 즐긴다. 혼자 커피숍 다니는 것도 좋아하는데, 새로 가보는 커피숍에서는 꼭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셔본다. 커피 본연의 맛이 훌륭하면 디저트도 필요 없다. 맥주 종류만큼 커피숍도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지만, 본연의 맛은 없고 커피 흉내만 내는 커피들이 많다는 게 아쉽다.


 덕분에 주구장창 가던 데만 간다. 맘에 드는 플레이리스트는 물론이고, 손님 역시 너무 많지 않은 곳으로 선택한다. 책을 읽거나 글을 써야 하니까, 너무 조용해도 너무 시끄러워도 방해된다. 커피 맛 역시 너무 튀지 않아야 흐름을 끊지 않는다. 이도저도 아귀가 맞지 않으면, 그날은 커피숍 독서는 포기해야 한다. 집에서 커피를 내리거나, 내린 커피를 들고 조용한 바닷가로 나가야 한다. 쓰다 보니 책 읽으며 마실 게 가장 중요하다 해놓고, 그것들을 해낼 공간이 최우선 돼야 하나 싶기도 하다. 책 한번 읽기가 이토록 까다로울 일인가.


  그렇지만 가장 까다로운 건 바로 내 몸에 있다. 맥주와 커피는 생을 통틀어 가장 오래 복용한 음료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내 방광이 적응을 못하고 있다. 훌륭한 스트레스 해소제로 사용되긴 하지만, 그 후가 문제다. 커피든 맥주든 마시기 시작해서 1시간 정도 지나고 나면 주구장창 화장실을 찾는다. 어떨 때는 화장실 다녀온 지 10여분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또 가고 싶다. 앞에 앉아 있는 상대에게 미안해서 몇 분 더 참기도 해봤지만, 그건 참아지는 게 아니다. 아예 혼자 다니거나, 화장실 가까운 자리에 앉아야만 한다. 책 읽다가 오줌보 쥐어 잡고 한 챕터가 끝날 때까지 참아내는 내가 제일 한심하고 답답하다.


 이런데도 못 끊는다니, 얼마나 의지박약인지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끊으려고 생각하니 그 얼마나 또 안타깝고 서운한 일인지 상상만 했는데 슬퍼진다. 이 정도 오줌보로는 어림도 없다며 방광을 키우든지, 이제 그만 포기하시지 하는 맥주와 커피의 비아냥이 아른거린다. 책은 그냥 책 그대로 읽으면 되지 않느냐고 하면, 음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저는 아직 그럴 깜냥이 못 됩니다. 책 읽다가 집중력 흐트러지면 한 모금, 감정 몰입돼서 울컥해도 한 모금, 너무 웃겨서 배꼽을 잡을 때도 한 모금 할 맥주 혹은 커피가 꼭 필요하다. 


 방광은 뭐, 좀 더 천천히 적응되던가, 아님 죽을 때까지 처음 보는 손님인데요, 하고 있거나 알아서 할 일이지, 나의 소중한 취미생활 중에는 잠시 쉬어 가셔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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